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이 병을 몰라요


인생에서 정말 힘든 상황을 맞았을 때 이것을 혼자 극복하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 만약 혼자서 극복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매우 운이 좋은 사람이거나 혹은 그가 처한 상황이 진정 힘든 상황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상황을 벗어나길 간절히 바라며 그것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느낄 때 자살을 시도하는 것일 뿐, 결코 죽음 그 자체를 원하는 것은 아닌 셈이다.


냉정할 정도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사고에 근거해 의학적 판단을 내리는 훈련을 받아왔고, 내가 가르치는 의과 대학생과 전공의 들에게도 늘 이러한 면을 강조해 왔던 내가 장모님이 보내 주신 한약을 먹고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는다는 것은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통제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외부의 무언가가 있을 때 그것에 따라 행동을 결정할 경우, 나의 생활 자체가 스스로도 예측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상황이 좋지 않을수록, 미래를 예측하기 힘들수록, 오히려 자기 생활을 규칙적으로 잘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약속과 계획은 신중하게 세우고, 한번 무언가를 하기로 결정하고 나면 가능한 한 바꾸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나는 ‘루틴routine’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요즘 나는 분명히 느낀다. 살면서 위기를 겪게 되면 누구나 한 번쯤 자살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이는 죽음 자체에 대한 갈구가 아니라 삶의 괴로움을 더는 견디기 힘들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우울감이 만들어 낸 것일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그러므로 그 우울감을 다스릴 수 있다면, 자살 생각 역시 지나갈 수 있다는 것을. 내 마음이 진짜 죽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불안할수록 원래 계획대로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에는 원래의 계획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 이는 불안 그 자체의 속성 때문이다. 불안은 기본적으로 예측 불가능성 또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나온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불안한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을 자꾸 변경함으로써 미래를 더 예측 불가능하게 만드는 오류를 범하곤 한다. 애매하고 불안한 상황이라면 한번 내린 결정을 자꾸 바꾸기보다는 계획대로 밀고 나가는 편이 훨씬 더 나은데도 말이다. 계획대로 해 보다가 잘 되지 않으면 그때 방향을 바꾸어도 늦지 않다.


우리의 뇌는 생각보다 아주 훌륭하다. 결과 예측이 어렵거나 애매한 상황일 때에는 여러 가지 대안들 중 첫 번째로 드는 생각이 가장 나은 선택일 가능성이 크다. 첫 번째로 드는 생각은 뇌가 그 시점까지의 여러 정보들을 근거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환자들이 이러한 상황에 처해 내게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한다면, 나는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 아마 나는 주저 없이, 감정이 생각에 영향을 주는 기전에 대해 설명하고, 우울한 감정 상태에서는 단지 현재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책 없는 결정을 저지르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며, 그분들의 우울 증상이 개선될 때까지는 결정을 미루라고 조언했을 것이다.


가장 힘든 순간,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무언가를 그만두려고 해선 안 된다. 그러한 상황에는 우리의 판단이 충분히 이성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그만두려면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내 이성이 감정을 충분히 통제하고 있다는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처음 계획했던 대로 하던 것을 계속하는 편이 훨씬 더 낫다.



 

'왜'에서 '어떻게'로


하지만 사고로 인해 골절이 되거나 피부가 찢어지는 일이 아닌 이상, 질병의 원인을 정확히 말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울증을 비롯한 다양한 정신과적 질환은 전체 인구의 20퍼센트 정도가 경험하게 되는 매우 흔한 질병이지만, 그 원인이 무엇인지 쉽사리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꾸 원인을 찾으려고 머릿속이 작동할 때 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싹둑 자르고, 냉정하게 ‘원인 따위는 없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불행에는 이유가 없다. 세상 모든 일은 그 원인을 찾아야 해결할 수 있지만, 그럴 수 없는 일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불행일 것이다. 아프지만,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상황은 상황대로 두고,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행복의 시뮬레이션


흔히 사람들은 우울이 가장 힘든 감정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거의 모든 경우 우울 이전에 불안이라는 감정이 존재한다. 불안은 기본적으로 예측 불가능성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일단 우리는 불안해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부정적인 결과를 예측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부정적인 결과, 그 중에서도 가장 나쁜 결과를 끊임없이 반복해 상상하기 시작한다. 앞서 이야기한 ‘두 번째 화살’을 만들어 스스로에게 쏘는 셈이다. 이러한 상태에까지 이르면, 어느새 가장 나쁜 결과는 수많은 경우의 수 가운데 하나가 아닌 현실적인 위협으로 느껴지게 된다. 구체적인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 삶의 어떤 상황에서 최악의 경우를 맞이하게 될 가능성은 최고의 경우를 맞이하게 될 가능성만큼이나 적다. 다시 말해,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불행은 로또에 당첨될 확률만큼이나 낮은 것이다.





한번 더 생각해보기 - 자살을 하면 안 되는 이유


최근 발표된 한 연구에 의하면, 기분장애(우울증 및 조울증) 환자 334명의 자녀들 701명을 5.6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가족 내 우울증 전이의 영향을 통제하고 나서도 부모의 자살 시도가 우울증이 있는 자녀의 자살 시도 가능성을 다섯 배나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실 직시 : 답이 없음이 답일 때


“답이 없다고 절망할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견뎌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답입니다.”  


하지만 거듭 강조하다시피 나쁜 일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그 자체의 크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사건에 대한 나 자신의 반응으로 인해 결정된다.


