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학교 5 찬란한 이슬람 문명



인류학에 ‘박해를 당할수록 정체성은 강해진다’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다문화 정책에서 소수민족이나 이주민을 차별하면 점점 그들의 정체성이 돌덩이처럼 굳어집니다. 반대로 열어 주면 흐물흐물해져서 주류 사회에 스며들어 녹아 버립니다. 만고불변의 법칙입니다. 

- 이슬람이 이룩한 문명


문제는 메카라는 곳 자체가 원래부터 콘텐츠가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슬람 문화는 기본적으로 텅 비어 있는 용광로 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문화적인 하부 구조를 빠른 시간 안에 만들려면 정복 전쟁을 하면서 정복한 지역의 문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태생적인 과제였습니다. 여기서 포용과 융합의 정신이 나옵니다. 이게 이슬람 문화의 특징입니다.


역설적이게도 문화는 잡탕일수록 우수합니다. 단일 문화는 오래 못 갑니다. 고이고 썩어서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페르시아에서는 주로 제국 운영을 위한 행정 체계와 제도를 도입했고요, 유럽 쪽에서는 지중해의 광범위한 철학과 사상이 유입됩니다. 이것이 이슬람의 두 버팀목입니다.

- 페르시아와 비잔틴을 단번에 포용한 이슬람


그리스 로마의 지중해 문화에, 메소포타미아에서 축적된 오리엔트 문화, 인도의 대수학과 수학적 지식에, 중국의 제지술과 비단 직조술, 화약과 나침반 그리고 형이상학적 지식까지를 직접 접촉해서 받아들이잖아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인류 문명 5천 년 역사에 이런 때가 없었습니다.

이 같은 배경을 바탕으로 10~13세기에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인류 최초의 르네상스가 일어납니다. 그때까지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인류 최고 수준의 르네상스였습니다. 유럽보다 정확하게 500년 전에 일어났습니다. 


서구에서는 잊혔던 그리스 학자들의 업적이 왜 이슬람에서 받아들여지고 녹아들었을까요? 당시 서구는 적어도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을 신의 오묘한 섭리에 도전하는 오만불손하고 위험한 요소로 봤습니다.

- 이슬람 문명의 지식 엔진 바이툴 히크마와 이슬람 르네상스


이미 천년 동안 축적된 문화적 자양분과 지식의 하부 구조가 이슬람 사회에 존재해 왔고, 그것이 톨레도라는 매개를 거쳐 유럽에 유입된 겁니다. 그래서 톨레도가 인류 지성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여러분 스페인에 가시면 톨레도에 일부러라도 가 보십시오. 마드리드에서 서남쪽으로 약 한 시간 거리밖에 안 됩니다.


티무르에서 일어난 르네상스가 원나라와 명나라를 거쳐 조선에 닿아 세종의 르네상스로 이어집니다.

- 바그다드발 르네상스가 유럽에 전파된 경로


어떤 정치 체제는 왕조(Dynasty)고, 어떤 정치 체제는 왕국(Kingdom)이고, 또 어떤 정치 체제는 제국(Empire)이라고 구분하는지 아시나요? 정복한 민족 수, 지배하고 있는 영토의 크기를 보고 분류하는 경우도 있지만, 더 정확하게는 문명을 받아들이는 크기에 따라 이 세 가지를 분류합니다.

- 왕조, 왕국, 제국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시 오리엔트 남쪽에 있는 철학의 도시 밀레투스로 유학을 갑니다. 축적된 오리엔트 철학을 배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오리엔트 철학을 바탕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아테네에 돌아가 독자적인 철학을 세웁니다.

- 아랍에서 꽃핀 학문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리스 문화는 다분히 사변적입니다. 과학도 그랬습니다. 이론에 치우친 그리스 과학에 비해 이슬람 과학은 훨씬 실용적이었습니다. 끊임없는 실험과 관찰을 통해 정교하게 다듬어 갔습니다.


