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카페에서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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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김용규 (웅진지식하우스,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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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교 졸업 무렵에 집안 사정으로 돈 안 들고 오래 머물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두달 쯤을 신기학교에서 보냈다.

  운동장에는 땔감으로 쓸 나무가 통나무 채로 쌓여 있었다. 며칠동안 끊임없이 도끼질을 했다. 땔감이 되었다. 속이 다 시원했다. 밤이 되면 술을 마셨다. 기타 치고 노래도 부르고 이야기도 나눴다. 원석샘과 은하였던가, 아무튼 두 사람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추던 밤, 그 모습이 참 아름다워 보였다. 원석샘과 사이 형은 진심으로 생애 최초로 백수가 된 나의 고민을 들어주셨다. 
  고향에서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고향이 없다. 낡아빠진 모습 그대로인 고향이 아니라 마음이 쉴 수 있는 공간. 신기학교는 그런 곳이다. 현실적으로는 돈 걱정 안하고 쉬어갈 수 있는 곳이기에 '우리집'이 된다. 
  가치를 추구하는 공간에서는 가치가 중요하지 않다. 함께한다는 사실이 진짜배기다. '철학카페에서 시 읽기'의 글쓴이는 '상호 주관적 매듭'을 강조한다. 
  "바로 이 상호 주관적 매듭이 모든 가치 있는 일이 그것을 행하는 사람에게 상응하는 기쁨과 대가를 어김없이 돌려주는 메커니즘의 실체입니다." (238쪽) 중요한 것은 관계다. 가치와 기쁨과 대가가 머무는 플랫폼으로서의 관계. 관계를 만드는 구심점으로서, 가치를 추구하는 공간으로서 제 2의 고향은 중요하다. '우리집'은 하숙집이 된지 오래, 고향은 재개발된지 오래라면 집도 고향도 만들어야 한다. 가족 같은 공간에서 관계를 가꿔야 한다. 경쟁하지 않는 공간에서는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다. 저의를 파악하느라 애쓰지 않아도 된다. 진정한 위로가 가능하다. 
  하지만 가치를 부정할 수만은 없다. 나침반으로서 가치는 불투명하다. 무언가 만들어내야 한다. 만들어내는 힘은 관계와 공간에서 나온다. 신기학교와 기연이네는 그런 곳이다. 
  며칠 전 청파교회에서 열린 저자와의 대화에서 글쓴이 김용규 씨는 책을 쓰게 된  계기를 말했다. 돈이 궁하던 터에 출판사의 독촉을 이겨낼 도리가 없더라고 했다. 질은 낮아질지언정 판매량은 늘어나는 책을 쓰게 되었다고도 했다. 언더그라운드의 고충을 오버그라운드에서 해결하는 모습이었다. 반대로, 오버그라운드의 고충은 언더그라운드로서의 고향이 해결해주는 것 아닐까.
  고향에 가자,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드는 피로감은 살맛 나는 작은 세상이 풀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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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es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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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김용규 (웅진지식하우스,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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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형식으로 후기를 남깁니다.

준수 형 발제 중에서...

준수 형이 던지는 질문>>
- 당신은 어떠한가? 당신의 인생을 사랑하는가? 홀로 있어도 의연하고 자유로운가?
- 자기 인생의 주인되기는 어떤 의미일까? 당신도 불안한가? 아니면 무언가 붙잡을 끈이 있는가? 아니면 불안을 잊으려 여기저기 몸을 움직여 보고 있는가
- 아파하는 인생이 이렇게 많은 때에 어찌 인생을 정의내릴수 있을까?

"당신. 당신의 인생을 예상치 말아라. 그 이상의 것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 이 시대의 ‘예측 가능성’은 현 계급 유지 가능성이다. 예측 가능성을 추구하는 것, 그러니까 가난해지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 지금을 불안하게 만든다. 예측 불가능성은 불안과 재미를 준다. 어딜 가나 불안이 따라온다면 재미를 추구하는 게 낫다.

"어쩌면 이렇게 무언가를 찾아 헤메지만, 돌아보면 잃어버리는 것이 많은 게 우리 인생일지도. 그대여. 사랑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참 사랑을 기대하며.."
  - 잃어버리는 것은 가치,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죽게 된다는 생각. 가치와 죽음을 싸고 도는 원심력 같은 게 인생일까.