일상을 유지해야 한다. 이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이다. 끼니를 거르지 않고, 친구들을 만나고, 가족들과 나들이를 하고, 운동이나 산책을 하고…. 이런 일들을 포기해선 안 된다. 그래야만 정말로 답답하고 괴로운 상황조차 마침내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포기한다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 인생에서 나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단지 내 인생의 작은 조각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인내 : 한계를 인정하면서 한계를 넓히기


진정한 ‘인내’는 무조건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당장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무언가 해야 할 일을 계속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 그리고 여기 : 미래와의 관계 형성하기


삶이 고통스러울 때 사람들은 현재를 외면하고,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며 미래를 향한 막연한 기대를 품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현재를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에서 갖는 이러한 기대는 희망이 아니다. 희망은 오히려 고통 속에서 고통을 직면하게 함으로써, 우리가 현재에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하지만 우울증에서 조금 더 회복된 지금의 나에게는 오늘 하루가, 지금 이 순간의 현재가 너무나 소중하다.





희망에게 시간을


삶의 어느 순간, 고통이 아주 커져 버려 감당하기 힘든 크기가 되면, 이 ‘삶의 이유’는 보이지 않고 ‘죽음의 이유’만 수백 가지 떠오르기도 한다. 세상이 나에게 죽어라, 죽어라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도 있다. 그럴 때마다 ‘삶의 이유’나 ‘죽음의 이유’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지금 내가 우울해서 그런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상기했으면 한다. 평소 ‘살아야 할 이유’ 같은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은 그것이 직업인 철학자 말고는 없을 것이다. 내 삶이 행복하다거나 불행하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은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주어진 인생을 ‘그냥’ 살아간다.





한번 더 생각해 보기 -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면


트라우마는 과거의 반복이므로, 이를 이겨 내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바로 ‘그것이 끝나게 하는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 간단하다. 트라우마는 과거에 끝나 버린 사건이므로, 현재의 자신에게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스스로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사건을 회상할 수는 있다. 생각은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이므로. 그러나 사건이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그 사건은 지금의 나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꺼내는 것은 확실히 가능하다. 즉,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이러한 자세를 갖는 것이 트라우마 극복에는 매우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일상을 회복하는 것이 트라우마 극복의 시작이자, 거의 전부다





YOLO! 1년차의 마음 가져보기


새로운 것에 대해 많은 호기심을 갖고 있고 함께할 친구와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고난을 슬기롭게 견뎌 낸다. 그리고 그렇게 고난을 견뎌 내고 나면, 심리적으로 더욱 굳건해져 다른 사람들을 포용하고 도와줄 수 있는 큰 그릇으로 성장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아프고 힘들고 괴로워도,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친구와 동료들의 삶에 대한 관심,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의 끈을 놓쳐선 안 된다.






잘잘못 따지지 않기


누군가를 떠올리며 그의 잘못을 되새김질하고, 분노하고, 상황을 이렇게 만든 그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도 내 정신 건강에 이로울 게 하나도 없다.





가족을 웃게 만들기


괴로움으로 인해 관계가 단절되고 삶의 영역이 좁아진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어떤 일에 있어서든 쉽게 서운해한다는 것이다.


 


팬으로 살아가기


삶의 어느 순간 몸과 마음이 지치고 아플 때, 나는 누군가(아이돌 가수든 배우든, 운동 선수든 스포츠팀이든 상관없다)의 진심 어린 팬이 되어 보라고 권하곤 한다. 우울한 상태에 놓인 사람들에게는 좋은 것이라곤 없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즐거움을 주는 것은 모두 사라져 버린 듯하고, 다른 사람들이 웃거나 기뻐하는 상황에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다는 의미다. 삶의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좋아할 수 있는 누군가가 남아 있다는 것은, 깜깜한 밤에 켤 수 있는 촛불 하나가 아직 남아 있는 것과 같다. 비록 하나의 촛불은 매우 약한 불빛을 내뿜을 뿐이지만, 그 촛불 하나가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아볼 수 있게 된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고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는 과정에서, 나는 점점 삶의 목표 그 자체보다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이 긴 여행길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아무리 이 여행길이 험하다 하더라도, 함께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혹은 함께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멀리서나마 응원받을 수 있고 내 편이 되어 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힘들고 거친 여행길에 상처받거나 실망하거나 때로 주저앉게 되더라도 다시 일어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는 것을 믿는다. 팬이 된다는 것은 바로 그런 누군가를 만드는 일이 아닐까.




도움을 줌으로써 도움 받기


2013년 4월 혼자서 귀국해 수술을 마친 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던 나는 오랫동안 미루어 왔던 가족과의 장거리 여행을 마침내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여행지는 캘리포니아에 인접한 애리조나 주의 ‘세도나’였다. 세도나는 여러 편의 서부 영화 촬영지이기도 했으며, 미국에서 가장 영적spiritual인 곳으로 알려져 있는 데다, 많은 예술가들이 찾는 아름다운 휴양 도시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돌려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으며 타인을 돕고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되겠다고도 다짐한다. 내가 먼저 그렇게 했을 때 타인은 물론 나 자신의 선함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믿기에. 그리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나 자신을 구원할 것이라고 믿기에.




한번 더 생각해 보기 - 고통을 겪는 가족과 함께 살아가기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해도 우리 가족은 ‘함께’라는 것을 상대가 느끼게 해 주고, 스스로도 그렇게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가족은 함께 고난을 견디며 더 단단해지는 법이다.




마치는 글 1


지금 이 순간 소멸하지 않고 살아 숨 쉬는 나의 존재는 희망에 대한 가장 분명한 근거가 아닐까.  


우리는 스스로 희망을 만들 수 있다. 희망의 근거가 우리 자신의 존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희망에 의해 구원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삶은 자신의 길을 찾아 낼 것이다.




마치는 글 2


“순순히 어둠을 받아들이지 마오.”   이 책 맨 처음에도 인용했던 이 말은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와 더 유명해진 시인 딜런 토마스의 시 제목이다

Posted by Daes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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