페르시아와 그리스 로마, 인도, 중국 이야기가 다 들어와 있습니다. 조금 전에 배웠던 문화의 방정식이 그대로 문학적 용광로에 적용된 것이 《아라비안나이트》입니다. 이야기의 중심 배경은 바그다드입니다만, 이야기 소스는 그리스 페르시아 중국 인도에서 가져온 거죠. 감정 이입 기법과 형식적인 면에서는 그리스 고전문학의 전형을 받아들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복합 문학 장르입니다.

- 받아들이되 자기 것으로 만들다


아랍은 본래 밤 문화입니다. 하루의 시작이 일몰이고 하루의 끝이 일출입니다. 우리와는 우주관이 다릅니다. 낮에 태양은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뜨겁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낮에는 조용히 쉬면서 낮잠을 잡니다. 낮잠 자는 문화가 뭐죠? 시에스타(siesta)입니다. 이슬람이 스페인을 800년간, 남프랑스와 이탈리아 남부를 200년간 지배하는 동안 당시 우월한 문화였던 낮잠 문화를 유럽권이 받아들인 겁니다.


...문제는 영국이었습니다.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먼저 커피를 마신 나라이지만, 지금 영국은 커피보다는 차 문화가 발달해 있습니다. 물론 1662년 찰스 2세에게 시집 온 포르투갈의 캐서린 공주가 귀한 차를 가져오면서 궁정에서 차 문화가 발달한 탓도 있지만, 식민지 성격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영국이 식민 지배한 나라가 인도, 스리랑카, 말레이시아입니다. 비가 많은 지역이고 생태조건도 안 맞아서 아무리 해도 커피 플랜테이션이 잘 안 됩니다. 결국 실패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중국의 녹차를 가져다가 인도남부와 스리랑카에서 차 플랜테이션을 했습니다.

  그런데 커피에 중독된 사람들 입장에서는 중국식 녹차가 심심할 수밖에 없겠죠? 약간의 카페인이 있지만 전혀 취향에 안 맞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개발한 방법이 차를 진하게 우려내서 카페인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쓰니까 거기에 설탕과 우유를 많이 넣어서 밀크티를 만들어 먹게 된 거죠. 커피 플랜테이션에 실패한 처절한 슬픔을 밀크티로 달랬다고나 할까요.

  예멘의 모카 아라비카 원두를 가져다가 각 나라에 이식을 했는데, 그게 원래 맛이 날까요? 배추도 한 2년 심으면 맛이 바뀝니다. 제가 유학할 때 이스탄불에 한국 교민이 안 계셔서 종묘상에서 배추 씨앗을 사서 보내 달라고 집에다 부탁한 적이 있었습니다. 첫해, 두 번째 해는 그걸로 잘 먹었습니다. 그런데 3년째가 되니까 키가 엄청나게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속도 단단해져서 도저히 씹을 수가 없습니다. 3년쯤 되니까 현지 토양과 환경에 맞게 종이 바뀌는 거죠. 커피도 마찬가지였겠죠? 끊임없이 품종 개량을 해도 원래 아라비카 원두 맛이 안 나니까 로스팅 기술 쪽으로 방향을 선회합니다. 이름도 우아하게 붙이잖아요. 화이트 킬리만자로, 다크 나이트, 메디터레이니안 블루, 사프란볼루 튀르크 카웨등등.

- 이슬람과 커피 문화


이런 지적 바탕 위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라고 하는 탁월한 신학자가 등장합니다. 그는 스승인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나 아베로스의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을 완전히 섭렵했습니다. 이때 쌓은 지식으로 기독교의 우월성을 증명하고 이슬람의 모순과 열등성을 강조하는 데 자기 인생을 바쳤던 사람입니다. 이후 유럽 신학은 토마스 아퀴나스를 태두로 해서 형성되었고, 이때부터 이슬람에 대해 가장 적대적인 관점이 유럽 신학의 정통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천명한 가장 대표적인 명제가 ‘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이었죠? 아퀴나스는 이슬람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본래 아는 사람이 하면 더 무섭잖아요. 당시 최고의 이슬람 전문가였습니다. 그는 이슬람의 네 가지 해악을 주창했습니다. 첫째는 진리를 왜곡했고, 둘째는 폭력과 전쟁의 종교이며, 셋째는 무분별한 성적 접촉을 허용했고, 넷째는 무함마드는 거짓 예언자라는 것입니다.

