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학교 5 찬란한 이슬람 문명



인류학에 ‘박해를 당할수록 정체성은 강해진다’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다문화 정책에서 소수민족이나 이주민을 차별하면 점점 그들의 정체성이 돌덩이처럼 굳어집니다. 반대로 열어 주면 흐물흐물해져서 주류 사회에 스며들어 녹아 버립니다. 만고불변의 법칙입니다. 

- 이슬람이 이룩한 문명


문제는 메카라는 곳 자체가 원래부터 콘텐츠가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슬람 문화는 기본적으로 텅 비어 있는 용광로 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문화적인 하부 구조를 빠른 시간 안에 만들려면 정복 전쟁을 하면서 정복한 지역의 문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태생적인 과제였습니다. 여기서 포용과 융합의 정신이 나옵니다. 이게 이슬람 문화의 특징입니다.


역설적이게도 문화는 잡탕일수록 우수합니다. 단일 문화는 오래 못 갑니다. 고이고 썩어서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페르시아에서는 주로 제국 운영을 위한 행정 체계와 제도를 도입했고요, 유럽 쪽에서는 지중해의 광범위한 철학과 사상이 유입됩니다. 이것이 이슬람의 두 버팀목입니다.

- 페르시아와 비잔틴을 단번에 포용한 이슬람


그리스 로마의 지중해 문화에, 메소포타미아에서 축적된 오리엔트 문화, 인도의 대수학과 수학적 지식에, 중국의 제지술과 비단 직조술, 화약과 나침반 그리고 형이상학적 지식까지를 직접 접촉해서 받아들이잖아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인류 문명 5천 년 역사에 이런 때가 없었습니다.

이 같은 배경을 바탕으로 10~13세기에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인류 최초의 르네상스가 일어납니다. 그때까지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인류 최고 수준의 르네상스였습니다. 유럽보다 정확하게 500년 전에 일어났습니다. 


서구에서는 잊혔던 그리스 학자들의 업적이 왜 이슬람에서 받아들여지고 녹아들었을까요? 당시 서구는 적어도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을 신의 오묘한 섭리에 도전하는 오만불손하고 위험한 요소로 봤습니다.

- 이슬람 문명의 지식 엔진 바이툴 히크마와 이슬람 르네상스


이미 천년 동안 축적된 문화적 자양분과 지식의 하부 구조가 이슬람 사회에 존재해 왔고, 그것이 톨레도라는 매개를 거쳐 유럽에 유입된 겁니다. 그래서 톨레도가 인류 지성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여러분 스페인에 가시면 톨레도에 일부러라도 가 보십시오. 마드리드에서 서남쪽으로 약 한 시간 거리밖에 안 됩니다.


티무르에서 일어난 르네상스가 원나라와 명나라를 거쳐 조선에 닿아 세종의 르네상스로 이어집니다.

- 바그다드발 르네상스가 유럽에 전파된 경로


어떤 정치 체제는 왕조(Dynasty)고, 어떤 정치 체제는 왕국(Kingdom)이고, 또 어떤 정치 체제는 제국(Empire)이라고 구분하는지 아시나요? 정복한 민족 수, 지배하고 있는 영토의 크기를 보고 분류하는 경우도 있지만, 더 정확하게는 문명을 받아들이는 크기에 따라 이 세 가지를 분류합니다.

- 왕조, 왕국, 제국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시 오리엔트 남쪽에 있는 철학의 도시 밀레투스로 유학을 갑니다. 축적된 오리엔트 철학을 배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오리엔트 철학을 바탕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아테네에 돌아가 독자적인 철학을 세웁니다.

- 아랍에서 꽃핀 학문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리스 문화는 다분히 사변적입니다. 과학도 그랬습니다. 이론에 치우친 그리스 과학에 비해 이슬람 과학은 훨씬 실용적이었습니다. 끊임없는 실험과 관찰을 통해 정교하게 다듬어 갔습니다.


