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4.06.02 마이너스의 삶
  2. 2013.10.31 활동보조인의 변명 (1)
  3. 2012.04.30 "사랑이 뜸들이고 나면" (1)
  4. 2012.04.02 '네모난 못' 중에서 메모
나는 소중합니다...
2014.3.12(수)
14일 오후 수정
5/29 오후 수정
5/30 오후 수정

굳이 답을 구하지 않는 질문을 던져 본다. 존엄한 삶이란 무엇인가, 모든 생명은 소중한가.

장애인 활동보조인으로 일하며 불현듯 이런 질문이 붉어질 때가 있다. 찌릉내 나는 고추를 닦으며, 나이 지긋한 지적장애인의 멍청한 모습을 지켜보다 문득 의문이 드는 것이다. 나는 쉬 마릴 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노상방뇨를 할 수 있다. 어디서 주워들은 말로 무식을 포장할 수도 있다. 그런데 쓸모 없고 귀찮은 장애인은 소중한 존재인가? 저렇게 사는 건 존엄한 삶인가?

예전에 글쓰기 수업을 들을 때 일이다. 아이 키우는 엄마의 글이 놀라웠다. 아이 돌볼 때면 아이를 창밖으로 던져 버리고 싶어져서 창문을 꼭 잠근다고 했다. 애 키워본 엄마들은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아이 키우는 게 징글맞다고들 했다.

최근에 전해들은, 자폐아 동생을 가진 이의 얘기는 더 놀라웠다. "그 친구는 어렸을때 그런 생각을 했대요, 이 동생은 과연 동물인가 인간인가. 인간이라면 인간은 다 소중하고 존엄한가. 그냥 껴안고 투신하고 싶다고."

티브이에서 장애인 이야기가 나오면 어머니는 몸 건강한 걸 감사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그건 해선 안될 말이라 생각했다. 살아 있다는 것에만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살아 있다는 건 모든 생명이 공유하는 동등한 가치니까. 하지만 장애인을 줄곧 곁에서 지켜봐온 나는 내가 장애인이 아닌 걸 정말로 감사히 여긴다.

장애인을 불쌍히 여기는 건 순진한 마음이지만, 과히 그릇된 마음만은 아니다. 장애인에게 내가 모르는 나름의 삶이 있음을 인식하고 동정을 거두는 게 성숙한 자세로 여겨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차이가 지워지진 않는다. 부정할 수 없는 건, 장애인 안된 건 다행한 삶이라는 거다.

출생부터 죽음까지 기나긴 포물선을 되짚어보면 우리는 아이-장애인으로 태어나 비장애인 시기를 거쳐 노인-장애인으로 돌아간다. 쓸모 없음에서 하나의 쓸모, '정상인'으로 성장했다가 쓸모 없음으로 회귀한다. 그러나 쓸모를 개발할 수 없는 장애인, 그리고 젊음을 돌이킬 수 없는 노인, 즉 '절대적 쓸모 없음'을 우리는 진정 존엄하게 여길 수 있을까?

'정상인'의 노동으로 '비정상인'의 생애를 뒷바라지해야 한다. (제대로 돌아오는지는 모르겠으나) 비장애인의 세금은 장애인에게 복지로 돌아온다. 그런데 가뜩이나 각박해진 쓸모의 세계에서 절대적 쓸모 없음을 부양한다는 건 얼마나 설득력을 지니는 일일까.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구구단을 외우고, 스스로 밥도 못먹어서 침 질질 흘려가며 한숟가락씩 얻어먹어도 소중하시겠다. 급해 죽겠는데 활동보조인 없어서 팬티에 오줌 지리고 똥 싸재껴도 존엄한 사람이실 테고.

소위 올바른 얘기는 대체로 하나마나하다. "모든 인간은 소중하고 존엄한 존재다" 도대체 어쩌라는 건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라고들 손쉽게 노래한다. 팔 다리 멀쩡하지 못해 평생을 남에게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 이들에게 존엄과 사랑이 무슨 소용인가. 사랑의 결과가 이건가?

쓸모 있는 사람만이 존엄하고 소중하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쓸모 없는 사람들은 도무지 어디가 존엄하고 소중한가. 그이들이 소중한 건 나의 과거이자 미래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한 순간의 사고로 나 또한 쓸모가 없어질 수 있기 때문일까.

