1.행복은 생각인가


우리는 의식적인 부분이 자기 행동의 원인이라고 굳게 믿는다. 큰 오해다. 사실 일상의 수많은 선택과 행동은 의식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이루어진다.


이성적 통제가 항상 생존에 도움이 되었다면, 극도의 위험에 놓인 인간은 더욱 합리적으로 행동하도록 진화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4. 동전탐지기로 찾는 행복


자연은 기막힌 설계를 했다. 내 생각에, 개에게 사용된 새우깡 같은 유인책이 인간의 경우 행복감(쾌감)이다. 개가 새우깡을 얻기 위해 서핑을 배우듯, 인간도 쾌감을 얻기 위해 생존에 필요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


"행복감을 인간이 왜 느낄까?"라는 질문으로 이 챕터를 시작했다. 여러분은 어떤 대답을 했을지 궁금하다. 나의 간결하고도 건조한 답은 "생존, 그리고 번식"이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껴야만 했던 것이다.


생존에 유익한 활동이나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 일에 계속 매진하라고 알리는 것이 쾌의 본질적 기능인 것이다(Nesse & Ellsworth, 2009)


5. 결국은 사람이다


물소들은 사자들이 우글거리는 아프리카 초원을 수십만 마리의 동료들과 함께 횡단한다. 서로 잡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매가 혼자 있는 비둘기를 습격할 때 사냥에 성공할 확률은 약 80%다. 하지만 비둘기가 다른 친구 10마리와 함께 있을 때는 60%, 50마리와 함께할 때는 10% 이하로 사냥 성공률이 떨어진다(Trivers, 1985). 사람도 마찬가지다. 시카고 대학의 카시오포(Cacioppo) 교수 팀의 오랜 연구에 의하면 현대인의 가장 총체적인 사망 요인은 사고나 암이 아니라 외로움이다(Cacioppo & Patrick, 2008).


인간의 본성을 압축한다면 나는 "The ultimate SOCIAL machine"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사회성은 인간의 생사를 좌우하는 가장 독보적인 특성이다. 최근 여러 분야의 석학들이 이구동성으로 주장하는 결론이다.


인간의 뇌는 도대체 무엇을 하기 위해 설계되었을까? 일평생의 연구를 토대로 그가 내린 결론은 '인간관계를 잘하기 위해서'다(Gazzaniga, 2008).


인간의 뇌가 급격히 커진 시기는 함께 생활하던 집단의 크기가 팽창할 때와 맞물려 있다.


인간의 뇌를 성장시킨 기폭제는 타인의 존재였다는 것이 최근 널리 각광받는 던바 교수의 '사회적 뇌 가설(social brain hypothesis)'의 핵심이다.


내 생각엔, 행복한 사람은 바로 이 고지식한 사회적 뇌를 잘 '이용'하는 자들이다.


이런 '사회적 영양실조'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왕성한 '사회적 식욕'을 갖는 것이다. 식욕의 근원은 쾌감이다. 그래서 사람(특히 이성)을 만나고, 살을 비빌 때 뇌에서는 사회적 쾌감을 대량 방출한다. '강추'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런 사회적 쾌감을 예민하게 느꼈던 자들의 유전자를 지니고 산다. 그래서 지금도 사람을 절실히 찾는 것이고, 가장 강렬한 기쁨과 즐거움을 사람을 통해 느끼는 것이다. 사람과 무관해 보이는 감정들도 사실 대부분 사람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극도의 사회성. 하버드 대학의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 교수가 최근 저서에서 내린 결론이다(Wilson, 2012). 지구에서 최고의 생존 성공담을 가진 동물은 개미와 인간이다. 두 생명체의 공통된 특성은 유별날 정도로 사회적이라는 것이다. 한 개체로서는 그다지 탁월한 능력이 없지만, 서로 돕고 나누고 이용하는 복잡한 사회적 능력 덕분에 두 종은 지구에서 유례가 없는 성공신화를 썼다. 그래서 윌슨은 인간의 지구 정복을 '사회적 정복(social conquest)'라고 표현했다.


행복감을 발생시키는 우리 뇌는 이처럼 사람에 '중독'되어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래서 사회적 경험과 행복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사회적 경험이 행복에 중요한 것은 물론이고, 나는 한 발 더 나아가 행복감(쾌감)은 사회적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게 되었다고까지 생각한다.


첫째, 행복은 객관적인 삶의 조건들에 의해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둘째, 행복의 개인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그가 물려받은 유전적 특성,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외향성이라는 성격 특질이다.