  지금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이슬람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과 정확하게 일치하지요? 지성사를 공부하다 보니까 토마스 아퀴나스에서 딱 걸리더라고요. 이슬람에 대한 그의 견해는 이후 유럽 지성 사회에 그대로 전달되어서 서구 사회가 이슬람을 오해하고 적대감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모든 신학은 선악 구도입니다. 내 쪽으로 들어와서 녹든지 아니면 사라져야 한다는 게 신학의 기본적인 입장입니다. 물론 해방 신학이나 다종교 신학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서는 소수잖아요. 하물며 중세 시대에는 어떻겠습니까? 천 년간 이슬람에게 눌려 왔다는 인식이 깔려 있을 때 새로운 신학으로 자신감을 얻고 자기 신앙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방법의 하나로 이슬람의 모순을 끄집어낸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시대적 상황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일종의 선명성 경쟁이 필요했던 때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는 기독교가 약자였습니다. 약자는 상대방에게 관용을 베풀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 이슬람이 포용과 융합과 똘레랑스를 실천할 수 있었을까요? 힘의 우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약자가 강자를 어떻게 포용할 수 있겠습니까? 프랑스가 한때 똘레랑스로 소수 민족을 품었습니다만, 그들의 숫자가 10%를 넘어서니 가장 먼저 똘레랑스의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무색하게 토마스 아퀴나스 이후 이슬람에 또 한 번 철퇴를 가한 사람이 바로 단테입니다. 단테의 ‘신곡’을 보시면 <천국>과 <지옥> 편에서 무함마드와 무슬림을 악마의 레벨로 다룹니다. 유럽에서 ‘신곡’을 읽지 않고 교양인이라 할 수 있나요? 교양 필수 중에 필수잖아요. 여기서 이슬람에 대한 인식의 철퇴를 가합니다. 그 이후에는 헤겔이 또 이슬람에 철퇴를 가합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오는 겁니다.

- 유럽의 이슬람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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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학교 4 여성과 이슬람 문화




ㅁ 아랍과 이슬람은 다르다

그런데 교역을 통한 것이든 약탈과 전쟁에 의한 것이든 이 두 가지 생존방법 모두 철저하게 남성의 몫이었습니다. 문화인류학에서 보면 여권이 우세하거나 모계중심 사회는 대부분 농경정주사회였습니다. 남자의 노동력이 없이 여성의 노동력만으로도 살 수 있어야 여권신장이 가능한 거죠.


...인원만 남겨 놓고 나머지는 없애면 없앨수록 공동체의 생존이 유리해진다고 판단한 겁니다. 그래서 여아살해(femicide)라는 나쁜 풍습이 생겼습니다. 특히 쌍둥이를 낳으면 반드시 하나는 죽입니다.


...승리한 부족은 새로운 오아시스의 주인이 돼서 들어옵니다. 이때 승리한 부족은 패배한 부족의 아녀자들을 절대적으로 보호해줄 도덕적 책무가 있습니다. 이게 사막의 불문율입니다. 노예로 만들지 않고 정식 사회 구성원이 됩니다. 어차피 인구가 없기 때문에 다 거둬서 자식처럼 키워야 합니다. 남자가 없으면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일부다처는 공동체를 유지하는 유일한 결혼방식이었습니다. 왜냐면 노예로 부려서는 안 되니까 그렇습니다.


...일부다처의 원칙은 이렇습니다. 능력이 있으면 있을수록 많은 가족을 보살펴야 합니다. 이게 아랍사회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입니다. 물론 좋게 말했을 때입니다. 악용되는 사례도 있습니다. 구약성경에도 보면 다윗이나 솔로몬 모두 처와 첩 수백명을 거느렸습니다. 재산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지도자이기 때문에 더 많이 베풀어야 하는 겁니다.