인건이 발제 중에서...

어쩌면 판단을 하는 것도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도 백지 한 장 차이일 지도 모른다. 왜냐면 판단하고 존재 받이도 하고 여기에 있는 건 변함없는 나이기 때문이다. 단지 누구의 시처럼 자꾸 돌개바람을 일으키다보면 탑을 흔들 듯이 존재끼리 만나는 아름다운 순간이 올 수 있다.

화학적 평형이 있다. 겉으로 봤을 때는 잔잔해서 변화가 없는 것 같은 상태다. 물 속으로 나트륨이 들어가면 격렬한 반응이 난다. 그리고 깊은 물 속으로 나트륨이 너덜너덜 해진 채 침전하고 거품들이 아스라이 올라온다. 반응이 끝난 고요함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물과 그 속의 물질은 서로에게 에너지를 주고 받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전자들이 오간다. 마침내 서로에게 서로 인 채로 부둥켜 앉은 상태를 찾은 것이다.
  - 판단의 주체, 대상으로서의 주체는 결국 같은 몸이다. ‘마침내' 서로에게 서로인 채, 하나가 된다. 모순, 어떤 방패든 뚫고 마는 창과 어떤 창이든 막아내는 방패는 함께 존재할 수 있다. 불가능은 의외로 가능하다. 


관택이형 발제 중에서..

결국 내가 존재(경험)하는 것이 세상의 전부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사유는 나만의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모든 인간에게 ‘경험’이라는 주관적인 현실은 결국 ‘해석’이라는 과정을 통해 형성되며, 함께 있지만 다른 현실을 살아가는 현존재의 피상성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같이 있지만 다른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 외로울 수밖에 없는 것인가?
  - 별은 소중하다. 몇만 광년 너머에서 사라져버렸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빛나고 있으니까. 너의 삶을 내가 만질 수 없겠지만, 어쨌든 나는 너를 만나고 있다.

하지만 시는 우리의 삶을 더욱 크게 확장시켜주는 놀라운 교통수단이 된다. 이는 외부적으로 점점 더 넓혀나갈 때, 또 다른 생명, 또 다른 문화, 또 다른 사회를 경험하게 되며, 내부적으로 넓혀 나간다고 하면, 존재의 깊은 세계 속으로 참여 할 수 있는 기회와 일상성에 파묻혀 버린 이는 절대로 발견할 수 없는 별천지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눈이 내리는 밤이 어둠 속에서 내리는 빛의 향연으로 경험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 생각나는 노래... (가사) 걸어서 하늘까지 / 장현철 

눈 내리는 밤은 언제나 참기 힘든 지난 추억이
가슴 깊은 곳에 숨겨둔 너를 생각하게 하는데

어둔 미로 속을 헤매는 과거에는
내가 살아가는 그 이유 몰랐지만
하루를 살 수 있었던 건 네가 있다는 그 것
너에게 모두 주고 싶어 너를 위하여
마지막 그 하나까지 

말이 없이 살아가라고 아주 쉽게 충고하지만 
세상사는 어떤 사람도 강요하지 못해 나에게 

어둔 미로 속을 헤매는 과거에는 
내가 살아가는 그 이유 몰랐지만 
하루를 살 수 있었던 건 네가 있다는 그 것 
너에게 모두 주고 싶어 너를 위하여 
걸어서 저 하늘까지

‘다시 만들어진 현실’에 대한 인식이 가능해지면, 새삼 깨닫게 되는 아름다움과 더불어 나의 삶을 구성하는 피폐하고 우울한 겉껍질과 같은 굴레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결국 느껴지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는 능력, 보이는 것에 곧이곧대로 휩쓸리지 않을 수 있는 머뭇거림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 소설 데미안 중에서.