물론 함께한다는 건, 살아있다는 건 변함없이 소중한 가치이다. 하지만 존재만으로 가족과 사회에 짐스러운 이들을 대체 무엇 때문에 소중하다 할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이들이 지금 모습 그 자체로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말, 누구나 보편적인 권리를 누린다는 말은 철 지난 새마을 깃발처럼 위태롭기 그지없다.

교과서적인 당위의 말들은 허약한 신념에 불과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희생만이 주어진 장애인 가족에게 존엄이란 건 손에 쥘 수 없는 바람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기어이 추구해야 하는 것, 끝없이 달아나는 바람을 향해 한걸음씩 내딛는 것이 애처로운 숙명이다.

모든 생명은 존엄하고 소중한가. 이 질문엔 누구나 아주 쉽게 답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답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존엄하고 소중한 것에도 빈부차가 있다. 타고난 건강과 재산으로 존엄성을 만끽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애시당초 마이너스의 삶으로 태어나 다른 이들에겐 기본적일 뿐인 '제로'에 이르는 것조차 온 생애의 숙명인 이들도 있다. "모든 생명은 존엄하고 소중하다." 이 쓸모없는 말을 평생에 걸쳐 증명해내는 게 누군가의 숙제일 것이다.

어쩌면 사회의 가치라고 하는 것은 결국 '영'으로 수렴하고 마는 건지도 모른다. 가치를 창출하고 사회를 진보시킨다는 이상이 마이너스를 배제하고 끌어모은 플러스를 이야기하는 건지도 모른다. 어느날, 복작이는 지하철에서 빈 자리를 향해 밀치고 지나가는 아줌마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저 상스러움이 나의 몫은 아니었을까. 교양과 품위를 누리는 내가 상스러움은 아웃소싱하고 있는 건 아닐까.

제로섬이 숙명이라면, 온 생애에 들러붙은 쓸모없음이라는 멍에를 이고 가는 이들 옆에서 내 나름의 쓸모로 힘 보태 주는 게 나에게 주어진 몫이겠다. 존엄이라는 수학에서 언제나 마이너스로 치닫는 이들에게 얼마간의 플러스를 보태 주는 것, 이것은 아마도 사회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Posted by Daes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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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월 12일(토요일)


요새는 장애인 활동보조인으로 일하고 있다. 뭐하고 사냐고 묻는 이들 대부분이 활동보조인이 뭔지 잘 모르니까 나는 노골적으로 답해 버린다. 장애인 똥꼬 닦는 일 해요, 이렇게 답하면 좋은 일 하는구나 따위 얘기는 듣지 않아도 된다. 좋긴 개뿔, 그냥 돈 벌려고 하는 거다. 


구태여 부연 설명을 하자면, 그 전에 하던 주차장 알바를 계속 하는 게 너무 싫었기 때문에 활동보조인 일을 시작했다. 혼자 멀뚱히 서서 무작위로 오는 진상 손님 대하며 스트레스 받고 성격 버리느니 활동보조인이 나아 보였다. 한달 내내 일해도 월 이백 겨우 버는 건 몸 쓰는 직장의 보편적 진리인 듯한데, 어차피 버는 돈 비슷하면 이 일이 낫겠다 싶더라.


활동보조인 일은 아기 보는 거랑 비슷하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은 무엇이든 비슷할 것 같다. 말 못하고 우는 아기한테도 나름의 감정이 있고 의사 표현이 있다. 알아 듣기 힘들고 귀찮지만 그 아기를, 장애인을, 할머니 할아버지를 존중해야만 한다. 도무지 속내를 알 수 없는 그 사람의 선택보다 나은 답을 알고 있더라도 기다려야 한다. 꾹 참고 기다리면 잘 해낸 거다. 


몸이 멀쩡한 당신이 용변 처리를 남한테 맡긴다고 상상해 보시길. 꽤나 수치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렇게 매우 사적인 일을 돕다 보면 인간의 존엄성이란 게, 살아있다는 게 무언가 싶다. 아름다움과 추함의 보편적 잣대로 보면 장애인은 추한 쪽이겠지만 전동 휠체어 패거리 속에 어울리다 보면 불현듯 스쳐가는 아름다움이 있다. 한국 장애인 중에 절반은 초등학교 졸업 이하 학력이라던데, 쓸모 없음의 쓸모는 문학 뿐만 아니라 장애인한테도 들어맞는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매우 사적인 '활동'을 '보조'하며 아름다움과 쓸모의 위태로운 포장지에 손이 닿는다.