6. 행복은 아이스크림이다


스칸디나비아 행복의 원동력은 넘치는 자유, 타인에 대한 신뢰, 그리고 다양한 재능과 관심에 대한 존중이다(Bormans, 2010). 그들 사회는 돈이나 지위같은 삶의 외형보다 자신에게 중요한 일상의 즐거움과 의미에 더 관심을 두고 사는 곳이다.


복권 당첨 같은 일확천금의 경험은 장기적인 행복의 관점에서 보면 저주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위의 복권 연구에서 보면, 복권에 당첨된 자들의 행복 더듬이는 둔해진다. 복권 당첨 후 그들은 TV 시청, 쇼핑, 친구들과의 식사 같은 일상의 작은 즐거움에서 이전 같은 기쁨을 더 이상 느끼지 못했다. 큰 자극의 후유증이다.


돈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착각을 심어준다. 그래서 초콜릿 같은 시시한 것에 마음 두지 않게 하고, 이런 자극을 음미하는 능력을 감소시킨다. 심지어 사람이라는 자극에도 관심을 덜 갖게 한다. 돈을 생각할수록 카페에서 다른 사람과 대화를 덜 하고(Mogilner, 2010), 어려움을 당해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사양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Vohs, Mead, & Goode, 2006).


자료들을 보면 행복한 사람들은 이런 '시시한' 즐거움을 여러 모양으로 자주 느끼는 사람들이다(Diener, Sandvik, & Pavot, 1991).


객관적으로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보다 이미 가진 것을 얼마나 좋아하느냐가 행복과 더 깊은 관련이 있다(Diener, Lucas, Oishi, & Suh, 2002).


정서학자들의 중요한 발견 중 하나는 불행의 감소(예: -4에서 0)와 행복의 증가(예: 0에서 4)에 기여하는 요인들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이것을 긍정-부정 정서의 독립성(independence)이라고 하며(Diener&Emmons, 1984), 정신 병리에 몰두했던 심리학이 행복 연구를 시작하게 된 이론적 배경이다. 이 말을 쉽게 푼다면, 불행의 감소와 행복의 증가는 서로 다른 별개의 현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화려한 변신의 순간에만 주목하지, 이 삶을 구성하는 그 뒤의 많은 시간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성공하면 당연히 행복해지리라는 기대를 하지만, 실상 큰 행복에 변화가 없다는 사실은 살면서 깨닫게 된다. 그제야 당황한다.


프랑스 사상가 라 루시프코(La Rouchefecould)가 400년 전에 지적한 대로 우리는 "상상하는 만큼 행복해지지도 불행해지지도 않는다".


많은 사람이 미래에 무엇이 되기 위해 전력 질주한다. 이렇게 'becoming'에 눈을 두고 살지만, 정작 행복이 담겨 있는 곳은 'being'이다.


그래서 행복은 '한 방'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쾌락은 곧 소멸되기 때문에, 한 번의 커다란 기쁨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 번 느끼는 것이 절대적이다. 유학 시절, 지도 교수가 쓴 논문을 읽은 적이 있다. 제목은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Happiness is the frequency, not the intensity, of positive affect'. 나는 이것이 행복의 가장 중요한 진리를 담은 문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7. '사람쟁이' 성격


행복에 절대적인 영향을 비치지만, 대부분이 미처 생각지 않는 요인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어떤 것이 그렇게 중요할까? 오랫동안 행복을 연구한 석학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그 질문을 한다면 대답은 거의 비슷할 것이다.

"유전. 더 구체적으로는 외향성."


"행복해지려는 노력은 키가 커지려는 노력만큼 덧없다(Lykken & Tellegen, 1996)." 다소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그래도 행복에 있어서 유전적 개입을 부인하는 학자는 없다.


유전의 힘은 강력하다. 하지만 냄새도 모양도 없는 이 유전적 요인을 일상에서 간파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선천적으로 행복한 성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의 외적 '증상'에 주목하게 되고, 그것이 행복의 원인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기침이 감기의 증상이지 원인은 아니다.


유전과 행복을 각각 하나의 대륙이라고 한다면, 이 둘을 연결하는 보스포러스 다리가 있다. '외향성'이라는 성격 특질이다. 유전적 영향에 의해 외향성 수치는 어느 정도 정해지며, 그 외향성의 정도가 개인의 행복수치와 깊은 관련을 맺는다.


