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이일수록 경계를 지켜주어야 합니다. 지신의 일과 타인의 일, 자신의 생각과 타인의 생각, 자신의 감정과 타인의 감정을 분리ㅏ해서 봐야 합니다.


자신이 실시간으로 느끼는 감정을 더 구체적으로, 더 상세하고 명확하게 알아차리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정서입상(Emotional Granularity)' 또는 '정서분별(Emotion Differentiation)'이라고 합니다.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신경과학자 제럴드 에덜먼(Gerald Maurice Edelman)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에게 현재란 본질적으로 '기억된 현재(remembered present)'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내 감정을 안다는 것은 그 순간의 '내 상태'를 알아차린다는 것이면서 동시에 내 과거의 의미와 미래의 의도를 알아차린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거창하죠? 철학적 느낌도 많이 풍기고요. 실제로 정서분별은 일차적으로 심신의 건강에 보탬이 되는 역량이지만, 더 나아가 삶의 나침반이 되어주는 실존적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우울증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우울장애의 한 유형인 '주요 우울장애(Major Depressive Disorder)'를 말합니다. 주요 우울장애로 진단받았다면 다른 사람보다 우울을 더 많이 느낄 뿐 아니라, 건강한 사람보다 부정적인 정서를 분별하는 수준이 낮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불안장애로 진단받은 환자는, 사람을 만날 때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을 구체적으로 분별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체적인 느낌을 불안이라고 애기하는 것일 수 있지요.


하나의 실험 결과를 일반화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이 연구는 아무리 불편하고 불쾌한 경험이라 하더라도 억지로 피하거나 별것 아니라고 애써 그 영향을 축소하기보다 최대한 구체적으로 맞닥뜨리는 학습을 하느 ㄴ것이 오히려 고통을 줄여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게다가 이러한 학습효과는 일시적이지 않았습니다. 불편한 마음을 구체적으로 표현해서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에 대해 분별하는 훈련을 받았던 사람들은, 이후 거미와 맞닥뜨리더라도 불편감이나 고통을 전보다 덜 느꼈습니다.


강한 감정을 느끼는 순간을 위해 기억해둘 것이 있습니다. 그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거나 일단 덮어둔 채 다른 활동을 하면서 잊어버리려고 하기보다는 이런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 감정은 내게 뭐라고 말하고 있지? 그 감정에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그 감정은 왜 일어났을까? 내가 무엇을 놓친 것일까? 이 감정 안에 나의 어떤 소망(욕구, 의지)가 들어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을 던져보면서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겁니다. 걷기 좋은 공원이나 강변, 숲길을 혼자 천천히 걸으면서 자문자답하는 것도 좋습니다.


아무리 강렬하고 불쾌한 감정이라 하더라도 무시하거나 잊어버리지 않고 그 즉시 들여다보는 작업을 시작한다면 그 감정이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스스로 조절하는 힘이 늘어나 적절한 행위를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집니다.


정서와 연관된 신경들은 내장운동 영역에 포함되어 있어서, 감정은 몸의 생리적 반응을 동반합니다. 평소에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민감하게 느끼고 잘 들어주는 연습을 하면 특히 강렬한 감정을 겪을 때 크게 도움이 됩니다.


원인을 알지 못하는 감정은 오래간다.