나는 걷는 걸 좋아하기에 가파르고 긴 계단도 걸어다니곤 하는데 활동보조인 일을 시작한 뒤로 엘리베이터를 자주 탄다. 눈에 잘 띄지도 않아 찾기도 어려운 엘리베이터는 너무나 좁다. 전동휠체어 탄 장애인이 들어갔다 나올 때 쿵쿵 부딪히는 건 예삿 일이다. "휠체어 먼저 들어갈게요" 외치면 지팡이 짚은 할머니는 물러서고 아기 안은 부부는 계단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장애인이 아니라 휠체어가 들어간다고 말하는 게 조금 이상한 순간이다. 조그만 공간에 휠체어와 내가 먼저 타면 지팡이와 중풍 맞은 몸과 손수레가 따라 들어온다.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닫힘 버튼을 눌러도 반응이 없다. 무조건 정해진 시간을 기다려야 문이 닫힌다. 그 정적의 순간에 남의 사정이 궁금한 할머니들은 전동 휠체어에 오른 장애인을 빤히 쳐다본다. 위아래로 훑어보고 전동 휠체어도 살펴본 다음 뒤에 서 있는 나와 눈이 마주친다. 간혹 혀를 차는 멍청한 인간들이 있으면 나는 그러면 안되는데도 노려보고는 한다. 팔이 이상하게 꺾이고 말도 알아들을 수 없는 사람이 조이스틱 달린 전동휠체어 탄 모습이 신기하기는 하겠지. 


문이 닫히고 나면 '이 엘리베이터는 장애인 또는 노약자, 임산부가 이용하는 시설이므로 일반인은 계단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문인지 지시문인지 헷갈리는 문장이 보인다. 다리 멀쩡하면 계단 이용하라는 저 안내문은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얼마나 떳떳하게 탈 수 있는지 계급을 가른다. 누가 봐도 장애인임이 명백한 휠체어, 그리고 장애인의 보호자 또는 활동보조인은 최상위 브라만이다. 누가 봐도 노약자임이 분명한 지팡이와 풍 맞은 몸은 브라만 바로 밑이다. 누가 봐도 임산부임이 분명한 만삭의 배, 그리고 그녀의 부모나 남편 또는 아이는 그 다음이다. 손수레를 끄는 중년의 여인과 작업용 공구를 옮기는 인부는 마지막 계급이 될 거고, 장애 유형상 겉으로 티나지 않는 장애인과 배가 덜 나온 임산부와 다리 다친 청소년은 불가촉 천민이다. 천민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엄청난 눈치와 때로는 욕지거리를 각오해야만 한다. 


어쩌면 마법에 걸렸을지도 모를 여대생이 토익 책을 들고 지하철 엘리베이터에 타는 걸 본 적이 있다. 천민에도 속하지 못할 불필요한 각주처럼 덧붙여진 여대생이 여러 계급 속에 뒤섞인 모습을 바라보며 여기가 선별적 복지라는 게토로구나 느끼고 말았다. 죄책감과 당당함이 뒤섞인 공간에는 일말의 아름다움도 없었다. 


심봉사, 노틀담의 곱추, 포레스트 검프, 벙어리 삼룡이는 소중한 존재인가. 돈 한푼 못벌고 한 평생 민폐만 끼치는 이들이 아름다운가. 좋은 일 하시네요 답하는 그 마음은 좋은 일을 외주로 돌리는 것만 같다. 좋은 일 같으면 너도 해라. 장애인 활동보조인 이거 별일 아니다. 똥꼬 닦아주고 밥 먹여주고 옷 입히고 돈 받는 거다. 


며칠 전, 소위 '몸짓패'의 공연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80년대에나 박수 받았을 촌스러운 율동을 하는 저 사람들은 공연비로 몇푼의 돈을 벌겠구나, 돈이나 벌어먹고 살겠나 등등. 시간이 지나고 보니 활동보조인인 나한테 똑같이 꼳히는 시선이다. 돈벌이가 아니라 봉사활동을 하는구나, 나잇값은 해야 되지 않겠니 하는 말들. 그러나 나에겐 장애인의 전동휠체어 옆이, 장애인이 다니는 노들야학이 나의 '삶터'이다. 다소 가엾겠지만 그런 시선은 거두길 바란다. 여기 와서 살아봐라, 그리 다르지 않다. 너의 기쁨이 여기서는 데칼코마니처럼 색다른 모습으로 묻어날 테니.