페르시아와 그리스 로마, 인도, 중국 이야기가 다 들어와 있습니다. 조금 전에 배웠던 문화의 방정식이 그대로 문학적 용광로에 적용된 것이 《아라비안나이트》입니다. 이야기의 중심 배경은 바그다드입니다만, 이야기 소스는 그리스 페르시아 중국 인도에서 가져온 거죠. 감정 이입 기법과 형식적인 면에서는 그리스 고전문학의 전형을 받아들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복합 문학 장르입니다.

- 받아들이되 자기 것으로 만들다


아랍은 본래 밤 문화입니다. 하루의 시작이 일몰이고 하루의 끝이 일출입니다. 우리와는 우주관이 다릅니다. 낮에 태양은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뜨겁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낮에는 조용히 쉬면서 낮잠을 잡니다. 낮잠 자는 문화가 뭐죠? 시에스타(siesta)입니다. 이슬람이 스페인을 800년간, 남프랑스와 이탈리아 남부를 200년간 지배하는 동안 당시 우월한 문화였던 낮잠 문화를 유럽권이 받아들인 겁니다.


...문제는 영국이었습니다.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먼저 커피를 마신 나라이지만, 지금 영국은 커피보다는 차 문화가 발달해 있습니다. 물론 1662년 찰스 2세에게 시집 온 포르투갈의 캐서린 공주가 귀한 차를 가져오면서 궁정에서 차 문화가 발달한 탓도 있지만, 식민지 성격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영국이 식민 지배한 나라가 인도, 스리랑카, 말레이시아입니다. 비가 많은 지역이고 생태조건도 안 맞아서 아무리 해도 커피 플랜테이션이 잘 안 됩니다. 결국 실패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중국의 녹차를 가져다가 인도남부와 스리랑카에서 차 플랜테이션을 했습니다.

  그런데 커피에 중독된 사람들 입장에서는 중국식 녹차가 심심할 수밖에 없겠죠? 약간의 카페인이 있지만 전혀 취향에 안 맞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개발한 방법이 차를 진하게 우려내서 카페인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쓰니까 거기에 설탕과 우유를 많이 넣어서 밀크티를 만들어 먹게 된 거죠. 커피 플랜테이션에 실패한 처절한 슬픔을 밀크티로 달랬다고나 할까요.

  예멘의 모카 아라비카 원두를 가져다가 각 나라에 이식을 했는데, 그게 원래 맛이 날까요? 배추도 한 2년 심으면 맛이 바뀝니다. 제가 유학할 때 이스탄불에 한국 교민이 안 계셔서 종묘상에서 배추 씨앗을 사서 보내 달라고 집에다 부탁한 적이 있었습니다. 첫해, 두 번째 해는 그걸로 잘 먹었습니다. 그런데 3년째가 되니까 키가 엄청나게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속도 단단해져서 도저히 씹을 수가 없습니다. 3년쯤 되니까 현지 토양과 환경에 맞게 종이 바뀌는 거죠. 커피도 마찬가지였겠죠? 끊임없이 품종 개량을 해도 원래 아라비카 원두 맛이 안 나니까 로스팅 기술 쪽으로 방향을 선회합니다. 이름도 우아하게 붙이잖아요. 화이트 킬리만자로, 다크 나이트, 메디터레이니안 블루, 사프란볼루 튀르크 카웨등등.

- 이슬람과 커피 문화


이런 지적 바탕 위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라고 하는 탁월한 신학자가 등장합니다. 그는 스승인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나 아베로스의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을 완전히 섭렵했습니다. 이때 쌓은 지식으로 기독교의 우월성을 증명하고 이슬람의 모순과 열등성을 강조하는 데 자기 인생을 바쳤던 사람입니다. 이후 유럽 신학은 토마스 아퀴나스를 태두로 해서 형성되었고, 이때부터 이슬람에 대해 가장 적대적인 관점이 유럽 신학의 정통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천명한 가장 대표적인 명제가 ‘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이었죠? 아퀴나스는 이슬람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본래 아는 사람이 하면 더 무섭잖아요. 당시 최고의 이슬람 전문가였습니다. 그는 이슬람의 네 가지 해악을 주창했습니다. 첫째는 진리를 왜곡했고, 둘째는 폭력과 전쟁의 종교이며, 셋째는 무분별한 성적 접촉을 허용했고, 넷째는 무함마드는 거짓 예언자라는 것입니다.

