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행복은 생각인가


우리는 의식적인 부분이 자기 행동의 원인이라고 굳게 믿는다. 큰 오해다. 사실 일상의 수많은 선택과 행동은 의식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이루어진다.


이성적 통제가 항상 생존에 도움이 되었다면, 극도의 위험에 놓인 인간은 더욱 합리적으로 행동하도록 진화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4. 동전탐지기로 찾는 행복


자연은 기막힌 설계를 했다. 내 생각에, 개에게 사용된 새우깡 같은 유인책이 인간의 경우 행복감(쾌감)이다. 개가 새우깡을 얻기 위해 서핑을 배우듯, 인간도 쾌감을 얻기 위해 생존에 필요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


"행복감을 인간이 왜 느낄까?"라는 질문으로 이 챕터를 시작했다. 여러분은 어떤 대답을 했을지 궁금하다. 나의 간결하고도 건조한 답은 "생존, 그리고 번식"이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껴야만 했던 것이다.


생존에 유익한 활동이나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 일에 계속 매진하라고 알리는 것이 쾌의 본질적 기능인 것이다(Nesse & Ellsworth, 2009)


5. 결국은 사람이다


물소들은 사자들이 우글거리는 아프리카 초원을 수십만 마리의 동료들과 함께 횡단한다. 서로 잡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매가 혼자 있는 비둘기를 습격할 때 사냥에 성공할 확률은 약 80%다. 하지만 비둘기가 다른 친구 10마리와 함께 있을 때는 60%, 50마리와 함께할 때는 10% 이하로 사냥 성공률이 떨어진다(Trivers, 1985). 사람도 마찬가지다. 시카고 대학의 카시오포(Cacioppo) 교수 팀의 오랜 연구에 의하면 현대인의 가장 총체적인 사망 요인은 사고나 암이 아니라 외로움이다(Cacioppo & Patrick, 2008).


인간의 본성을 압축한다면 나는 "The ultimate SOCIAL machine"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사회성은 인간의 생사를 좌우하는 가장 독보적인 특성이다. 최근 여러 분야의 석학들이 이구동성으로 주장하는 결론이다.


인간의 뇌는 도대체 무엇을 하기 위해 설계되었을까? 일평생의 연구를 토대로 그가 내린 결론은 '인간관계를 잘하기 위해서'다(Gazzaniga, 2008).


인간의 뇌가 급격히 커진 시기는 함께 생활하던 집단의 크기가 팽창할 때와 맞물려 있다.


인간의 뇌를 성장시킨 기폭제는 타인의 존재였다는 것이 최근 널리 각광받는 던바 교수의 '사회적 뇌 가설(social brain hypothesis)'의 핵심이다.


내 생각엔, 행복한 사람은 바로 이 고지식한 사회적 뇌를 잘 '이용'하는 자들이다.


이런 '사회적 영양실조'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왕성한 '사회적 식욕'을 갖는 것이다. 식욕의 근원은 쾌감이다. 그래서 사람(특히 이성)을 만나고, 살을 비빌 때 뇌에서는 사회적 쾌감을 대량 방출한다. '강추'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런 사회적 쾌감을 예민하게 느꼈던 자들의 유전자를 지니고 산다. 그래서 지금도 사람을 절실히 찾는 것이고, 가장 강렬한 기쁨과 즐거움을 사람을 통해 느끼는 것이다. 사람과 무관해 보이는 감정들도 사실 대부분 사람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극도의 사회성. 하버드 대학의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 교수가 최근 저서에서 내린 결론이다(Wilson, 2012). 지구에서 최고의 생존 성공담을 가진 동물은 개미와 인간이다. 두 생명체의 공통된 특성은 유별날 정도로 사회적이라는 것이다. 한 개체로서는 그다지 탁월한 능력이 없지만, 서로 돕고 나누고 이용하는 복잡한 사회적 능력 덕분에 두 종은 지구에서 유례가 없는 성공신화를 썼다. 그래서 윌슨은 인간의 지구 정복을 '사회적 정복(social conquest)'라고 표현했다.


행복감을 발생시키는 우리 뇌는 이처럼 사람에 '중독'되어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래서 사회적 경험과 행복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사회적 경험이 행복에 중요한 것은 물론이고, 나는 한 발 더 나아가 행복감(쾌감)은 사회적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게 되었다고까지 생각한다.