ㅁ일부 다처와 여성 할례


한 남자가 여러 명의 아내를 두면 먹고사는 것 못지않게 생식 본능도 중요하겠죠? 한 남자가 수십 명을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떡하나요? 사회 윤리와 도덕을 지키기 위해 그것을 억제하려는 사회적 기제가 작동합니다. 그게 여성 할례(FGM, Female Genital Mutilation)로 나타납니다. 남성 할례는 여러 여자를 거느릴 때 성적인 기능을 높이고 위생 면에서도 도움이 됩니다. 여성은 음핵을 제거함으로써 성감을 누그러뜨리는 효과를 노립니다. 이렇게 일부다처와 여성 할례는 같이 갑니다.

그런데 여성 할례는 꾸란과 하디스 그 어디를 뒤져 봐도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꾸란과 하디스를 신봉하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여성 할례를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아랍 국가에서는 할례가 없습니다.

여성 할례는 아프리카에서 번성합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원래 다처주의였습니다. 이슬람을 받아들이기 전부터 다처주의였습니다. 아랍의 다처와 아프리카의 다처는 본질이 다릅니다. 아랍에서는 생태적인 생존을 위해 다처가 만들어졌지만, 아프리카에서는 노동력의 분산을 위해 만들어집니다. 남성은 철저하게 사냥과 전쟁의 기능을 갖고, 여성은 가사와 노동과 농사의 기능으로 정확하게 분화되어 있습니다. 직업의 분화가 절대적입니다.

아프리카 부족들의 성인식을 보면 몸을 최대한 단련시켜서 전사가 되어 전쟁을 수행하고 사냥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남성의 몫입니다. 한번 사냥하고 오면 남성들은 다음 사냥에 나갈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모든 힘든 일을 여성들이 합니다. 밭 갈고 소 키우고 아이들 키우는 게 여성의 몫입니다.

여성의 노동량이 너무 큽니다. 과도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전쟁이 없어졌잖아요. 남자가 전사와 사냥꾼으로서의 역할을 못하면 가사노동이나 농사일을 보충해 줘야 하는데 안 합니다. 수천 년간 내려온 전통이라서 그럽니다. 이런 사회에서 여성의 목표는 부지런히 일해 돈을 모아 남편에게 주고, 그 돈으로 신부를 구해 오게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짝을 정해 주기도 합니다. 어느 마을 누구, 예쁘고 아이도 잘 낳을 아무개를 신부 삼아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 그럼 일이 반으로 줄겠죠? 또 새 부인에게는 일을 더 많이 주겠죠? 두 번째 부인도 가만히 있겠습니까?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으면 세 번째 부인을 데려오게 합니다.

아프리카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하는 일을 ‘영적인 직업’이라고 부르며 절대 침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아프리카의 토착적인 관념이 다처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겁니다. 여성 할례를 철저히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 아내들을 통제하려는 수단입니다.

그런데 아프리카에서 기독교는 실패했는데 이슬람은 왜 최대 종교가 됐을까요? 기독교는 일부일처의 윤리를 철저하게 강조했고, 이슬람은 일부다처를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딱 맞았습니다. 본질적으로 보면 이슬람의 다처와 아프리카의 다처가 다릅니다만, 아프리카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형식이 유사하니까 이슬람을 더 선호했습니다.

율법으로는 다처의 조건이 무척 까다롭습니다. 네 사람까지로 제한되고, 모두를 공평하게 대해야 합니다. 아프리카 무슬림들도 그 형식은 따릅니다. 그런데 수천 년간 이어진 여성 할례는 살아남은 겁니다. 여성 할례는 그래서 이슬람이 아니라 아프리카적인 전통에 따른 겁니다. 이집트, 수단, 나이지리아 등 이슬람화된 아프리카 국가들에 아직 남아 있습니다. 이슬람을 믿으면서 여성 할례를 하니까 이슬람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처럼 잘못 알려진 겁니다. 사우디 같은 GCC 국가들에서는 여성 할례를 하지 않고, 동남아에서는 아예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처 문화가 남성이 자기의 권력과 사회적 지위, 경제적 부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금방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성적으로 학대하고, 강제로 처녀성을 빼앗고, 상품가치가 떨어졌다고 판단되면 자기 아내를 노예시장에 팔아먹는 등 인간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온갖 죄악이 횡행했습니다.