두 그룹 간의 차이는 오직 두 가지 영역에서만 나타났다. 첫째, 성격. 행복한 사람들은 월등히 더 외향적이고 정서적 안정성이 높았다. 둘째, 대인관계. 행복지수 상위 그룹의 사회적 관계의 빈도와 만족감이 월등히 높았다. 사실 두 가지 특징의 공통분모는 '사회성'이다. 그래서 이 논문의 저자들은 행복을 보장하는 충분조건은 없지만, 없어서는 안 될 필요조건이 사회적 관계라는 결론을 내렸다.


내향적인 사람들도 혼자일 때보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더 높은 행복감을 느꼈다(Diener & Biswas-Diener, 2008). 그래서 내가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다. 회식 3차로 노래방에 갈 때, 배려한다는 마음으로 평소 조용한 김 양을 먼저 보내지 말라고. 노래방에서 그녀는 속으로 웃으며 좋아할 수 있다.


최근 주목받는 콜로라도 대학의 리프 반 보벤(Leaf van Boven)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행복한 이들은 공연이나 여행 같은 '경험'을 사기 위한 지출이 많고, 불행한 이들은 옷이나 물건 같은 '물질' 구매가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Van Boven & Gilovich, 2003). 행복과 관련해 경험보다 물질 구매가 불리한 점은 무엇일까? 경험(여행)에 비해 물질(신상 백)에서 얻는 즐거움은 더 빨리 적응되어 사라지고, 타인과의 상대적 비교를 더 자주하게 된다((누군가 반드시 더 좋은 가방을 들고 다닌다!).


외향성은 일종의 '사회성 위도'다. 이 값이 높을수록 사회적 관계의 양과 질이 높고, 바로 이 점이 행복에 절대적 기여를 한다.


레바논에 이런 속담이 있다. "사람이 없다면 천국조차 갈 곳이 못 된다."


8. 한국인의 행복


행복감을 예측하는 가장 중요한 문화적 특성은 개인주의다(Diener, Diener, & Diener, 1995).


개인주의는 국가의 경제 수준과 행복을 이어주는 일종의 '접착제' 역할을 한다(Inglehart, Foa, Peterson, & Welzel, 2008). 역으로 이 접착제(개인주의)가 부족한 사회는 경제적 발전을 이룩해도 거기에 상응하는 행복감이 뒤따라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한국과 일본이 그 예다.


이렇듯 과도한 타인 의식은 집단주의 문화의 행복감을 낮춘다. 행복의 중요 요건 중 하나는 내 삶의 주인이 타인이 아닌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는 이런 말을 남겼다. "행복해지려면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신경 쓰지 마라(To be happy, we must not be too concerned of others)."


본인의 경제 수준과 상관없이, 사랑보다 돈을 중요하게 생각할수록 그의 행복도는 낮다(Diener & Biswas-Diener, 2002). 반대로 사랑에 더 많은 가치를 두는 사람일수록 행복하다.


9. 오컴의 날로 행복을 베다


철옹성 같던 매슬로우의 이론도 최근 위아래가 뒤바뀌고 있다(Kenrick, Griskevicius, Neuberg, & Schaller, 2010).


행복한 사람일수록 미래에 더 건강해지고, 직장에서 더 성공하며, 사회적 관계도 윤택해지고, 더 건강한 시민의식을 갖게 된다(구재선, 김아람, 서은국, 2009; 구재선, 서은국, 2012, 2013 신지은, 최혜원, 구재선, 서은국, 2013 Diener, Kanazawa, Suh, & Oishi, 2014; Lyubomrisky, King, & Diener, 2005). 한국과 미국 사회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연구들에서 어떤 사람을 '행복한 사람'으로 정의했을까? 남의 칭송과 칭찬을 받으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일상에서 긍정적인 정서(기쁨 등)를 남보다 자주 경험하는 사람이다.


휴대전화를 이용해 현재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얼마나 즐거운지를 대학생, 직장인, 주부, 노인 등 다양한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구재선, 서은국, 2011). 한국인이 하루 동안 가장 즐거움을 느끼는 행위는 두 가지로 나타났다. 먹을 때와 대화할 때.



Posted by Daes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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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사회

저자
엄기호 지음
출판사
창비 | 2014-03-17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나는 접속한다, 고로 차단된다2014년 우리 사회에서 가장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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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 이유 1

 - 초조한 나르시시스트끼리 

   서로 징징대기만 하니까.


사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에 질려버린 큰 이유는 서로 징징거리는 소리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사적인 경험을 자기만의 고통으로만 말할 줄 알지 남들도 들어줄 만한 '공적인 이슈들을 다루는 언어'로 전환해내진 못한다. 또한 이를 뒤집으면 우리는 남들의 이야기를 공적인 이야기로 들을 줄 모른다는 뜻도 된다. 말하는 입이나 듣는 귀나 모두 사적인 것을 공적인 것으로 번역해내는 능력이 없는 셈이다. 