감정이 일어나고 조절되는 것은 대개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매우 빠른 속도로 일어나지요. 우리가 주어진 상황에서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뇌는 자동적으로 알아냅니다. 정서분별이 잘될수록 이러한 과정이 더 매끄럽고 적절하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뇌에게 좀 더 정교한 도구들을 안겨주는 셈이죠. 이것이 우리가 정서를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그리고 실시간으로 잘 알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미국의 인지심리학자 제럴드 클로어(Gerald Clore)와 캐런 개스퍼(Karen Gasper)에 따르면 귀인이 덜 된 부정적 감정일수록 더 오래 지속된다고 합니다.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잘 알지 못하면, 그때 느끼는 부정적 감정은 더 오래가고 다른 일에도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따라서 그냥 우울하다고 하더라도 슬픔이나 짜증, 불안이나 화 등 구체적 감정으로 쪼개고 쪼개어 각각의 원인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감정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당신에게, 감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해하면, 내가 느끼는 감정 자체를 바꿀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몯느 정보를 실시간으로 일일이 처리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과거 경험을 토대로 곧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는데, 현실과 예측의 차이, 곧 오차를 제거해가면서 적절한 행위를 고릅니다. 이것이 뇌가 지각하는 방식입니다. 뇌는 단순히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가설을 갖고 예측하면서 실제 경험에 대비해 예측 오차들을 줄여나가는 '예측코딩(Predictive coding)' 프로세스를 돌리고 있죠. 이를 통해 우리는 시각, 청각, 촉각 등 다양한 지각을 경험합니다. 뇌는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데이터를 가지고 과거 경험에 비추어 끊임없이 가설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신경과학은 뇌를 일종의 '예측기계(Predictive machine)'라고 부릅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우리가 경험하는 감정은 물론이고, 타인의 감정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읽는 것도 모두 뇌가 예측한 결과물입니다. 틀릴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예측이기 때문에 당연히 빗나갈 수 있습니다.


일단 예측오류가 최소화되면 예측은 하나의 지각이 도비니다. 이런 방식으로 뇌는 과거 경험을 현재 상황에서 적절한 행위로 갖아 잘 이끌어줄 하나의 범주를 구성하는 데 사용하지요. 뇌는 지속적으로 개념을 구성하고 감각 입력이 무엇인지 식별하기 위해 범주를 만들어내며, 무엇이 그것을 일으켰는지 원인을 추론하고, 그것에 대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 행위 계획을 세웁니다. 참 복잡해 보이는 일들이 순식간에 이루어지죠. 내부 모델이 하나의 정서 개념을 만들 때, 그 결과는 하나의 정서 사례가 됩니다. 감정은 이렇게 해서 일어납니다. 정서구성론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정서가 시각이나 청각처럼 여타 지각이 구성되는 방식과 같은 방식으로 구성된다는 것입니다. 정서가 선천적으로 뇌 안에 들어있어서 상황에 맞게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그게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기존의 심리학 교재로 정서에 관해 공부한 이들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내용입니다.


감정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조금 더 쉬운 설명이 필요할 것 같군요. '행복'을 예로 들어볼까요? 언제 행복하다고 느끼나요?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향해 활짝 웃을 때, 시원한 숲속을 걸어갈 때, 소중한 친구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우리는 행복에 대한 다양한 사례들을 경험합니다. 어려운 시험을 통과했을 때, 시합에서 기대하지 못한 우승을 거두었을 때, 계획대로 목표를 달성했을 때에도 우리는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두꺼운 책을 다 읽은 뒤에도, 누군가를 도와주었을 때에도 뿌듯한 행복감을 느낍니다. 각 경험들은 서로 종류가 다릅니다. 이때 뇌는 이 정보들을 하나의 범주로 모아놓기 위해 행복이라는 개념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개념 덕분에 앞으로 다가오는 감각적 사건들에 의미가 생깁니다. 

새로운 경험을 맞닥뜨리면 이것이 '행복'이라고 분류된 이전 경험들과 얼마나 비슷한지 신속하게 비교하면서 현재 경험을 해석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내 기준입니다. 절대적인 '행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죠.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목표들, 예를 들면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 많이 보내기, 꾸준히 운동하기, 사회에 참여하기 등이 반영됩니다. 이 모든 것은 나의 생존과 생체적응, 곧 알로스타시스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는 데 기여합니다.


지금까지 말했듯 감정이란, 내 과거 경험과 맥락에 따라 실시간 만들어지고 변화하고 흘러가는 것이니까요. 상황이 조금만 바뀌어도 달라지는 것이 감정인데 우리는 거기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해온 게 아닌지 모르겠어요.


어떤 감정을 느꼈든, 얼마나 강렬하든 상관없이 그것이 무엇이고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의미를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면 생각과 행동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갑자기 분노가 폭발해서 소리를 지르는 사람에게 '감정조절'이 안 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말과 행동의 조절이 안 되는 것이지요.