...만약 너희가 그들을 공정하게 대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 있거든 오직 한 여자와 결혼하라. - 꾸란 4장 3절


...이슬람의 원칙은 일부일처입니다. 많은 이슬람 율법학자들이 만장일치로 유권해석을 내려놓았습니다. 이슬람의 기본원칙은 일부일처입니다. 그러나 특수한 상황에서 공동체 유지를 위해 네 사람까지 마지노선으로 허용해 놓은 겁니다. 무조건 네 명을 가지라는 뜻은 아니라는 거죠. 


ㅁ아내를 보호하기 위한 결혼 지참금, 마흐르


결혼에서 여자를 보호하는 제도도 만들었습니다. 유목 사회에서 남자 없이는 죽음과 동의어라고 말씀드렸죠. 그런데 남편이 죽어 버리면 큰일 나잖아요. 그래서 결혼할 때 ‘마흐르’라는 결혼지참금을 주게 돼 있습니다. 남편이 처가에다 줍니다. 신부에게 주면 안 됩니다. 반드시 처가에 줘야 합니다.

그 마흐르가 상당히 고가입니다. 우리 사회에 대입하면 억대입니다. 금액의 크기는 신부의 사회적 신분이나 교육, 미모 등에 따라 결정됩니다. 최종 금액은 양가가 합의하게 되어 있습니다. 기본적인 원칙은 비상시에 남편이 없어지더라도 여성 혼자서 최저 생계비를 가지고 노후를 견딜 수 있는 액수 이상이어야 합니다. 옛날 아랍에서는 낙타 열 마리 혹은 스무 마리, 이런 식으로 정했습니다.

지금도 이슬람 국가에서는 마흐르를 지급하지 않으면 결혼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이슬람 율법으로 정했습니다. 법원에 결혼 신고를 할 때 마흐르 액수를 기재하도록 합니다. 그게 있어야 판사가 결혼 증명에 사인을 하고 정식 부부가 됩니다.


ㅁ명예 살인을 하게 만드는 사회적 압박


그런데 우리가 잘 모르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 언론에서는 주로 아버지와 오빠에 의해 명예살인 당하는 딸이 해외 토픽으로 알려지죠. 여자의 처녀성을 잃게 만든 남자는 어떻게 될까요? 그 남자도 반드시 죽입니다. 남자를 죽이는 게 뉴스거리가 안 돼서 잘 다뤄지지 않습니다만, 반드시 죽입니다. 처녀의 집안에서 그 남자를 죽입니다.


...물론 한 세대 정도 지나면 많이 약화되겠죠? 그러나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뿌리깊은 관습들은 어떤 현대적인 법제도로도 쉽게 개선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명예살인도 이슬람과는 전혀 상관 없는 아랍의 부족 문화가 만들어낸 사회적 악순환입니다. 이슬람 율법에는 명예살인이 초창기부터 금지돼 있었습니다.


ㅁ여성의 머리를 가린다는 것


그러나 9·11테러와 이라크 전쟁 이후에 서구에서 공부한 사람일수록 히잡을 다시 쓰는 사람들 숫자가 빠르게 늘었습니다. 무조건 서구를 따라가지 않겠다, 서구와 차별화된 나만의 정체성을 찾겠다는 표현으로 그런 결과가 나타난 겁니다. 전체적으로도 히잡을 쓰는 여성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려스러운 일인지 아닌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그만큼 이슬람 여성들의 민도와 자존심이 커졌다는 것입니다.

70년대와 80년대 기준으로 보면 히잡이 여성을 억압하는 상징적인 기제가 맞습니다. 자기 맘대로 벗지도 못하게 하고, 사회참여도 제한했으니까요. 그러나 21세기 오늘날 시점에서 히잡을 여전히 여성을 억압하는 기제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사우디와 이란에서만 적용될 수 있는 말입니다. 나머지 55개국에 그 주장을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ㅁ이슬람 여성의 미래


물론 종교적 율법을 악용하는 것도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그 사회가 갖고 있는 개방성이나 성숙도, 그리고 문화, 경제, 복지 등의 수준입니다. 그것이 어느 수준에 도달한다면 사회도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항상 강조합니다만,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릇은 어느 문명이나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중에 하나가 이슬람 율법이 그 사회를 통제할 거라는 생각입니다.


