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그레이 (2012)

The Grey 
7.7
감독
조 카나한
출연
리암 니슨, 프랭크 그릴로, 더모트 멀로니, 달라스 로버츠, 조 앤더슨
정보
액션, 드라마 | 미국 | 116 분 | 201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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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ce more into the fray 

Into the last good fight I'll ever know 

Live and die on this day 

Live and die on this day 









번역 1>

출처 : 왓챠 평가-조성국


다시 한번 싸움 속으로

내가 맞이할 최후, 최고의 전투를 향해 

오늘 살고 또 죽을 것이다 

바로 이 날을 살고 또 죽을 것이다


번역 2>

출처 : 영화 자막


한번 더 싸움 속으로

내가 알지 못할 마지막 훌륭한 싸움 속으로

살고 죽는다, 오늘

살고 죽는다, 오늘





이 시는 감독 조 카나한(Joe Carnahan)이 직접 썼다고..




Posted by Daes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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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이 가하는 폭력과 혼란에 질서를 부여하는 시. 고통스러운 감정은 정확하게 묘사하는 순간 멈춘다고 했던가. 마치 혈관주사처럼 피로 직진하는 시 덕분에 기력을 챙겼다. 꿈같은 피안으로의 도피가 아니라 남루한 현실을 직시하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힘이 났다.


사는 일이 만족스러운 사람은 굳이 삶을 탐구하지 않을 것이다. 시가 내게 알려준 것도 삶의 치유불가능성이다.


내일의 불확실한 희망보다 오늘의 확실한 절망을 믿는 게 낫다는 것을 시는 귀띔해주었다.

Posted by Daes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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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용규 님이 3월 15일(목) 청파교회에서 열린 '저자와의 만남'에서 말씀하신 내용 메모.
(1> 교회 강연이라 배려하신 부분도 있겠지만, 강연 내용으로 볼 때 기독교 신자이신 것 같다.
2> 아래 내용은 실제 말씀하신 순서와는 조금 다를 것이다.)

...

성서의 교훈은 '최종'이란 의미에서 궁극적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지금 당장 실행하기 어려운 너무 무거운 십자가가 된다. 예수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친 것은 가능할지 의문이다. 간결하고 지나치게 가혹하다.
진리는 끊임없이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십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하나의 계명으로 요약할 수 있다. 기독교 안의 유일한 진리가 있다면 이것일 것이다.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의 전제조건이며, 이웃 사랑은 진정한 자기사랑법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사랑만이 자기를 사랑하게 한다.

지옥은 물론 천국에서도 자기 팔보다 더 긴 수저를 갖고 있지만, 천국에선 서로 앞 사람의 입에 음식을 떠넣어 주기에 모두가 배불리 행복하게 산다. 이 이야기는 남을 행복하게 하는 내가 남에 의해 행복해지고, 남을 사랑하는 내가 남에게 사랑받는 나를 만든다는 진리를 말해준다. 프랑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이같은 관계의 원리를 '상호주관적 매듭'으로 불렀다. 이것이 '철학카페에서 시읽기' 책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개념이다.

비논리적인 것은 무가치한 것일까?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은 지극히 작은 분야에 불과하다. 논리를 벗어나야 하나님의 일을 설명할 수 있다.
모든 이데올로기는 논리적인 순환구조를 갖고 있고 순환논법으로 어떤 명제든 정당화한다. 그래서 수단과 목적이 전도된다. 그래서 허위의식이 생기고 우상화가 일어난다.
하지만 모든 수단은 목적 아래 있어야 정당성을 가진다.



Posted by Daes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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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의 이해 수업 과제로, 좋아하는 시인 인터뷰 해오기가 있었는데
스스로 곱씹고 볼 구절이 많아서 올려본다.
대강 메모해 뒀던 걸 떠올리며 쓴 거라 심보선 시인이 말한 것과 어긋난 것이 있을 수도 있겠다.

인터뷰 전에 심보선 시인에 관한 자료를 모아봤는데, 관심 있는 분은 한번 보시길... 네이버 카페

 
...


시사인 이라는 주간지에서 2008년 올해의 책 문학 부문에 심보선 시인의 첫 시집을 선정했다. 그 기사를 보고 시인의 작품을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는데, 등단작 '풍경'의 감칠맛 나는 표현들이 참 좋았다. 그래서 곧 시집을 구입했다.

시인은 서울대 사회학과를 나왔다. 그리고 스물다섯에 등단했다. 부끄럽지만 이 두가지는 열등감을 준다. 나 또한 사회학을 전공하지만 기실 지식은 미천하기 짝이 없고, 등단을 강렬히 원하지만 노력도 거의 없거니와 그만한 수준을 이루기엔 갈 길이 멀다.

괜시리 조금 화가 나는 이 유치한 감정에도 불구하고 심보선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상당히 흠모한다. 나보다 나은 사람, 닮고 싶은 사람이다. 그래서 만나고 싶었다.

지난 5 25, 나와 마찬가지로 심보선을 만나고 싶어한 형과 함께 경희대에 다녀왔다. 경희사이버대 문화예술경영학과 심보선 교수, 기사를 통해 얻은 자잘한 정보들과 시를 읽고 형성한 이미지에 비해 전화를 받는 목소리는 퉁명스러웠다. 직접 만나서는 과묵한 편일 뿐, 부족한 질문에 친절하게 답을 해주었다.