Posted by Daes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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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aeknab 2013.11.03 23:46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활동보조 검색하다가 들렀습니다. 저도 활동보조인입니다. 노들에서 활동하시나 봐요. 반갑네요.

노들야학 박경석 교장샘이 페이스북에 멋진 사진을 공유하셨다. 

(원본은 "장애, 성과 적응"이란 뜻의 "Discapacidad, Sexualidad y Adaptacion"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나온 건데, 어떤 성격의 공간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사진 아래 달린 글을 읽을 수 없어 무척 아쉬웠다. 그래서 약간의 수고 끝에 뜻을 알아냈다.


  우선 스페인어 원문 (모음 위의 기호는 입력할 수 없었다)

ningun hombre esta realmente enamorado, hasta que guarda su orgullo, vence sus dudas, y confia en la mujer que su corazon eligio


  구글 번역 결과

no man is really in love, until you save your pride, overcome their doubts, and trust the woman who chose her heart

(chose her heart - 이 부분은 오역인 듯)


  spanishdict 번역 결과


any man really fallen in love, to save his pride, overcomes his doubts and trust in women than his heart eligio
Microsoft Translator
No man is really in love, until you save your pride, overcomes their doubts, and hopes in the women that their heart chose
SDL
no man is in love really, until he(she) keeps its pride, conquers its doubts, and trusts in the woman that its heart chose

PROMPT













  나의 번역

"남자가 온전한 자존심을 갖고 의심을 떨치고, 또한 본인의 마음 그대로인 여자를 신뢰하기 전까지 남자는 여자를 진정 사랑하는 게 아니다."



Posted by Daes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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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lyosha 2012.05.03 21:5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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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난 못

저자
폴 콜린스 지음
출판사
양철북 | 2006-06-26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역사적 인물을 통해 자폐증의 세계를 보여주는 네모난 못. 역사 ...
가격비교

(참고 : 저자의 아들 모건은 자폐인이다.)


    자폐인을 위한 변명


다른 사람들이, 아니 자폐인 스스로도 자폐인을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는 외계인으로 묘사하곤 한다. 그러나 모순인 것은, 사실은 정확히 그 반대라는 점이다. 자폐인은 곧 우리이고, 자폐인을 이해하는 것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이해해 나가는 길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라. 장애란 일반적으로 무엇이 부족한 상태로 정의된다... 자폐증은 능력이자 동시에 장애다. 무엇이 부족할 뿐 아니라 무엇이 풍부하기도 한 것이다.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고유한 특성이 지나치게 많이 발현된 경우다. 동물 중에도 사회성이 있는 동물이 있지만, 추상적 추론을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 뿐이다. 자폐인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데, 우리는 그 존재를 이해조차 하지 못한다.

  - 209~210쪽

    너무 외로워어어

나는 모건을 꼭 끌어안는다. 
"쉬 쉬 쉬. 아빠가 여기 있잖아."
"너무 외로워어어어."모건이 큰 소리로 노래한다.
  고개를 들어보니 우리를 보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나는 식은땀을 흘린다. 모건이 처음으로, 어디에서 들은 말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내뱉은 첫마디가 이거다.
  - 220쪽

   늑대소년 피터의 즐거움

제임스 펜 농장에서 피터는 행복하게 지냈다. 피터가 노래를 부르거나 콧노래를 하는 것이 마을 사람들의 눈에 자주 띄었다. 자연이 가까이 있었다. 따뜻한 태양, 서늘한 밤공기, 계절의 변화가 야생 소년에게 절절한 기쁨을 줬다. 어떤 사람이 한 말에 따르면 "피터는 봄이 오자 정말 신이 난 것 같았다. 하루 종일 노래를 부르고 맑은 날에는 밤 시간에도 노래를 부르고 있다. 달과 별을 보고 좋아한다. 어떨 때는 햇살 아래에 서서 눈이 부신 듯 불편해 하면서도 해를 마주 보고, 별이 빛나는 밤에는 춥지만 않으면 집 밖에 나가 있으려 한다." 대신 날씨가 좋지 않으면 괴로워했다. 비가 내리기 한참 전부터 피터는 불안해하며 울부짖었다.
  - 51~52쪽