ㅁ이슬람 사회의 통과의례


자유연애는 가족과 부족 간 명예살인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굉장히 위험한 행동입니다. 그래서 철저한 중매로 결혼이 이뤄집니다.


...사촌 결혼의 가장 큰 이점은 재산이 분할되지 않는 거겠죠? 거액의 마흐르를 줘도 집안 재산이죠. 재산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는 겁니다. 굉장히 든든한 경제적 사회적 기반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사촌 결혼이 근절되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이 또한 이슬람 전통이라기 보다는, 부족이 전략적으로 선택한 결과라고 봐야겠죠.


ㅁ이슬람 세계의 이혼


네 번째 아내를 얻으려면 첫째, 둘째, 셋째 아내가 동시에 동의해줘야 합니다. 그중에 한 사람이라도 비토하면 그 결혼은 법적으로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부사처는 사실상 굉장히 어렵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탈라크(일방 이혼, 남자가 여자에게 “나는 당신과 살기 싫다”고 통보만 하면 이혼이 성립되는 제도)를 보면 여성에게 반드시 불리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객관적으로 불리합니다만, 여성으로서 그것을 상쇄해나갈 만한 시간과 사회적 전략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막강한 친형제들이 포진하고 있어도 이복동생이 왕이 됩니다. 왕가에서도 적자와 서자 구분이 없는데 일반인들에게는 서열에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ㅁ 이슬람의 장례식


물론 죽은 사람에게서 빚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있을 수 있겠죠? 그러나 죽음으로써 모든 채무 채권관계가 종식됐다고 봅니다. 그 빚이 자녀에게 대물림되지 않게 하는 사회적인 장치가 바로 장례입니다.


ㅁ 이슬람의 여성관


꾸란에서는 남녀의 창조가 평등하다고 말씀드렸죠? 흙으로 아담을 빚어 거기에 영혼을 불어넣어 남자가 되게 했는데 똑같은 방법으로 이브를 빚어서 여자가 탄생됩니다. 창조의 양성평등입니다. 아담이 잠들었을 때 갈비뼈를 빼내서 이브를 만들었다는 성경이야기에 비하면 창조관도 상당히 평등하죠?


ㅁ이슬람 여성의 일상


대구에 있는 한 섬유업체 사장님이 히잡 쓰고 수영하는 사진을 보고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방수처리한 히잡을 팔 수 있다면 큰돈을 벌 수 있겠다 싶었던 거죠. 지금 아랍의 방수 히잡 시장 점유율 1위가 그 회사입니다. 히잡 쓰고 수영하는 모습을 답답하게 보면 8억 명의 시장이 안 보이지만 고정관념을 깨고 편견 없이 바라보면 새로운 시장이 열리기도 하는 겁니다.


...계약서에 혼인 기간과 그에 대한 보상액을 약속하면 계약혼 관계가 성립됩니다. 그런데 계약기간이 하루여도 가능합니다. 그냥 관계를 가지면 매춘이지만 당국에 신고하고 둘이서 합의하면 하루짜리라도 인정해줍니다. 간통이나 매춘은 걸리면 죽음이니 너무 극단적이잖아요. 이렇게 흘러가면 그 사회가 지속 가능성이 있을까요? 그래서 이런 제도를 통해 우회로를 만들어주는 겁니다.


...정식 결혼에선 반드시 두 명의 증인과 판관이 배석해야 하지만 무트아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여자는 45일간 유예 기간을 가지면서 임신 여부를 확인합니다. 만일 임신이 되지 않았다면 다른 남자와 새롭게 계약을 맺을 수 있습니다.