  지금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이슬람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과 정확하게 일치하지요? 지성사를 공부하다 보니까 토마스 아퀴나스에서 딱 걸리더라고요. 이슬람에 대한 그의 견해는 이후 유럽 지성 사회에 그대로 전달되어서 서구 사회가 이슬람을 오해하고 적대감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모든 신학은 선악 구도입니다. 내 쪽으로 들어와서 녹든지 아니면 사라져야 한다는 게 신학의 기본적인 입장입니다. 물론 해방 신학이나 다종교 신학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서는 소수잖아요. 하물며 중세 시대에는 어떻겠습니까? 천 년간 이슬람에게 눌려 왔다는 인식이 깔려 있을 때 새로운 신학으로 자신감을 얻고 자기 신앙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방법의 하나로 이슬람의 모순을 끄집어낸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시대적 상황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일종의 선명성 경쟁이 필요했던 때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는 기독교가 약자였습니다. 약자는 상대방에게 관용을 베풀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 이슬람이 포용과 융합과 똘레랑스를 실천할 수 있었을까요? 힘의 우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약자가 강자를 어떻게 포용할 수 있겠습니까? 프랑스가 한때 똘레랑스로 소수 민족을 품었습니다만, 그들의 숫자가 10%를 넘어서니 가장 먼저 똘레랑스의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무색하게 토마스 아퀴나스 이후 이슬람에 또 한 번 철퇴를 가한 사람이 바로 단테입니다. 단테의 ‘신곡’을 보시면 <천국>과 <지옥> 편에서 무함마드와 무슬림을 악마의 레벨로 다룹니다. 유럽에서 ‘신곡’을 읽지 않고 교양인이라 할 수 있나요? 교양 필수 중에 필수잖아요. 여기서 이슬람에 대한 인식의 철퇴를 가합니다. 그 이후에는 헤겔이 또 이슬람에 철퇴를 가합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오는 겁니다.

- 유럽의 이슬람 연구










Posted by Daes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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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학교 3 이슬람은 무엇을 믿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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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꾸란이 말하는 알라와 예수

이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으면 죽인다는데, 어떻게 살아남았지?” 무려 2000년 동안 살아남았잖아요. 이슬람에서는 자기 신앙을 완벽하게 보호해 줍니다. 법으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자기 신앙을 강제로 다른 사람에게 퍼트리는 행위, 즉 선교 행위는 실정법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ㅁ기독교의 예수와 이슬람의 예수

오늘날 기독교가 존재하는 것은 세 가지 개념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대신 사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를 보내 십자가 처형을 받게 합니다. 대속의 개념입니다.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기독교는 비로소 존재하게 됩니다.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원죄와 대속과 부활이라는 이 세 가지 개념에서 단 하나라도 부정되면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예수님은 신성화되었고, 아버지 하나님과 다르면서도 같은 존재가 됐습니다.

...신성은 인정하지 않고 인성만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그냥 평범한 인간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인성을 받아들이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상의 위치에 놓고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인간 세상에 충실히 전파하고 오류를 범하지 않은 최상의 인격체로 믿습니다. 완벽한 인간으로 받아들이고, 존경하는 것이죠. 이것이 기독교와 이슬람의 근본적인 차이입니다. 그래서 이슬람에서는 예수를 예언자와 선지자로 봅니다.

...유대교에서는 예수를 예언자가 아닌 혹세무민하는 위선자로 봤고, 기독교에서는 신과 동일시하면서 예수 자체가 신앙의 대상이 됩니다. 이슬람에서는 신의 위대한 예언자 중 한 명으로 봤습니다. 따라서 무함마드도 한 줌의 신성도 가지지 않은 최상의 인격체에 불과합니다. 예수와 무함마드의 차이는 시대적인 차이입니다. 무함마드는 예수 이후에 신이 보낸 마지막 예언자라고 말합니다.