  - 프롤로그, 26쪽


초조함은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처럼 자신의 삶을 총체적으로 점검하는 것 자체를 불가능하게 한다. 삶의 목표와 방향에 댛나 총체적 점검에서 초조함을 대체한 것이 '관리'다. 내 삶 그 자체에 대해서는 돌아보지 않는 대신 이미 설정된 목표와 방향 내에서 제대로 과업이 수행되는지 아닌지를 감시·관리하는 일만이 남게 된다. 이 자기 감시와 관리의 기술이 발달하고 이에 충실할수록 정해진 트랙 바깥으로 내려오거나 트랙의 바깥을 상상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 통치의 전략이다. 

  두번째로 통치는 개인이 이 초조함을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 상태로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초조함의 원인으로 자신의 부족을 탓하게끔 조장한다. 사람들은 만성적인 초조함의 상태에 있으면서도 왜 자신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이 초조해하는지를 돌아보지 못한다... 적어도 세 사람 이상이 동일한 문제를 겪고 있다면 이는 사적인 것을 넘어 공공의 문제라 할 수 있다. ...개인이 자신의 문제를 사회적인 것으로 보편화하지 못하고 자기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것, 이 또한 통치 전략 중 하나다. 

  - 237~238쪽, 제3부 / 제1장 성장은 가능한가


타자와의 만남을 차단하고 그 만남을 구경으로 전환하며 자신의 세계에 만족하고 안도할 때 만남은 나르시시즘으로 포획된다. 타자는 나에게 내 세계의 협소함을 깨닫게 해줄 뿐 아니라 내 세계의 안온함을 일깨워 주는 존재다... 나르시시즘이라는 삶의 태도에서 타자에 대해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의 최대치는 '동감-연민'(sympathy)에 불과하다.

  이런 감정 이입에는 치명적인 위험이 숨어 있다. 내가 일시적으로 그 사람과 하나가 되긴 하지만 그 바닥에는 나와 그 사람의 처지는 다르고 '공통된 것'(the common)이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대개 우리가 사회적 약자를 보며 느끼는 연민은 나는 그렇지 않다는 안도감과 쌍을 이룬다. 연민의 결과가 나르시시즘으로 귀결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근대 서구가 주목해 왔던 주체의 성장 과정이 왜 기본적으로 타자를 도구화하는 나르시시즘인지...

  낯선 것과 대면하여 그 매혹에만 휩쓸려 버릴 때, 우리는 모든 것을 자기 자신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게 된다. 이처럼 상황 판단을 전혀 내리지 못하고 자기 자신에 도취하면 결국 자아의 상실로 치닫게 되지만 우리는 한사코 자신이 문제를 해결해 냈으며 전혀 문제가 없다고 여기게 된다. 그런 점에서 나르시시즘의 갖아 큰 무기는 바로 '정신승리'라고 할 수 있다. 

  - 249~252쪽, 제3부 / 제2장 무엇이 우리의 우정을 가로막는가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 이유 2

 - 각자도생의 시대, 외로움에 파묻힌 사람들


이 사회에서 우리 모두는 외로워졌다. 그리고 외로움이 곧 인간의 실존이라고 착각하게 되었다. 마리프랑스 이리구아얭에 따르면 외로움은 남에게 거절당하거나 자신의 존재 가치가 부정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사람이 옆에 있거나 없거나 따로 떨어져 나 혼자인 것 같은 감정이며, 내가 세상으로부터 전혀 이해받지 못하고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이 외로움의 상태에서 인간은 "자신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게 되고 "자아와 세계를 생각하고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무엇을 경험하더라도 그것이 무엇에 대한 실감과 체험이며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보증할 방법이 없다. 이 상태가 되면 인간에게는 세계도, 타자도 필요 없어지게 된다. 

  - 제2장 단속사회의 출현: 타자와 차단하고 표정까지 감춘다, 82쪽


근대사회는 오디세우스 같은 개인이라는 독특한 인간의 존재 양식을 두루 퍼뜨렸다. 개인이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말한다. '나'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활을 지금까지 존재하던 전통이나 습관에 그저 맞추고 따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근대적 개인에게 성찰성은 필수적이다. 성찰성이란 "새로운 정보나 지식에 비추어 이루어지는 항상적인 수정"을 의미한다. 개인의 자아정체성은 바로 '성찰하는 자아'로서 규정된다. 여기서 개인의 삶의 연속성은 집단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수행해야 하는 과제이며 자아 실현이라는 이름으로 완성된다...