감기에 걸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바이러스는 종류도 많고 감염되는 경로도 다양합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감기에 걸리면 '코가 막히고 열이 나고 기침을 하는 등' 거의 동일한 결과가 나타납니다. 이처럼 구조적으로 다른 요소들이 같은 기능 또는 같은 결과를 내는 것을 '축중(degeneracy, 縮重)'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좀 낯설게 들리지만 물리학이나 화학에서는 이미 널리 쓰이는 개념이자, 우리 뇌를 이해하려면 꼭 알아야 할 신경작용입니다. 배럿 박사는 저서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How emotions are made)'에서 이 '축중' 개념을 가지고 정서를 설명합니다. 슬픔이나 화 같은 정서 경험도 그와 다르지 않다는 얘기지요. 갖가지 원인으로 인해 드러난 결과 또는 현상을 슬픔, 화, 기쁨으로 우리가 해석하는 것이지 애초에 화와 슬픔, 기쁨을 일으키는 신경학적 기제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혹시 '파충류의 뇌' '포유류의 뇌' 같은 말을 들어봤나요? 폴 매클린(Paul MacLean)이라는 신경과학자가 제안한 '삼위일체 뇌(Triune Brain)'이론에서 나온 말입니다. 인간의 뇌는 가장 깊은 곳의 파충류의 뇌, 그다음 층인 포유류의 뇌를 거쳐 진화했으므로 뇌가 세가지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주장이었지요. 1950년대에 처음 발표된 이래로 이 이론은 매우 널리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최근 신경과학자들은 우리 뇌가 이처럼 층을 이루어 진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인간의 뇌가 다른 동물과 다른 것은 구조가 달라서가 아니라 더 미세하게 신경 배선(wiring)이 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이성으로 감정을 통제한다'는 말은 뇌신경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틀린 말입니다.


하지만 감정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렇게 생각과 감정을 대립 구도로 보는 시각부터 버려야 합니다.


아주 오랫동안 심리학은 뇌가 '자극(Stimulus) --> 반응(Response)' 기관, 즉 자극을 받아야 반응하는 기관이라고 가정해왔지만, 신경과학의 발견들로 이 역시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습니다. 동물의 신경계는 외부 자극이 있어야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감각이 예측되고 그 뒤에 바깥에서 들어오는 감각 입력들에 의해 교정되는 순서로 작동합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뇌 활동이 들어오는 감각정보 처리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서 이전에 내가 경험한 것과 무관하게 '중립적' 또는 '객관적'으로 지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도구적 접근에서 말하는 심리적 건강이란 무조건 긍정적인 기분을 많이 느끼고 부정적인 기분을 덜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유용한 정서를 더 많이 느끼고, 해로운 정서를 덜 경험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럼 사람들은 특정 정서가 유용한지를 어떻게 알까요? 특정 맥락에서 어떤 정서가 유용하다는 것을 학습한 사람은 비슷한 상황에 처할 때 그 정서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집니다. 그러므로 정서에 대한 선호는 변할 수 있슶니다. 내 감정을 적절히 표현해 대인관계가 좋아지거나 당면한 목표를 성공적으로 이루었다고 판단되면 그 감정은 더 많이 느껴지고 더 빈번하게 표현될 수 있습니다. 반면 내가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가 예상치 못했던 불리한 경험을 했다면 그와 비슷한 감정은 통제될 수 있습니다. 표현만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덜 느낄 수도 있습니다.


마음챙김에 관한 중요한 경전 중 하나인 '사띠빳타나경(Satipatthana sutta, 念處經)'에서 부처는 신체긴으, 감각, 그리고 느낌과 의식, 의식의 내용 등의 무상한 본성을 명확히 바라보며 마음챙김을 유지할 것을 권했습니다. 반면 서구의 마음챙김 훈련들은 무아나 무상을 그만큼 가옺하지는 않습니다.