...구약의 기본에 신약에서 예수의 인성 부분이 상당히 들어가 있고, 또 610년부터 22년간 무함마드가 직접 계시를 받은 내용이 합쳐진 것이 꾸란이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ㅁ꾸란에 등장한 예수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 처형을 받았다는 것은 모든 책에 나오거든요. 성경 이외에 구전이나 유대 전승에서도 십자가 이야기는 많이 나와요. 역사적으로 십자가 처형이 있었다는 것은 모든 학자들이 인정합니다. 이슬람도 역사적으로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만, 그 십자가에 매달렸던 사람은 예수가 아니라 비슷한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ㅁ이슬람과 기독교의 구원관

성직자 계급이 있고 출석을 매기면 그들에게라도 잘 보이기 위한 활동들이 있을 텐데, 내가 예배 보고 안 보고, 좋은 일 하고 안 하고는 하나님이 다 아시고 최후의 심판에서 판단하신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때문에 여기에서 극도의 자율성이 나옵니다. 성직자도 없고 교황청도 없잖아요. 오로지 신과 자기 둘의 계약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슬람은 철저하게 예방 성격의 종교입니다. 다른 서구 사회에 비해 이슬람 사회에서 범죄가 현저히 낮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ㅁ메카 계시와 메디나 계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신뢰의 크기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무함마드가 큽니다. 그러나 예수에 대해서도 상당히 높은 자리에 두고 있다는 걸 알고 계셔야 합니다. 이 점이 기독교에서 이슬람을 바라보는 관점과 이슬람에서 기독교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핵심 요소입니다.

ㅁ순니와 시아

그때 알리를 추종했던 사람들이 지금의 바그다드로 이주해 갑니다. 이게 시아파가 됩니다. 시아파를 직역하면 ‘떨어져 나간 무리’라는 뜻입니다. 메카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우리는 잔존파다, 우리가 주류다, 정통이다 이렇게 말하죠. 이들이 수니파가 됩니다. 따라서 수니와 시아는 교리 논쟁에 따라 나뉜 종파라기보다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정파에 가깝습니다. 지금은 종교적으로도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현재는 종파라 해도 무난하지만, 배경은 정파였습니다.

...미국식 민주주의는 51%가 49%를 무시해도 크게 문제되지 않잖아요. 사담 후세인의 수니파를 완전히 박살 내 제로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60%가 100을 다 차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가 오늘날 IS로 나타난 겁니다. 쫓겨났던 사담 후세인의 군경 세력들이 모두 IS에 붙었습니다. 나머지 시아파 이라크는 기존 군경 하나 없이 모두 새롭게 모았기 때문에 민병대 수준입니다. 여전히 오합지졸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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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학교 2 선지자 무함마드 이야기




ㅁ몇가지 질문들

이슬람이 원래는 안 그랬는데 서구가 호전적인 모습으로 왜곡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한 것 같습니다. 실제로 폐쇄적이고 호전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슬람이 원래 그런 종교가 아니라고 강변해도 설득력이 약합니다. 그보다는 원래 포용과 융합의 종교이던 이슬람이 왜 폐쇄적이고 호전적으로 바뀌었고, 그 내용은 무엇이고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그렇게 됐을까를 설명하는 것이 좀 더 합리적이라고 하겠습니다.

ㅁ탈라스 전투와 중국 문명과의 만남

중국의 종이가 보편화되고 여기에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접목시켜서 성경을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자 신앙혁명이 일어나잖아요. 이를 기반으로 종교개혁이 일어납니다. 신앙, 종교, 독점적 종교 권력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거대한 혁명이 결국 유럽 사회를 뒤집어엎는 계기가 됩니다. 이게 다 종이가 전해지면서 일어난 일들입니다.

ㅁ동서남북으로 뻗어나간 이슬람 제국

탈라스 전쟁은 두 세력, 이슬람과 당나라가 파미르 고원을 조직적으로, 대규모로 넘는 계기가 됩니다. 고선지 장군이 파미르를 넘어서 지금의 파키스탄의 길기트와 펀자브를 공격하죠. 길기트가 파미르 고원 서쪽에 있습니다. 지금 파키스탄의 북쪽이죠.그래서 고선지를 나폴레옹보다 위대하다고 하잖아요. 나폴레옹이 알프스 산맥 넘었다고 대단하다 그러지만 나폴레옹은 18세기 사람이고 알프스는 3,000m밖에 되지 않습니다. 파미르 고원은 7,000m에다가 그보다 천 년 전에 넘었으니까 누가 더 위대한가요?