철학적 인간이 아름다운 이유는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며, 아름다움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며, 자신의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이 아닐 수 있다는 성찰과 반성을 반복함으로 진정한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 시인의 눈으로 아름다움을 찾고 또 행동하고 또 성찰하는 아름다움
Posted by Daes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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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천원인생열심히일해도가난한우리시대의노동일기
카테고리 경제/경영 > 각국경제
지은이 안수찬 (한겨레출판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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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달 남짓의 주차장 알바가 끝났다. 시속 60키로로 스쳐지나는 차들. 공간도 넓은데 내 곁을 바짝 붙어서 지나는 사람들. 멍하니 있다 보면 깜짝깜짝 놀란다. 나는 마네킹이다. 길을 알려주는 내 말에 답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답할 필요가 없지.
  사람은 도구가 아닌 목적이어야 한다는 말은 초라한 선언이다. 사람은 도구니까 다들 하는 말이다, 어차피. 사실 나는 스스로 쓸모 있을 때 자존감이 채워졌다. 내 뜻대로 차들이 움직여줘 원활하게 소통될 때, 안내해준 곳으로 고객님이 걸어갈 때 뿌듯하더라. 내 말은 무시하고 제 갈길 가는 게 보통이니까. 나는 정말 마네킹이었다.
  쉬는 시간은 2시반 전에는 두시간 근무에 한시간씩, 그 뒤로는 80분 근무에 40분씩이다. 휴게실이 꽤 멀리 있으니 오가는 10분을 제하면 휴식도 그리 충분치 않다. 휴게실 가는 와중에 길 묻는 고객님을 만나는 게 참 싫더라. 밥 먹고 나서 햇볕 쬐려고 쉬는 시간 쪼개서 건물 밖에 나가 있는데, 보라색 촌스런 유니폼 보고는 개나소나 길을 묻는다. 짜증나서는 잘 몰라요, 일부러 더 퉁명스럽게 답했다. 빌어먹을 쉬는 시간, 정말 빌어먹는 시간이다. 시간을 빌려 쓴다.
  '4천원 인생'을 휴게실에서 내놓고 읽기 부끄러웠다.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 일기' 두달 넘게 일하고 모은 돈은 남은 3월의 생활비 뿐이다. 뭐, 물론 빚을 청산하는 데 꽤 많이 썼다. 그래도 모든 관절이 쑤시고 마음이 황량해진 대가 치고는 참 적다. 그래, 열심히 일해도 가난하다. 여행가고 싶은데, 주변에서도 여행 한번 다녀오라는데 엄두가 안난다. 어디로, 도대체 어디로 가란 말이냐.
  우연히 남의 월급 명세서를 본 적이 있다. 총급여 170만 원, 적당하던데? 하지만 몇 년 근무한 사람의 월급이라고 들었다. 대부분 120만원 쯤을 받는단다. 다음주에 언제 쉴지 알 수 없는 근무 배정, 게다가 며칠씩은 밤 11시나 되어야 끝나는 야간근무. 하지만 나는 일하는 요일과 시간이 고정적이었다. 대신에 일당 5만원밖에 안받고, “절대 4대보험은 안빠집니다.” 이른바 ‘단기근무자'의 빛과 그늘. 
  그러고 보니, 나는 말 그대로 불안정노동자였다. 나 이외의 월급쟁이들, ‘장기근무자'가 늘어나면 단기근무자, 즉 일용직은 일을 그만둬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미리 말씀드리는 겁니다.” 다행히도 나는 내 뜻대로 일을 그만뒀다. 
  마음 속에서도 그 일은 단기였다. 오래 할 일은 못됐다. 관절이 쑤신 것도 그렇지만, 자잘한 스트레스가 사람을 좀스럽게 만들었다. 그래도 웃으려 애썼다. 하지만 마네킹이 웃을 수 있나, 굳은 표정 뿐이지.
  왜 사는가 하는 질문에 나는 답을 이미 찾아 놓았다. 나아질 거란 희망이 있으니까, 근데 나아지겠나. 언젠가는 임금이 제 날짜에 꼬박꼬박 나오고 4대보험도 적용되고, 구질구질한 유니폼 입은 애들 비웃으며 지나가는 소비자가 될 수 있겠지. 
  주차장 알바가 끝나고 옷을 갈아입고 퇴근하려는 애매한 타이밍에 똥이 마리던 날, 휴게실 앞 한적한 화장실로 갈까, 아니면 붐비는 ㅇㅇㅇ몰 화장실로 갈까 갈등했다. ㅇㅇㅇ몰을 택했다. 지하 2층의 주차장에서 한 층만 올라가면 소비의 공간이다. 소비자이고 싶었다. 소비자의 똥.
  소비당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벗어나고픈 게 모든 이의 소망이겠지. 공간에서 벗어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니 시간만 보낼 뿐이다. 그러므로 공간을 바꾸는 게 변화의 시작이다. 공간을 바꿔 시간의 질을 높이는 게 참된 일이다. 눈앞의 시간을 소모하고자 애쓰는 비루한 마음을 위로하는 방법은 다 함께 바꾸는 것이다. 인생을 소비하는 빌어먹을 라이프스타일의 잔물결, 그 한가닥씩 꼬집어 비틀어보자. 
  나아지리란 희망이 현재에 대한 절망에서 새어나오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빛나는 희망이었음 싶다. 즐겁게 살고 싶다. 나, 사람답게 살고 싶다. 
 
