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5.04.01 영화 "메이즈 러너" 감상문 (1)
  2. 2014.10.06 2014.10월 6일(월) - 명언 모음
  3. 2014.05.30 책 "철학자와 하녀" 메모

작성 : 2015.3/31 오전 1:50

수정 : 4/1 오후 6시




메이즈 러너 (2014)

The Maze Runner 
7.2
감독
웨스 볼
출연
딜런 오브라이언, 카야 스코델라리오, 윌 폴터, 토마스 브로디-생스터, 이기홍
정보
미스터리, 액션, 스릴러, SF | 미국 | 113 분 | 2014-09-18



내 인생이 망했구나 느끼는 거랑 세상이 망했다고 느끼는 게 다른 걸까? 뭐가 됐든 둘 중에 하나는 확실히 망했다. 둘 다 망한 걸수도 있고. 


갑갑한 기분 좀 떨치고 싶어서 테이큰 3를 보려다가 메이즈 러너를 택했다. 순전히 여자친구의 추천 때문이었다. 짱짱맨 리암 니슨한테 감정 이입해서 현실의 열패감을 잊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자친구는 메이즈 러너를 보라고 했다.


메이즈 러너가 참신한 영화는 아니다. 모든 게 거짓된 '아일랜드' 같은 감옥에서 '매트릭스' 같은 자각으로 '레지던트 이블' 처럼 적의 무리를 헤쳐나간다. '스타크래프트' 드라군에 '에일리언' 머리를 한 괴물은 낯익을 정도였다. 하지만 얽힌 마음 풀어낼 실마리는 찾은 것 같다. 


나는 세상을 나름대로 이해했지만 결코 세상으로부터 이해받을 수는 없다. 끝없는 오디션에서 줄곧 나를 납득시켜야만 한다. 그래서 이 세계를 꿰뚫는 단 하나의 열쇠를 갖고 싶다. 어떤 위기도 헤쳐나갈 수 있는 진리를 쥐고 싶다. 하지만 그런 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망했다는 거다. 


진리 따위는 없다고 깨달았을 때, 상상으로 만드는 가상의 열쇠가 예술 아닐까. 엉킨 실타래를 풀 수 없겠구나 절망하며 잠들지만, 꿈 속에서 실마리를 찾는 것. 그렇고 그런 나날들에서 드라마틱한 전개를 건져올리는 것. 하지만 손맛만 보다가 놓치는 것. 그러나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 


리얼리스트가 되라는 건 나도 세상도 망해버렸다는 현실을 인식하란 얘기일 테고, 불가능한 꿈을 꾸라는 건 개똥밭에 구를지언정 이리저리 부대껴보자는 선언이겠지.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란 그람시의 말이나, 칸트의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이 아마 이런 얘기겠거니 생각한다.


닳고 닳은 얘기지만, 구원은 밖이 아니라 안에서 온다. 메이즈 러너의 주인공 토마스는 기억을 되살려 사람들과 함께 감옥에서 탈출한다. 도망쳐 나와서 또 새로운 시험을 맞닥뜨린다는 게 퍽 숨 막히는 일이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그게 시작이다. 거대한 실패 속에서 한움큼의 성공을 쥐는 것.


망한 건 망한 거다. 그래도 과히 슬퍼하지는 말자. 현실 인식의 비참함을 끝내 떨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가는 거다. '못 먹어도 고'란 말도 있잖나. 메이즈 러너(Maze Runner), 미궁 속을 달리니까 불안감은 숙명이지만 그래도 좌절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진리라면 진리겠지. 


얼마전 어느 트위터에서 본 문구가 생각난다. '인생은 클리셰, 사랑은 미장센. 지성은 태도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인간에 대한 애정을 견지하도록 노력해 봄' (출처 : 트위터 프로필 https://twitter.com/field_dog )


미궁 같은 세상을 풀어낼 열쇠는 물질도 아니고 관념도 아닌 ‘태도’일 거라고 생각한다. 끝내 실패할지언정 마음 한구석은 포기하지 않는 것. 자꾸만 고꾸라져도 날아오르는 것. 옛날 책에서 본 라이트형제는 미소를 띄고 있었던 것 같다. 내게 주어진 생애가 퍽 시지프스같지만 그래도 한줌 웃음만은 잃지 말아야지. 