  그렇다면 과연 모든 인간이 사회적 사슬로부터 해방되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기획하는 서사적 주체가 되었을까. 오히려 우리는 사회가 붕괴함과 동시에 개인도 붕괴하는 역설을 맞이했다. 살아가며 자신이 참조할 만한 준거 자체가 소멸해 버렸고 공중에 무중력 상태로 흩뿌려졌다... 근대 자본주의 초기에 농노가 땅으로부터 '해방'된 것이 오히려 '굶어죽을 자유'를 의미했던 것처럼 모든 사회적 관계에서 해방된 개인에게 주어진 것은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될 자유밖에 없다. 사회가 붕괴함과 동시에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썸바디(somebody)가 아니라 노바디(nobody)로 전락한 것이다.

  - 283~284쪽, 에필로그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 이유 3

"너 죽고 나 살자" 

...남의 고통에 대한 외면·망각·무감각은 능력

   - 유흥주점형 경제모델


바우만은 이것을 '의자뺏기 게임'이라고 부른다. 자리는 언제나 늘 모자라고 게임이 반복될 때마다 누군가는 탈락하고 추방되어야 한다. 마지막 한명이 남을 때까지 게임은 계속된다. 따라서 모두가 탈락의 공포에 시달린다. 최후의 승자라고 예외가 아니다...

  이 과정에서 노동의 세계는 "이익은 위로, 위험은 아래로 쏠리는" 형태로 변모했다. 류동민은 이것을 유흥주점형 경제모델이라고 부른다.

  ...문자 그대로 내가 '팔아먹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이며, 이는 유흥주점형 경제모델에서 살아남는 핵심요건이 된다... 그렇기에 이 유흥주점형 모델에서 노동자에게 요구되는 단 하나의 덕목은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능력이다.

  - 209~211쪽, 제2부 / 제3장 노동: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라



나와 남의 고민이 맞닿는 것

 - 공적인 이야기가 오가는 '공론장'


말로 해결하는 사회, 이것이 근대국가의 특징이며, 이 말을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의 토대를 흔히 공론장이라고 부른다.

  ...물론 이 공론장에서 나와는 별개인 사회 문제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바우만에 따르면 공적 공간이란 "개인의 고민과 공공의 현안들에 대해 만나서 의논하는 장소"다. 즉 이곳에서는 사적인 문제와는 별개로 공적인 이슈들만 다뤄지는 것이 아니다. 이곳은 "사적인 문제들이 공적인 이슈들을 다루는 언어로 새롭게 해석되고 사적인 곤란들에 대해서 공공의 해결책을 모색하고 조정하며 합의"하는 공간이다. 사적인 일상과 공적인 토론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사적인 일상에서 겪는 여러 어려움들을 공적인 언어로 바꾸어내는 것이 바로 공론의 과정이다. 따라서 '말로 하자'라는 근대의 이상은 근대사회가 공론장의 존재 유무에 존폐를 건 사회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드러내준다.

  - 170~171쪽, 제2부 / 제2장 소통: 위로를 구매하라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 이야기의 힘은 경험의 전승에서 나온다. 경험의 전승을 통해 개개인의 경험은 갱신되고 확장되며 연속성을 부여받으며 이로써 공동체는 지속 가능한 공간이 된다. 경험에 갱신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그 경험이 이후의 경험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틀이 되어야 한다. 이야기가 전승되면서 그 이야기가 우리 모두의 공동소유가 되는 것, 즉 듀이가 말한 "의사소통은 경험이 공동소유가 될 때까지 경험에 참여하는 과정"이 가리키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 187쪽, 제2부 / 제2장 소통: 위로를 구매하라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려면?


인간은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존재다. '왜?'라는 질문은 인간이 남이 시키는 대로 그저 따르지 않고 제 주관을 갖고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이럴 때 비로소 인간은 세상에 둘도 없는 존재로서의 개별적 자아가 될 수 있다.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해 독특한 답을 갖고 있기 때문에 유일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질문을 던지며 호락호락하게 세상과 타협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순간부터 그는 세상에 둘도 없는 바로 그 사람이 될 수 있다. 

  - 제2부 쓸모없어진 곁, 몽상이 된 사회 / 제1장 관계: 질문하면 '죽는다' 130~131쪽


근대의 이상적 인간형은 내성적인 사람?