 

책읽기 모임 후 생각 정리>>


1>

관택이 형은 부활의 김태원이 무릎팍도사에 나와서 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뭔가를 간직한 것 같은 사람이 멋진 사람이라는 얘기. (검색 결과, 비밀을 많이 간직하란 얘기였나 보다.) 예술가는 그 비밀을 간직한 멋진 사람 아닐까. 예술가는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우울한 사람이다. 그 우울감은 감상자가 느끼는 생동감의 뿌리다. 사회적으로는 '엄마'다.


2>

하일 군의 말을 듣고 정리한 것. 

 

- 소비자의 흐릿한 자기인식에 대비되는 생산자의 명징한 자기 인식

소비 행위는 그 사람의 계급을 감출 수 있지만 생산은 계급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물건을 살 때가 아니라 일을 할 때,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분명히 깨닫는다.


- 대학은 효과를 상실한 계급 상승 도구, 구직난에 허덕이는 대졸자는 힘없는 무기를 든 사람.

자신의 무기가 별 효력이 없음을 깨닫지 못하고 노력이 부족했다고 인식한다. 88만원 세대는 그렇게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환원해서 자기 탓만 한다.


3> 

준상의 글 중에서 인상깊은 부분.


삶에서 감정적인 일렁임이 사라졌다. 매사에 드는 의무감을 제외하고는 어떤 의미를 찾기가 힘들고 상상력, 창의력도 의욕도 바닥난 상태다. 그러다 보니 한 발 앞을 보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만 급습해오니 허둥지둥 할 뿐 이뤄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공정한 사회는 무엇인가? 노력한 만큼 잘 살고 계층이동이 유연하고 정당하게 돈을 버는 사회를 말하는 것인가... 공정한 사회의 조건은 정말로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가 가능한 사회여야 되지 않을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떠날 수 있는 사람만 떠나는 (것이 지금의) 사회다.


이 사회가 원하는 삶의 틀에 동질화 되려고 노력하고 맞추어 사는 것은 어쩌면 조금 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원하는 삶을 찾아 가는 것은 끊임없이 노력하고 성찰해야 하며 흔들려야 한다. 그 속엔 불편함 보다는 일종의 만족감과 틀에 벗어 났다는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나’라는 외로운 배가 보이지 않는 저 너머의 땅을 향해 돌진하기 보다는 우리라는 한 배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나누는 과정의 끝에 도착할 수 있는 그 땅이 존재 할 것이라 믿는다.


4>

관택이 형의 글 중에서 인상깊은 부분.


역시 머릿수가 중요하다.(서로 끈끈하게 대할 수 있는 공동 운명체 같은 이들이어야 그나마 숫자라도 중요해지지) 섬 같이 따로 떨어져서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그 혹독한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을 견딘다는 것은(262p)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은 한 치 앞의 '미래' 뿐이다. 아무리 달려 나가도 이 한치 앞의 미래는 항상 그 자리에 있으므로 우리 삶의 균형을 잡아주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에겐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시간이 그 날을 버티게 하는 실낱의 희망이며, 쥐꼬리만한 월급봉투는 한 달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오직 소비할 때만이 인간으로 취급받는(123p) 노동자들에게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단 한 순간은 '소비'의 순간 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인간으로서 온당하게 받아주는 사회의 온기를 느끼기 위해, 그 '소비'의 순간을 위해 현실을 통째로 저당 잡히는 것이 오늘의 삶이다.


세상 전체가 미래만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오히려, 비정규직이면서도 하루하루를 근근히 버티는 사람들은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는 말이 오히려 이들에겐 고통이 될 테니까 말이다.

Posted by Daes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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