Posted by Daesung Jung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Daesung Jung 2015.04.05 16:0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폐허 이후 - 도종환

    사막에서도 저를 버리지 않는 풀들이 있고
    모든 것이 불타버린 숲에서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 나무가 있다
    화산재에 덮이고 용암에 녹은 산기슭에도
    살아도 재를 털며 돌아오는 벌레와 짐승이 있다
    내가 나를 버리면 거기 아무도 없지만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
    어느 곳에서나 함께 있는 것들이 있다
    돌무더기에 덮여 메말라버린 골짜기에
    다시 물이 고이고 물줄기를 만들어 흘러간다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는다면

​​명언을 곧잘 모아두는데, 오늘은 모아놓은 걸 죽 훑어봤다. 지금 시점에 맘에 드는 걸 추려봤다.


1>
보르헤스가 만년의 인터뷰를 하면서
젊은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뭐냐고 물었을 때,

백발에 주름진 얼굴로
"나는 일생을 표류하면서 살았고,
조언할 말은 한마디도 없다."

이렇게 말했던 것이 저는 참 좋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바라는 것은 일생을 화해하지 않고
누구에게 어떤 조언도 하지 않고 잘 표류하면서
글을 쓰며 살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늘 해요.

출처 :
http://arayasoren.egloos.com/9195744

2>
<리영희 교수님 말씀 - 2010년 10월 23일, 녹색병원>

"노자가 말하듯 무에서 무로 돌아가는 것이기에 육신에 집착하지 않는다."

"팔십 평생이 나에게는 짧지 않았다. 보람된 삶을 살았다."

"(제자들의 방문이) 너무나도 감격스럽다. 참 고마운 일이다."

"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깨우치고 진실을 알게 된 것은 사실이다."

"김삼웅이 쓴 리영희 평전이 연말에 나올 것이다.
김삼웅이 평전을 쓴 인물로는 죽은 사람 중에 안중근, 장준하, 김대중이 있고
산 사람으로는 내가 처음인데 내가 그만한 위치에 걸맞는지 모르겠다."

3>
엄밀한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칸트

Posted by Daesung Jung

댓글을 달아 주세요



철학자와 하녀

저자
고병권 지음
출판사
메디치미디어 | 2014-05-2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철학은 지옥에서 가능성을 찾는 일이다 위로와 도피의 인문학은 침...
가격비교




누구보다 초조함에 시달렸고 그것의 문제를 잘 알았던 작가 카프카. 그는 초조함이야말로 인간의 죄악이라고 했다. 그는 <죄, 고통, 희망 그리고 진실한 길에 관한 성찰>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른 모든 죄를 낳는 인간의 주된 두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초조함과 무관심이다. 인간은 초조함 때문에 천국에서 쫓겨났고 무관심 때문에 거기로 돌아가지 못했따. 그러나 주된 죄가 단 한 가지라고 한다면 그것은 초조함일 것이다. 인간은 초조함 때문에 추방되었고 초조함 때문에 돌아가지 못한다." 아마도 그의 문학은 이 초조함을 몰아내려는 치열한 탐구의 결과물이었을 것이다. 

   - 29쪽 '초조함은 죄다'



정말 중요한 사건, 우리에게 인류의 개선과 미래의 역사에 대해 말해주는 사건은 어찌 보면 너무 조용하게 일어난다. 그것은 사건의 당사자들에게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칸트는 구경꾼들,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동안 그것을 지켜본 사람들의 맘속에서 일어난 일에 주목한다. "거대한 정치적 변동의 드라마가 일어나는 동안에 그것을 지켜본 사람들의 태도", 진짜 혁명은 거기서 일어난다. 