첫째, 행복은 객관적인 삶의 조건들에 의해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둘째, 행복의 개인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그가 물려받은 유전적 특성,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외향성이라는 성격 특질이다.


6. 행복은 아이스크림이다


스칸디나비아 행복의 원동력은 넘치는 자유, 타인에 대한 신뢰, 그리고 다양한 재능과 관심에 대한 존중이다(Bormans, 2010). 그들 사회는 돈이나 지위같은 삶의 외형보다 자신에게 중요한 일상의 즐거움과 의미에 더 관심을 두고 사는 곳이다.


복권 당첨 같은 일확천금의 경험은 장기적인 행복의 관점에서 보면 저주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위의 복권 연구에서 보면, 복권에 당첨된 자들의 행복 더듬이는 둔해진다. 복권 당첨 후 그들은 TV 시청, 쇼핑, 친구들과의 식사 같은 일상의 작은 즐거움에서 이전 같은 기쁨을 더 이상 느끼지 못했다. 큰 자극의 후유증이다.


돈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착각을 심어준다. 그래서 초콜릿 같은 시시한 것에 마음 두지 않게 하고, 이런 자극을 음미하는 능력을 감소시킨다. 심지어 사람이라는 자극에도 관심을 덜 갖게 한다. 돈을 생각할수록 카페에서 다른 사람과 대화를 덜 하고(Mogilner, 2010), 어려움을 당해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사양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Vohs, Mead, & Goode, 2006).


자료들을 보면 행복한 사람들은 이런 '시시한' 즐거움을 여러 모양으로 자주 느끼는 사람들이다(Diener, Sandvik, & Pavot, 1991).


객관적으로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보다 이미 가진 것을 얼마나 좋아하느냐가 행복과 더 깊은 관련이 있다(Diener, Lucas, Oishi, & Suh, 2002).


정서학자들의 중요한 발견 중 하나는 불행의 감소(예: -4에서 0)와 행복의 증가(예: 0에서 4)에 기여하는 요인들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이것을 긍정-부정 정서의 독립성(independence)이라고 하며(Diener&Emmons, 1984), 정신 병리에 몰두했던 심리학이 행복 연구를 시작하게 된 이론적 배경이다. 이 말을 쉽게 푼다면, 불행의 감소와 행복의 증가는 서로 다른 별개의 현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화려한 변신의 순간에만 주목하지, 이 삶을 구성하는 그 뒤의 많은 시간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성공하면 당연히 행복해지리라는 기대를 하지만, 실상 큰 행복에 변화가 없다는 사실은 살면서 깨닫게 된다. 그제야 당황한다.


프랑스 사상가 라 루시프코(La Rouchefecould)가 400년 전에 지적한 대로 우리는 "상상하는 만큼 행복해지지도 불행해지지도 않는다".


많은 사람이 미래에 무엇이 되기 위해 전력 질주한다. 이렇게 'becoming'에 눈을 두고 살지만, 정작 행복이 담겨 있는 곳은 'being'이다.


그래서 행복은 '한 방'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쾌락은 곧 소멸되기 때문에, 한 번의 커다란 기쁨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 번 느끼는 것이 절대적이다. 유학 시절, 지도 교수가 쓴 논문을 읽은 적이 있다. 제목은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Happiness is the frequency, not the intensity, of positive affect'. 나는 이것이 행복의 가장 중요한 진리를 담은 문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7. '사람쟁이' 성격


행복에 절대적인 영향을 비치지만, 대부분이 미처 생각지 않는 요인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어떤 것이 그렇게 중요할까? 오랫동안 행복을 연구한 석학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그 질문을 한다면 대답은 거의 비슷할 것이다.

"유전. 더 구체적으로는 외향성."


"행복해지려는 노력은 키가 커지려는 노력만큼 덧없다(Lykken & Tellegen, 1996)." 다소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그래도 행복에 있어서 유전적 개입을 부인하는 학자는 없다.


유전의 힘은 강력하다. 하지만 냄새도 모양도 없는 이 유전적 요인을 일상에서 간파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선천적으로 행복한 성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의 외적 '증상'에 주목하게 되고, 그것이 행복의 원인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기침이 감기의 증상이지 원인은 아니다.