    장애인 부모의 보편적인 마음


이제는 사람들 시선에도 익숙해진 것 같다... 사람들이 우릴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래도 괜찮다. 우린 서로를 이해하니까. 그리고 사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하고는 다르다. 이건 비극도 아니고, 슬픈 이야기도 아니고, 주말의 영화도 아니다. 그냥 우리 식구다.
  - 299쪽

모건은 내가 본 아이 가운데 가장 행복한 아이다. 그렇지만 하루도 걱정하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가슴에 무엇이 찔린 것처럼 아프지 않은 날이 없다. 우리가 죽은 뒤에, 모건이 나이가 들었을 때, 그때는 정말 외로울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자기만의 세계 속에 사는 자폐인은 외로움, 절망, 처절한 소외감을 느낄 수 있을 텐데 부모가 곁에서 도와줄 수 없게 될 때는 어떻게 될까. 다른 누가 옆에서 도와줄 수 있을까?

"그래. 아무튼 모건이 형제 없이 혼자 자라게 하고 싶진 않아."
  - 227쪽

나는 모건이 세상에 적응하기를, 모건이 다르다고 느끼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랐다. 특수학급에서 교육을 받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일반 학교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물론 그럴 수만 있다면 적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적응하기만 한다면 살아가기가 훨씬 쉬울 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만약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이 아이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 알 수 없다. 자폐인은 스스로를 만들어 간다. 우리가 어떤 존재로 만들려고 아무리 애를 써 봤자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이 아이들을 성공이나 실패와 같은 일반적 범주로 가를 수나 있는가?
  자폐인은 근본적으로 네모난 못이나 다름없다. 네모난 못을 둥근 구멍에 넣으려 할 때, 문제는 망치질이 힘들다는 것만이 아니다. 못이 망가지는 것이다. 정상 학교가 나를 비정상적으로 불행하게 만든다면? 정상 사회에서 자라면서 불행한 어른이 된다면? 그것이 성공일까? 그게 정상일까? 그 안에서 빠져 죽을 것 같더라도 주류 안에 들어가고 싶은가?
  - 293~294쪽

우리는 십중팔구 모건을 떠나보내지 않을 것이다. 자폐인은 생산과 독립에 대해 알게 된 뒤에도, 부모가 주입해 주어야 할 여러 복잡한 기능을 이해한 뒤에도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의 절반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자폐인은 이용당하기도 쉽고, 스스로를 방치해 버리기도 하고, 아니면 사라져 버린다 할지라도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런 상태로 세상에 내보낼 수는 없다. 그래서 여러 세대가 계속 한 집에서 같이 사거나 아니면 이웃에 나란히 산다. 
  - 255쪽


    자폐인의 정신 세계

모건은 손을 흔들 때 손등을 밖으로 하고 손바닥을 자기 쪽으로 한다. 그렇게 해야 손을 흔들면서 자기 손바닥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자기와 똑같은 것을 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말이 된다.
  - 296쪽

모건은 삶도 아직 그다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데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철학자 이폴리트 텐은 1876년에 아장아장 걷는 아기 한명을 관찰하고 이렇게 놀라움을 표현했다. "아이가 제일 먼저 묻는 거시은 항상 이런 것이다. '뭐라고 말해? 토끼는 뭐라고 말해? 새는 뭐라고 말해? 말은 뭐라고 말해? 저 나무는 뭐라고 말해/' 동물이건 나무건 아이는 사람처럼 취급하여 그것이 무슨 생각을 하고 뭐라고 말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이 아이는 세상 모든 것이 살아 있다고 느끼니 당연히 아무것도 죽은 것으로 생각되지 않았을 것이다.
  - 251쪽

대부분 자폐아는 자기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을 구분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은 다르게 생각한다거나 다른 관점에서 사물을 본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자기가 아는 걸 샐리는 모른다는 걸 상상할 수 없다. 또 자폐아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손가락이 가리키는 데를 따라가지도 않는다. 그 사람이 자기와 다른 걸 생각하거나 보고 있을 리가 없는데, 시선이나 손가락이 향하는 데를 뭐 하러 굳이 보겠는가.