주의를 한곳에 붙들어매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게 들어온 자극에 대해 자동으로 해석(interpretation)하려는 경향을 자제하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명상을 지도해온 기 암스트롱(Guy Armstrong)에 따르면, 마음챙김이란 "무언가를 경험하면서 그것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감정이 격할 때, 또는 무언가 자극을 강하게 받았을 때에는 순간 내 몸과 마음에 일어나느 ㄴ느낌을 보면서 걷습니다. 마치 내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듯 '아,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구나' 또는 '배가 쿡쿡 쑤시는구나' '아주 뚜껑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구나' 하고 중얼거리기도 합니다. 머리가 뜨겁거나 어깨가 쑤실 때에는 그 부분을 만져주면서 따뜻한 마음으로 대합니다. 그리고 '어째서 그런 느낌이 드는 거니?' '이 느낌들은 어디에서 온 거야?' 하고 물어봐줍니다. 몸의 느낌에 대고 직접 물어보는 것입니다. 빨리 감정을 억누르려 하거나 일부러 다른 생각을 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입니다. 몸은 종종 우리에게 직접 답을 건네주기도 합니다.


캐나다의 임상심리학자 랜디 패터슨(Randy Paterson)은 "자존감이라는 말은 시대가 만들어낸 신화다.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박사는 저서 <비참해지는 법(How to be miserable)>에서 "'자기혐오'가 있을 뿐'자존감'이라는 것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자존감은 추구해서 어덩지는 대상이 아니라, 균형잡힌 삶을 잘 살아갈 때 결과적으로 느껴지는 전반적인 만족감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편 마음챙김의 연구로 유명한 심리학자 리처드 라이언ㅇ과 커크 워런 브라운은 <왜 우리에게 자존감이 필요없는가?(Why we don't need self-esteem)>라는 도발적인 제목으로 글을 발표했지요. 이들은 '나'를 대상으로 self-as-object 바라보는 서구 심리학의 오랜 관습 때문에 나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과 의견을 내면화한 것을 '나'로 착각하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반면 '나'를 하나의 과정(self-as-process)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내가 가치있는지, 쓸모 있는지, 사랑받을 만한지 확인하려고 애쓰지 않기 때문에 자존감 같은 것이 필요 없어진다고 주장합니다.


내 이름이 지영이라면 "나 화났다"가 아니라 "지영이가 화가 났구나"라고 말을 걸어보는 겁니다. 내가 아끼는 조냊가 화가 났다고 하니, "지영아, 무엇에 화가 났니? 내가 어떻게 해주면 좋겠니?"라고 자연스럽게 물어보게 되겠지요. 이렇게 나 자신에게 3인칭 시점으로만 말을 걸어도 정서조절이 더 잘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답니다.


오레곤대학교의 심리학자 엘리엇 버크먼(Elliot Berkman) 교수는 농사를 짓거나 병원에서 일하는 레지던트처럼 신체적으로 고단하게 일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우리의 피로는 대부분 심리적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버크먼 교수에 따르면, 사람들이 항상 피곤하다고 느끼는 것은 대개 강도 높은 정서 때문입니다.


지나치게 긍정적인 감정도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결국 부정적이든 긍정적잉든 강도가 높은 감정은 몸에 부담을 준다는 말입니다. 

물론 정신적으로도 부담을 줍니다.


세팔라 박사에 따르면 행복은 성공해서 얻어지는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성공으로 이끄는 원인입니다.

물론 이때의 행복이란 열정이나 흥분과 같이 강하게 일어나는 감정이 아니라, 차분함-만족감-평화로움과 같이 강도가 낮은 긍정적 정서를 말합니다. 이러한 정서들은 스트레스에 더욱 잘 대응하게 해주고 역경을 만나도 문제를 더 능숙하게 해결하도록 해줍니다.


내가 살아오면서 지금껏 보아온 사람들, 그리고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이지만 심리학과 뇌과학이 만나 빚어낸 수많은 최신 연구 결과들을 볼 때, 내 생각은 대략 한 방향으로 수렴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지만, 그 결과는 알 수 없지' 하고 마음을 먹는다면 어떨까요?




Posted by Daes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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