  - 리더 아닌 팔로워로서 내성적인 사람의 힘. (책 "콰이어트"의 맥락, introvert)


우리가 살아가는 2010년대의 눈으로 보면 이처럼 질문을 던지고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간다는 근대사회의 세계관은 수동적이며 정적인 존재가 됨을 의미하기도 한다. 내면 속으로 들어간 자는 세상에 참여하지 않으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능동성을 중시하는 현대사회에서 이런 침묵과 수동성은 '뭔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런 정적이며 수동적인 존재야말로 의미를 불러일으킨다. 존 듀이(John Dewey)에 따르면 능동성과 수동성이 합해질 때 비로소 경험은 경험으로서 가치를 얻게 되고 의미가 발생한다. 즉 '함'만 통한다고 해서 인간에게 의미가 발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함', 즉 수동성이야말로 의미를 불러일으키는 원천이다. 듀이는 이것을 불에 손을 집어넣는 행위로 설명한다... 이 당함을 통해 사람은 다시는 불에 손을 넣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게 되고 이 교훈이 다음 행위를 해석하고 통제하는 바탕이 된다. 어느 행위가 다음 행위의 바탕이 되는 경험으로 바뀌는 것은 이처럼 함이 아니라 당함으로부터 비롯된다. 

  - 136~137쪽


근대의 독보적 권력은 '시각', 

그러므로 근대 권력은 '전시'를 통해 작동한다


우리 일상은 이러한 '하는 척의 함'으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은 바쁘지 않지만 바쁜 척해야 하고 내가 없으면 회사가 곧 망할 것처럼 굴어야 한다. 미국의 언론인 바버라 에런라이크(Barbara Ehrenreich)는 청소용역회사의 청소부로 위장 취업했을 때 이것을 깨달았다. 청소를 하더라도 구석구석 지나치게 깨끗이 청소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아니 회사에는 도리어 손해다 .묵은 때인 경우에는 청소를 열심히 하면 오히려 더러움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소부에게 중요한 임무는 청소를 깨끗이 하는 것이 아니라 깨끗이 보이게끔 하는 것이다. 개끗한 척하는 것이 깨끗한 것보다더 중요한 덕목이 되었다.

  ...많은 연구자들은 전시가 사실 근대사회에 내재된 권력의 작동방식이라고 지적한다. 사실 전시 역시 진정성을 출현시킨 내면과 외부의 분리와 깊은 연관이 있다. 근대인은 내면으로 물러나 외부와 긴장을 유지한 채 그 외부를 바라볼 줄 알게 되었다. 바라본다는 것은 거리를 둔다는 것이며, 이 거리를 창조함으로써 세계를 전시의 대상으로 구현하게 된다. 근대사회의 독보적 권력은 시각 그 자체다. 근대는 애초부터 보는 권력의 시대였고 세계를 전시하는 장이었다.

  - 144~146쪽


비국민의 정치

 - 신자유주의는 정치 대신 치안으로 

   법질서를 유지한다


자끄 랑시에르는 정치 바깥에서 배제된 자들이 정치 안의 몫을 주장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치라고 말한다. 

  - 제1부 악몽이 된 곁, 말 걸지 않는 사회 - 제1장 정치공동체의 파괴:폭로하고 매장한다, 41쪽


신자유주의는 법질서 바깥의 것에 대해 정치적 해결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엄격한 사법적 규율과 통제로서 통치하려는 시도다. 이에 따라 법질서 바깥의 것이 정치적 과정을 통해 법질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랑시에르의 개념에 따르면 이는 법질서에 의해 셈되지 않던 사람들이 셈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본래적 의미의 정치의 원천적 봉쇄다. 또한 이미 법질서 내부에 포함된 세력들 간 분쟁이라 하더라도 정치적 타협에 의해 해결을 시도하기보다는 사법적 판단에 의한 일방적 해결을 선호한다는 의미에서 사회의 불화를 조정하는 차원의 정치 또한 설 여지를 좁힌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법치 아래서 허용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단지 치안일 뿐이다.

  - 229~230쪽, 제2부 / 제4장 국가 폭력 : 껍데기까지 발가벗겨라


혼자만의 공간을 갖는 것의 의미


사생활이 '세상으로부터 사라질 자유'를 뜻한다면, 기숙사에서 윤숙이 박탈당한 것이 바로 이 자유였다. 윤숙은 말한다. "기숙사에 살면서 이 자유를 대신한 것은 '죄책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 모든 이가 들어가 살기를 선망하는 아파트야말로 사생활이 죽은 공간이다.