  이해당사자도 아닌 사람들이 어떤 불이익조차 감수하고 나서게 되는 순간이 있다. 아니 행동에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맘속에서 어떤 변화를 겪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내 일이 아니지만 그것을 지켜보며 맘속에 공감이 일어날  때, 우리는 '개인'이 아니라 '인류'를 느끼는 것이다. 그때만이 우리는 '개인'이 아니라 '인류'가 '나아지고 있는지'에 대해 뭔가를 말할 수 있다. 칸트는 프랑스 혁명이 바로 그런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그 혁명이 인류의 진보를 말해줄 수 있다면 그것은 그 혁명을 주도한 프랑스인들 때문이 아니라 그 혁명을 지켜보며 가슴 속에서 동참의 욕구를 느낀 사람들, 이를테면 프랑스에서 백 마일도 더 떨어진 독일인들의 맘속에 일어난 변화 때문일 것이다. 

    - 75쪽 '구경꾼 맘속에서 일어난 혁명'



  ...이처럼 사회적 약자들은 어떤 상황을 자기 식으로 해석하기보다 권력을 가진 자의 눈으로 보려고 한다. 어차피 상황은 권력자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렸기 때문이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ber)는 이를 '해석 노동'(interpretive labor)이라고 불렀다.

    - 161쪽 '해석노동과 공감의 능력'



하이데거는 말했다. "원자력이 평화적으로 사용되느냐, 전쟁을 위해 동원되느냐 등의 물음은 이차적인 겁니다. 우리는 그보다 먼저, 그 모든 것을 넘어 소급해서 물음을 던져야 합니다." 그는 원자력의 개발 때문에 드러나고 있는 것('탈은폐되고 있는 것'), 원자력 기술에 의해 각인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물었따. 그의 용어로 말하자면, 그것은 우리 '인간의 현 존재'이며, 오늘날 우리 삶이 처해 있는 어떤 '운명'이다. 항상 이런저런 요구에 쫓기고 '닦달당하면서', 전체 시스템의 한 부품으로 전락해 마침내는 "낭떠러지의 마지막 끝"에 서게 되는, 그런데도 정작 그 '위험'을 모르는 우리의 운명이 거기에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 167쪽 '원자력으로부터의 잔향'



...다만, 나는 누군가 이 사회에서 소위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으 ㄹ때, 그의 신체든 정신이든 이 체제의 질서나 규칙들을 준수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 그것을 곧바로 '죽음에 이르는 병약함'으로 몰고 가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니체가 <즐거운 지식>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상식과 통념이 건강의 지표가 될 수 없듯이 광기도 그 자체로 질병이나 죽음과 동일시될 수는 없다. 니체는 미친 것과 아픈 것은 다르며, '광기'의 반대말은 '건강'이 아니라 '길들여진 두뇌'라고 했다. 고통을 느낀다고 해서 곧바로 '병약함'이 초래한 결과라고 말할 수도 없다. 역시 니체 식으로 말하자면, '병'은 종종 지나친 섬세함, 때로는 한계를 넘어서려는 과도한 건강 때문일 수도 있다. 

    - 174쪽 '고흐의 발작과 죽음 사이에서'



  아무리 대단한 권위를 가진 사람의 말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그 말이 아무리 올바른 것일지라도 환자가 체험하지 못하는 것은 아무런 효과도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치료의 관건은 환자가 현재의 증상을 유발한 과거의 사거능로 돌아가는 것에 있으며, 거기서 그 사건을 과거와는 다르게 체험해야 한다. 즉 과거를 반복하지만 다르게 반복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치료만이 아니라 '깨우침' 일반이 그렇다. 과거에 내가 저지른 일을 그대로 떠올리지만, 그것을 달리 느끼고 달리 대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뭔가를 깨우친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옳은 말은 그저 옳은 말일 뿐이다. 그것이 내 것이 되려면 내 안에서 다시 체험되어야 한다. 내가 내 식으로 체험하지 않는 말이란 한낱 떠다니는 정보에 불과하다. 세상에는 여전히 옳은 말들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세상에 옳은 말들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들이 정처 없이 여기저기 흘러다니고 있을 뿐이다. 

    - 251쪽, 에필로그 '옳은 말은 옳은 말일 뿐이다' 


Posted by Daesung Jung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