자폐인은 다른 범주 안에서 다른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으니, 틀릴 수조차 없는 것이다. 우리는 너와 나로 이루어진 세계에 살지만 자폐아는 나로 이루어진 세계에 산다. 자폐아의 언어를 전부 옮겨 써 보면, 아이의 어휘에서 어떤 부류의 동사는 완전히 빠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의 정신적 상태를 묘사하는 단어인 믿다, 생각하다, 알다... 같은 단어는 없다. 이런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자기와는 다른 의도와 생각을 갖고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할 때 또 개념 한 가지가 사라진다. 속임수. 이 아이드리은 자기 눈앞에서 벌어지는 속임수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 112~113쪽

자폐인은 과거에 야생 인간이나 동물에 가까운 사람으로 치부되었는데, 사실 자폐인은 실제로 동물으 감정과 유대를 느낄 수 있다. 집중력이 아주 강하고 민감하고 대화를 좋아하지 않아 사람보다는 동물의 감정에 공감하는 것이다. 

자폐인은 자기 감정에 압도될 때가 많다. 자폐아가 다른 사람과 접촉할 때 오는 압도적인 감각의 물결을 극복하려고 발버둥치는 것은 조금도 이상스런 행동이 아니라고 그랜딘(자서전을 쓴 자폐인)은 설명한다.말이 겁을 먹었을 때 하는 행동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 232쪽


    자폐인의 모습

"여기 회사에는 프로그래머들이 바깥 나들이를 하게 하는 일만 전담하는 직원이 있어요. 프로그래머드리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살아요. 그 밖에는 다른 삶이 없지요. 회사에 일하러 가고, 회사 마당 한쪽에 있는 아파트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서 다시 회사로 가지요.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해요. 그 밖에 뭘 해야 하는지조차 몰라요. 그래서 그 일만 맡아서 하는 직원이 있는 거예요. ㅣ프로그래머들과 수학 이론가들이 외출할 수 있도록 장소를 예약하는 일이지요...
하루는 마이크로소프트 직원만을 위해서 교향악단 연주회를 통째로 예약했어요. 프로그래머들만을 대상으로 연주하는 거지요. 그런데 청중들이 휴대전화를 비롯한 온갖 기계를 가지고 가서 연주하는 중에도 계속 켜 놓고 사용한 거예요... 그래서 다시는 연주회에 가기 어렵게 됐죠...
하지만 프로그래머들은 그걸 몰랐어요. 정말로요. 연주회에서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진짜 몰랐던 거라구요...
마치... 마치 실제 사람들 사이에서 행동하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으면 모르는 것처럼요. 그러지 않으면 정말 모르거든요."
  - 141쪽

나는 손으로 모건의 턱을 부드럽게 쥐고 얼굴을 돌리려 한다. 모건은 이제 나와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지만 눈길은 여전히 나를 피한다. 물론 모건은 날 볼 수 있다. 늘 하는 일이다. 모건은 갑자기 나한테 고개를 돌려 두 눈을 맞추고, 내 손가락을 쥐고 자기가 모르는 단어를 가리키기도 한다. 때로는 안아달라는 뜻으로 나를 보기도 하고, 꼭 껴안고 노래 불러 달라고 그러기도 한다. 어떨 때는 단지 날 보고 웃기 위해서 자기가 하던 일을 멈추기도 한다. '아빠, 나 여기있어.'
  - 248쪽

거의 대부분 남자아이다. 아주 세부적인 것에 집요하게 몰두하고, 전차 노선도와 달력을 외우고, 실 조각이나 성냥갑 같은 물건을 강박적으로 수집하고, 다른 아이들과 같이 놀지 않지만 끝없이 장난감을 바닥에 한 줄로 늘어놓는 아이. 또래 아이들보다 글은 훨신 잘 읽지만 말은 하지 않는 아이도 있고, 수 계산은 놀랍게 잘하지만 옷을 갈아입거나 씻지 못하는 아이도 있다. 추상 세계에 빠져서 "얼빠진 교   수처럼 실제 삶의 문제에는 무기력하다."고 아스퍼거는 고찰했다.

  그중 한 아이는 "마치 막 하늘에서 내려온 것처럼" 행동했다고 아스퍼거 박사는 기록했다.
  - 83쪽

생후 2년 동안에 인간의 뇌 안에서는 신경이 엄청난 속도로 서로 연결된다. 이런 신경 통로 가운데 상당수는 필요 없거나 부적절한 것으로, 유아의 뇌 안으로 엄청난 분량의 데이터가 들어오고 뇌가 급격한 속도로 물리적으로 성장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놀랍게도 두 살에서 세 살 사이에 뇌 안의 뉴런 수는 감소한다. 유용한 신경 통로가 자리 잡으면 반복되거나 비논리적인 것은 제거하는 '신경 가지치기'가 진행된다. 물론 서로 다른 감각 사이를 연결하는 신경 통로도 사라진다. 가지치기 이전에는 모든 사람이 다 공감각을 갖고 있는 셈이다. 공감각이나, 절대음감, 투렛증후군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는 신경 가지치기가 일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감각이란 부엌 불을 켜면 동시에 믹서가 작동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자폐증으로 말하면 전등 스위치를 켜면 전구가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폐인이 손을 퍼덕거리며 마구 휘젓는 것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자기 감각에 의해 쇼크를 받고 있는 것이다.
  - 178~179쪽