카페에 자리를 잡고 던진 첫 물음이 좀 부끄러웠지만 딴에는 간절한 것이었다. 시인이 예술사회학을 전공했기에 그와 관련한 의문점을 꺼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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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문화사회학 시간에 배운 바로는, 사람은 이미지에 근거해 본질을 이해하기에 본질과는 완전히 단절되어 있고 그래서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근데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아무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면, 아마도 신만이 완전한 이해라는 것을 할 수 있을 것이고, 또 신만이 인간에게 너희들은 불가능하다 이야기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루카치의 책을 읽어 보았나? 전근대와 근대의 차이는 본질을 중시하는지 아니면 질문을 중시하는지의 차이다. 전근대는 서사의 시대다. 본질과 나는 서로 소외되어 있고 그래서 나는 애도하게 된다. 본질을 그리워하게 된다. 한편 나는 시를 애도하는 느낌으로 쓴다.

하지만 근대에 있어서는 다르다. 본질을 가정하지 않는다. 근대적 태도는 나는 모른다는 자세에서 출발한다. 불교의 '이 뭐꼬'하는 물음과 같은 맥락이다. 본질과의 합일과 그것에 대한 의심이 공존하는 가치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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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사회학자로서 어느 시인을 높이 평가하는가?

"예술사회학자로서 시를 보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따지자면, 김종삼 시인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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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로서 보는 시의 의미는 무엇인가?

"경제학은 할 수 있는가의 학문인 데 비해, 사회학은 할 수 없는가 하는 부정적 의문에서 출발한다. 시는 어찌할 수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사르트르의 말과 맞아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를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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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읽다 보면 감칠맛 나는 표현을 상당히 중시하는 듯 보인다.

"시를 쓴다는 것은 언어를 조립하는 것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표현에서 오는 부분적 즐거움은 부차적일 뿐, 표현이 아주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자기만의 표현법을 찾아야 한다. 표현 이외에 플러스 알파를 이끌어 내는 것은 시인의 고민, 집요한 궁리, 천착이다. 자기만의 사유가 녹아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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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으로서, 예술적 영감은 어디서 받는가?

"시를 쓰는 영감은 여러 곳에서 얻는다. 문학은 그 중 일부에 불과하다. 새로움은 다양한 섭렵에서 오는 것이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 소설은 한편의 영화같다. 단편영화를 보는 듯했다.

그리고 시만이 절대적인 예술인 것은 아니다. 시는 예술 장르 중의 하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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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언제부터 쓰게 됐나?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을 짝사랑하면서 시를 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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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가면서 친구한테 시작 노트를 맡겼다던데, 공개적으로 시를 쓴 건 아니었는가 보다.

"군대 갈 때 가장 친한 친구에게 맡긴 '오감록(五感錄)'이라는 제목의 시작 노트를 맡겼다. 그리고 군대 가서 시 쓴 것을 선임한테 들켰는데 그 사람도 시를 썼기에 별 문제 없이 넘어갔다. 

대학교 다닐 때는 사진, 영화 동아리에 있었다. 그리고 시 창작 책은 전혀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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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이 되신 이후에도 꾸준히 시를 쓰고 있는가?

"요새 바빠서 시를 통 못 쓰고 있다."

 

어떤 질문을 할까 하는 고민이 미천했기에, 시에 대한 얘기보다 사회학과 영화에 대한 말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한시간쯤 지났을 무렵에 시인을 찾는 전화가 몇번 오고 금새 헤어졌다.

어느 기사를 보면, 심보선 시인은 기형도 전집을 오랜만에 펼쳐보니 부끄러웠다고 한다. 떠난 시인에게서 자신이 받은 영향이 너무 컸기 때문이란다.

심보선을 만나고 한동안 괜찮은 시적 표현만을 궁리했다. 어떤 시를 쓸까 고민하지 않고 빛나는 표현만을 항상 생각했다. 얼마 안가 열의가 사그라든 뒤에 별로 기억나는 구절은 없었다. 심보선은 표현을 중시한다는 생각도, 그것을 따라해보자는 생각도 잘못이었다. 어느 누구 못지 않은 치열한 고민이 가장 중요하다. 나는 그것을 항상 피해 왔다. 귀찮아 했다.

표현을 보고 사게 된 이상, 심보선 시집의 어려운 시들은 다 지나쳐버렸다. 그래서 참 아쉽다. 부분만 읽었고 그만큼도 채 잘 알지 못한 채로 시인을 만나서 부분만 읽었다. 참 아쉽다.

작년부터 무척이나 등단을 꿈꿔 왔다. 노력은 안했다. 부족하달 만큼도 투자를 안했다. 취직을 위한 이력서 한줄 정도로나 등단을 생각하고 있다. 등단할 만큼 시 수준을 높여보자고 생각해 보지만 별 수 없다. 그래서 '이 뭐꼬' 하는 질문을 곱씹어 보기로 했다.

나는 왜 시를 쓰려 하나, 시란 무엇인가. 앞으로 얼추 답이 나올 때까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것이다. 쓸모 없음의 쓸모, 나에게 시란 무엇일까.

심보선 시인을 만난 것은 이 질문의 시작점이다. 우선 일차적 답은, 무엇을 하든 치열한 고민이 뒷받침되야 한다는 사실이다. 확실히, 기술보다 마음이 먼저다.

Posted by Daes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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