ㅁ이슬람의 성공 비결은 조세 혁명

이슬람은 예전에 가렴주구하던 세금 정책을 제대로 뜯어 고치고, 조세 시스템을 법제화 시켜 주고, 훨씬 가벼운 세금을 내게 했습니다. 그 세금을 거둬 일정 부분 중앙 정부에 내고, 나머지를 가질 수 있는 제도를 시행한 거죠.

ㅁ화합과 평등을 내세운 내치 시스템

어떤 부족이 우월하고 다른 부족이 열등하다? 못 받아들입니다. 다 자기가 최고입니다. 이런 성향들을 잘 이해해서 처음부터 성직자 제도를 따로 두지 않았습니다. 성직자도 일종의 카스트잖아요. 교회에서 보면 얼마나 철저합니까? 교황과 대주교와 주교와 신부, 수녀, 평신도로 이어지는 수직적인 구조가 있잖아요. 그런데 이슬람은 성직자 제도를 없애 버렸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ㅁ이슬람의 소수민족 포용 정책

라마단 아시죠? 무슬림들이 한 달 동안 단식하는 기간입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갈라타 타워의 유대인들도 다 같이 단식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왜 유대인이 라마단을 하냐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내 질문이 이상하다고 반응했습니다. 그 사람들 말이 “내 고객의 99%가 무슬림들인데, 내 고객이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고, 가진 자나 갖지 못한 자가 고통을 공유하기 위해서 저렇게 절절하게 단식하고 있는데 내가 종교와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 기간 동안에 배불리 먹고 내 고객을 대한다는 것은 장사의 기본 원칙에도 안 맞다.”라는 겁니다. 장사하는 사람이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거였습니다. 그 고객들 때문에 자기가 먹고 살고 존재 가치가 있는데 고객의 고통과 정신에 동참하고 존중하는 것이 장사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덕목이라고 말합니다. 왜 단식 하냐고 물어보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는 겁니다.

ㅁ무함마드의 등장

무함마드가 가진 여러 가지 덕목 중에 아랍 사회에서 가장 칭송 받았던 것이 바로 ‘분쟁 조정자’ 역할이었습니다. 철저한 균형 감각과 객관성을 가지고 정말 예리하고 정확하게 분쟁을 해결했습니다.메디나의 두 부족이 싸우다가 도저히 안 되니까 메카에서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는 무함마드를 초청합니다. 우리끼리 해결이 안 되니 분쟁을 조정해 달라고 부탁하는 거지요. 이런 조건들이 맞아 떨어져서 메카에서 메디나로 옮기게 됩니다.

ㅁ무함마드의 부인들

고별 순례를 마치고 몸이 급속하게 쇠잔해집니다. 그러나 무함마드는 연명을 위한 치료와 투약을 거부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슬람교도들은 산소 호흡기 안 꼽습니다. 예언자의 전통을 따르는 거죠. 죽음이란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인데,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굳이 구차하게 살겠다고 하는 것은 예언자가 따랐던 방식이 아니라는 겁니다. 요즘에 우리 논의하고 좀 닮아 있죠?

...무함마드를 신격화하려는 움직임이 여기서 꺾입니다. 아주 평범한 인간으로 나서 평범한 인간으로 죽고 죽어서 흙이 되어 사라진다고 합니다. 이것이 이슬람 성공의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평범의 리더십입니다.아무런 기적도 행하지 않았고, 출생의 신비도 없었고, 살아가면서 기적 같은 초월적인 역할도 하지 못했고, 죽을 때도 보통사람처럼 절절이 앓다가 죽었고, 가난한 채로 재산을 비웠고 죽고 나서도 보통 사람처럼 흙으로 썩어 없어졌습니다. 재림하지도 않고, 앞으로 나타나지도 않고 그냥 사라져 버립니다. 그 덕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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