...아파트에서는 이처럼 타인의 사생활은 알 수 있지만 정작 '관계'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 제4장 사생활의 종언: 고독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118~119쪽


Posted by Daes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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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되겠지

저자
김중혁 지음
출판사
마음산책 | 2011-10-0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인생의 비밀은 쓸데없는 것과 농담에 있다!악기들의 도서관, 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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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때문에 산 책. 소설가 김중혁의 산문과 삽화가 함께 담긴 책이다. 표지 그림도 저자가 그린 거다. 뒤표지에는 소설가 김연수가 "이 책에 건질 게 있으려나. 그건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추천사니 이렇게 쓸 수밖에. 건지겠지, 뭐라도 건지겠지. 마음이 착잡하다"라고 썼다. 삽화의 재기발랄한 발상이 좋고 글이 가벼워서 좋다. 똥폼 잡지 않고 산책하는 기분으로 쓴 것 같은 글 모음이다. 사실 글보다 삽화가 더 좋았다. 


(그런데 일러스트와 삽화의 차이가 뭐지? 씨푸드와 해산물의 차이인가?)





  얼마 전 <놀러와>에 출연한 그룹 백두산과 부활을 보고 마음이 짠했다. 나의 전설들은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모텔을 운영하며 카운터에 앉아서 기타를 연습하는 베이시스트와 각종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며 음악 활동을 하는 드러머 얘기를 듣고 있자니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졌다. 하긴, 요즘 누가 헤비메탈 음악을 듣나. 불러주는 데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다른 무엇을 포기하고 있었다. 시간을 포기하고, 돈을 포기하고, 또 다른 어떤 것을 포기한 다음,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결국 인생은 어떤 것을 포기하는가의 문제다. 선택은 겉으로 드러나지만 포기는 잘 보이지 않는다. 돈을 많이 벌기로 선택하고, 결국 돈을 많이 벌게 된 사람이 어떤 걸 포기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얼마나 기분 좋게 포기할 수 있는가에 따라 인생이 즐거울 수도 있고 괴로울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돈과 성공과 권력을 포기하고 (글쎄, 포기하지 않았어도 거머쥐긴 힘들었겠지만) 시간을 선택했다. 바쁘게 사는 대신 한가한 삶을 선택했다. 즐겁게 포기할 수 잇었다. 남는 시간에 기타도 칠 수 있으니 부러울 게 없다. 

    - 102~104쪽 "돈과 성공을 포기하고?"



  <무모한 도전>의 도전처럼 승부 근성을 발휘해보고 싶다. 아예 승리의 목표를 무모하게 잡는 것이다. 불가능하다 싶을 정도로 높게 잡는 것이다. 성공하면 좋은 거고, 실패하면 할 수 없는 거다. 그러면 승부 근성을 발휘하면서도 세상 살기가 참 편할 것 같다.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올림픽 금메달을 거머쥔 김연아 선수도 앞으로 고민이 많을 텐데 나의 승부 근성을 본받아 228.56점에 만족하지 말고 만점에 도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 119쪽 "평행봉이 아니라 시소"



사람들 머리 위에 그들의 온도계가 달려 있다면,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아프지는 않은지,

모두 알 수 있을 텐데…

    - 129쪽 일러스트 문구



사적인 공간에서의 의견을 광장으로 끌어오는 것은 반칙이다. 광장으로 끌고 와서 그걸 공론화하고 '우리'에게 어떤 여론이 있는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폭력이다. 우리는 우리의 폭력을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그를 밀어냈다. 재범이 꼭 '우리'여야 했을까. 그가 '우리' 중 한 명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욕했다는 이유로 우리는 '우리'로부터 재범을 밀어내버렸다. 나는 우리가 무섭다. 

    - 280쪽 "우리가 무섭다"



Posted by Daes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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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인>
사랑이 없는 욕망 88
  지섭은 말했다.
  "사람들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한 사람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만 사는 땅은 죽은 땅입니다."

"사랑이 없는 세계" ( 욕망만 ) 188 중상
...나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사랑 때문에 괴로워했다. 우리는 사랑이 없는 세계에서 살았다. 배운 사람들이 우리를 괴롭혔다. 그들은 책상 앞에 앉아 싼 임금으로 기계를 돌릴 방법만 생각했다.
...그들은 우리와 전혀 다른 배를 탄 사람으로 행동했다. 그들은 우리의 열 배 이상의 돈을 받았다. 저녁 때 그들은 공업지대에서 먼 깨끗한 주택가, 행복한 가정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따뜻한 집에서 살았다...
223
...나는 회사의 높은 사람들이 우리 모두가 한배에 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기를 바랐다. 그들은 안 그랬다. 그들은 그들만의 다른 배를 탔다고 고집했고, 일방적으로 원하기만 했다.