유전과 행복을 각각 하나의 대륙이라고 한다면, 이 둘을 연결하는 보스포러스 다리가 있다. '외향성'이라는 성격 특질이다. 유전적 영향에 의해 외향성 수치는 어느 정도 정해지며, 그 외향성의 정도가 개인의 행복수치와 깊은 관련을 맺는다.


두 그룹 간의 차이는 오직 두 가지 영역에서만 나타났다. 첫째, 성격. 행복한 사람들은 월등히 더 외향적이고 정서적 안정성이 높았다. 둘째, 대인관계. 행복지수 상위 그룹의 사회적 관계의 빈도와 만족감이 월등히 높았다. 사실 두 가지 특징의 공통분모는 '사회성'이다. 그래서 이 논문의 저자들은 행복을 보장하는 충분조건은 없지만, 없어서는 안 될 필요조건이 사회적 관계라는 결론을 내렸다.


내향적인 사람들도 혼자일 때보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더 높은 행복감을 느꼈다(Diener & Biswas-Diener, 2008). 그래서 내가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다. 회식 3차로 노래방에 갈 때, 배려한다는 마음으로 평소 조용한 김 양을 먼저 보내지 말라고. 노래방에서 그녀는 속으로 웃으며 좋아할 수 있다.


최근 주목받는 콜로라도 대학의 리프 반 보벤(Leaf van Boven)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행복한 이들은 공연이나 여행 같은 '경험'을 사기 위한 지출이 많고, 불행한 이들은 옷이나 물건 같은 '물질' 구매가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Van Boven & Gilovich, 2003). 행복과 관련해 경험보다 물질 구매가 불리한 점은 무엇일까? 경험(여행)에 비해 물질(신상 백)에서 얻는 즐거움은 더 빨리 적응되어 사라지고, 타인과의 상대적 비교를 더 자주하게 된다((누군가 반드시 더 좋은 가방을 들고 다닌다!).


외향성은 일종의 '사회성 위도'다. 이 값이 높을수록 사회적 관계의 양과 질이 높고, 바로 이 점이 행복에 절대적 기여를 한다.


레바논에 이런 속담이 있다. "사람이 없다면 천국조차 갈 곳이 못 된다."


8. 한국인의 행복


행복감을 예측하는 가장 중요한 문화적 특성은 개인주의다(Diener, Diener, & Diener, 1995).


개인주의는 국가의 경제 수준과 행복을 이어주는 일종의 '접착제' 역할을 한다(Inglehart, Foa, Peterson, & Welzel, 2008). 역으로 이 접착제(개인주의)가 부족한 사회는 경제적 발전을 이룩해도 거기에 상응하는 행복감이 뒤따라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한국과 일본이 그 예다.


이렇듯 과도한 타인 의식은 집단주의 문화의 행복감을 낮춘다. 행복의 중요 요건 중 하나는 내 삶의 주인이 타인이 아닌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는 이런 말을 남겼다. "행복해지려면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신경 쓰지 마라(To be happy, we must not be too concerned of others)."


본인의 경제 수준과 상관없이, 사랑보다 돈을 중요하게 생각할수록 그의 행복도는 낮다(Diener & Biswas-Diener, 2002). 반대로 사랑에 더 많은 가치를 두는 사람일수록 행복하다.


9. 오컴의 날로 행복을 베다


철옹성 같던 매슬로우의 이론도 최근 위아래가 뒤바뀌고 있다(Kenrick, Griskevicius, Neuberg, & Schaller, 2010).


행복한 사람일수록 미래에 더 건강해지고, 직장에서 더 성공하며, 사회적 관계도 윤택해지고, 더 건강한 시민의식을 갖게 된다(구재선, 김아람, 서은국, 2009; 구재선, 서은국, 2012, 2013 신지은, 최혜원, 구재선, 서은국, 2013 Diener, Kanazawa, Suh, & Oishi, 2014; Lyubomrisky, King, & Diener, 2005). 한국과 미국 사회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연구들에서 어떤 사람을 '행복한 사람'으로 정의했을까? 남의 칭송과 칭찬을 받으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일상에서 긍정적인 정서(기쁨 등)를 남보다 자주 경험하는 사람이다.


휴대전화를 이용해 현재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얼마나 즐거운지를 대학생, 직장인, 주부, 노인 등 다양한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구재선, 서은국, 2011). 한국인이 하루 동안 가장 즐거움을 느끼는 행위는 두 가지로 나타났다. 먹을 때와 대화할 때.



Posted by Daes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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