자폐인은 전부 극도로 내향적이고, 개들은 극도로 외향적이다. 개는 무리짓기를 좋아하고 누군가를 사귀려 든다. 끝없이 주변 세계를 의식한다. 개는 책을 읽지도, 아무도 안 볼 때 피아노를 분해하지도, 컴퓨터에 새 프로그램을 깔지도 않는다. 하지만 개는 누가 자기 주인에게 친절하게 대하는지 아니면 위협적으로 대하는지 아주 잘 알아차린다. 자폐인이 잘하지 못하는 게 바로 그런 것이다. 자폐인과 개는 서로 딱 맞는 짝이다.
  - 246쪽

    

    자폐인 부모의 인구학적 구성

자폐증의 기원에 대한 의문은 자폐증 연구가 처음 시작되었을 무렵부터 제기되었다... 자폐인의 가족 안에서 자폐증의 희미한 전조를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이 가족 구성원의 정신과 재능에 영향을 미친다면 어떤 결과로 나타날 것인가? 한가지 일에 몰두하고, 집중력이 남다르고, 논리적 체계에 마음을 뺏기는 사람은 대개 사회적으로 어설프지 않은가?
  "이런 인지적 특징을 가진 인물의 전형적인 직업은 엔지니어링이다." 하고 배런 코헨은 말했다.
  배런 코헨은 영국에서 자폐아를 둔 부모 천 쌍을 조사했는데, 아버지가 엔지니어링 분야에 종사하는 경우가 전국 평균보다 두 배나 웃돌았다. 과학자나 회계사처럼 집중력과 추상화 능려기을 요구하며 주로 혼자 일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빈도도 자폐아 가정에서 훨씬 높았고, 예술가는 평균보다 네 배 가까이 많았다. 배런 코헨과 다른 연구자들은 학문적으로 가장 뛰어난 집단으로 범위를 좁혀 다시 조사했는데, 즉 이곳 케임브리지 대학 학생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과학 전공자 식구 중에 자폐인이 있을 확률이 문학 전공자 식구에 비해 여섯 배나 높았다.
  - 118쪽
  

    자폐증(autism)이란 단어의 탄생


카너는 이런 증상을 지칭하기 위해 자폐증이라는 단어를 만들었고, 카너가 쓴 논문은 자폐증 연구라는 새 장을 열었다. 그러나 카너는 몰랐지만 빈에 있는 카너의 옛 학교에서 한스 아스퍼거도 똑같은 이상에 대한 논문을 제출했다. 전쟁 중이라 전혀 교류가 없던 두 나라에서 두 사람이 각각 동시에 같은 발견을 했다는 것은 역사 속의 기이한 우연 가운데 하나다. 더욱 신기한 것은 두 사람이 똑같은 단어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 86쪽


    기술 발달 사회의 단면

우리 가운데 우리가 '어떻게' 그걸 하는지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우리가 '뭘' 하는지는 안다. 기차역에서 전광판에 들어온 신호를 읽고, 거대한 디젤엔진이 끄는 기차를 타고, 좌석에 앉아 위성을 통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나 컴퓨터로 관리하는 기차역의 신호나, 기차 엔진이나, 무선전화나, 위성 또는 내가 앉아 있는 좌석 덮개에 무늬를 짜 넣은 기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걸 이해하는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우리는 기이하게 복잡하고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과정을 통해 옷을 입고 밥을 먹고 이동한다. 우리 세대는 일상생활에서 부딪치는 모든 물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전혀 모르고 사는 최초의 세대일 것이다. 우리는 전문가들의 세상에서 오도가도 못하게 좌초한 불운한 일반인이고, 그냥 이렇게 얼렁뚱땅 헤쳐 나간다. 그게 최선이므로, 그게 가장 쉬운 방법이므로.
  - 123~124쪽




Posted by Daes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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