현실과 대비되는, 난장이와 아들이 꿈꾼 유토피아 - 사랑 : 법 강제 (난장이) / 교육으로 도모 (영수) 182
...아버지는 사랑에 기대를 걸었었다...지나친 부의 축적을 사랑의 상실로 공인하고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네 집에 내리는 햇빛을 가려 버리고, 바람도 막아 버리고, 전깃줄도 잘라 버리고, 수도선도 끊어 버린다...
아버지가 꿈꾼 세상에서 강요되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자식을 키운다. 사랑으로 비를 내리게 하고 사랑으로 평형을 이루고, 사랑으로 바람을 불러 작은 미나리아재비꽃 줄기에까지 머물게 한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린 세상도 이상 사회는 아니었다.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을 벌하기 위해 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법을 가져야 한다면 이 세계와 다를 것이 없다. 내가 그린 세상에서는 누구나 자유로운 이성에 의해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아버지가 꿈꾼 세상에서 법률제정이라는 공식을 빼버렸다. 교육의 수단을 이용해 누구나 고귀한 사랑을 갖도록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아버지가 나에게 사랑이라는 기반을 주었다. 나도 아버지처럼 사랑에 기대를 걸었다. 그런데 우리 네 식구가 살기 위해 온 은강시는 머릿속 이상 사회와 너무나 달랐다. 우리는 참고 살았다...

내외부의 구분 '클라인 씨의 병' (무진기행 맥락) 221
..."내부와 외부의 구분이 있으면 이런 현상은 없지."
...더욱 알 수 없는 것은 그림 3의 실체가 내 눈앞에 있는데 그 실체를 무시하고 상상의 세계에서만 그 존재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림 3을 들고 "그럼 이것은 뭡니까?" 내가 물었는데 그는 간단히 "그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2 / 3차원 230
...우리의 제도는 이제 안에서부터 파괴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우리는 3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지만 칼을 품었던 사람과 그의 동료들, 그리고 그들의 식구들은 2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말까지 했다. 현실이 한 차원을 빼앗아 버렸다는 것이었다. 2차원이라면 일정한 한도와 경계가 있다.

부자의 빈자 사이의 심리적 괴리 - 모짜르트 95
햄릿을 읽고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교육받은) 사람들이 이웃집에서 받고 있는 인간적 절망에 대해 눈물짓는 능력은 마비당하고, 또 상실당한 것은 아닐까?

"하나의 생산자" 인간 전체로 생각 251
...난장이의 큰아들은 결국 자기가 가졌던 이상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고, 그가 지금 피고석에 서 있는 것도 그가 가졌던 이상이 깨어지며 나타난 반대 현상으로 생각한다고 지섭이 말했다. 나는 이때부터 심증을 굳혔다. 지섭은 계속해 난장이의 큰아들이 상대한 것은 어떤 계층 집단이 아니라 바로 인간이었다고 말했다. 자기와 난장이의 큰아들은 처음부터 평범한 상식에 속하는 것이지만 일깨워 분명히 해둔 게 있는데 그것은 노동자와 사용자는 다 같은 하나의 생산자이지 이해를 달리하는 두 등급의 집단은 아니라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저희는 사랑이 기본이 되는 같은 이상을 가졌다... 

인간생각  X 245
"그분은, 인간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근대인의 집단 격리 제도> 부자의 빈자 차별 248
...우리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파괴해 버렸고, 법 앞에 평등한 사람들을 사회적 신분에 따라 차별하는 사회적 특수 계급을 인정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에게서 인간적인 생활을 할 권리를 빼아았다.


......

<부자와 빈자>
(난장이와 큰아들 영수에 대한 편견어린 상상) 239
246-7
* 부자가 빈자를 보는 선입견과, 모든 이가 자유 의지에 따라 선택하리라는 환상이 드러난다.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을 불가능하다고 단정지으며 부자의 착취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가시고기 257)
*소유계급의 노동자에 대한 시각이 드러난다. (약물투여) 254, 5
  "그들이 행복한 마음으로 일만 하게 하는 약을 만드는 거예요..."

*근대, 정상인과 광인의 구분과 같은 맥락.
  "정말 끔찍한 건 이 세계라구요. 몇몇 나라들이 그들의 사회제도로부터 이탈하려는 사람들에게 이미 약물을 투여하기 시작했어요."
  "병이 난 사람들이겠지."
  "질병하곤 상관이 없는 일예요."



Posted by Daes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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