...이슬람 여성이라면 항상 떠올리는 억압과 폭력, 그리고 전근대성의 이미지는 종교적인 문제보다는 경제수준과 문맹률 같은 교육의 정도, 그리고 여성의 인식 변화와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 더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속도는 더딜지라도 이슬람 사회 역시, 가부장 사회에서 양성평등의 사회로 서서히 바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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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학교 3 이슬람은 무엇을 믿나요?

http://ridibooks.com/v2/Detail?id=1959000012


ㅁ꾸란이 말하는 알라와 예수

이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으면 죽인다는데, 어떻게 살아남았지?” 무려 2000년 동안 살아남았잖아요. 이슬람에서는 자기 신앙을 완벽하게 보호해 줍니다. 법으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자기 신앙을 강제로 다른 사람에게 퍼트리는 행위, 즉 선교 행위는 실정법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ㅁ기독교의 예수와 이슬람의 예수

오늘날 기독교가 존재하는 것은 세 가지 개념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대신 사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를 보내 십자가 처형을 받게 합니다. 대속의 개념입니다.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기독교는 비로소 존재하게 됩니다.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원죄와 대속과 부활이라는 이 세 가지 개념에서 단 하나라도 부정되면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예수님은 신성화되었고, 아버지 하나님과 다르면서도 같은 존재가 됐습니다.

...신성은 인정하지 않고 인성만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그냥 평범한 인간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인성을 받아들이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상의 위치에 놓고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인간 세상에 충실히 전파하고 오류를 범하지 않은 최상의 인격체로 믿습니다. 완벽한 인간으로 받아들이고, 존경하는 것이죠. 이것이 기독교와 이슬람의 근본적인 차이입니다. 그래서 이슬람에서는 예수를 예언자와 선지자로 봅니다.

...유대교에서는 예수를 예언자가 아닌 혹세무민하는 위선자로 봤고, 기독교에서는 신과 동일시하면서 예수 자체가 신앙의 대상이 됩니다. 이슬람에서는 신의 위대한 예언자 중 한 명으로 봤습니다. 따라서 무함마드도 한 줌의 신성도 가지지 않은 최상의 인격체에 불과합니다. 예수와 무함마드의 차이는 시대적인 차이입니다. 무함마드는 예수 이후에 신이 보낸 마지막 예언자라고 말합니다.

...구약의 기본에 신약에서 예수의 인성 부분이 상당히 들어가 있고, 또 610년부터 22년간 무함마드가 직접 계시를 받은 내용이 합쳐진 것이 꾸란이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ㅁ꾸란에 등장한 예수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 처형을 받았다는 것은 모든 책에 나오거든요. 성경 이외에 구전이나 유대 전승에서도 십자가 이야기는 많이 나와요. 역사적으로 십자가 처형이 있었다는 것은 모든 학자들이 인정합니다. 이슬람도 역사적으로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만, 그 십자가에 매달렸던 사람은 예수가 아니라 비슷한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ㅁ이슬람과 기독교의 구원관

성직자 계급이 있고 출석을 매기면 그들에게라도 잘 보이기 위한 활동들이 있을 텐데, 내가 예배 보고 안 보고, 좋은 일 하고 안 하고는 하나님이 다 아시고 최후의 심판에서 판단하신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때문에 여기에서 극도의 자율성이 나옵니다. 성직자도 없고 교황청도 없잖아요. 오로지 신과 자기 둘의 계약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슬람은 철저하게 예방 성격의 종교입니다. 다른 서구 사회에 비해 이슬람 사회에서 범죄가 현저히 낮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ㅁ메카 계시와 메디나 계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신뢰의 크기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무함마드가 큽니다. 그러나 예수에 대해서도 상당히 높은 자리에 두고 있다는 걸 알고 계셔야 합니다. 이 점이 기독교에서 이슬람을 바라보는 관점과 이슬람에서 기독교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핵심 요소입니다.

ㅁ순니와 시아

그때 알리를 추종했던 사람들이 지금의 바그다드로 이주해 갑니다. 이게 시아파가 됩니다. 시아파를 직역하면 ‘떨어져 나간 무리’라는 뜻입니다. 메카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우리는 잔존파다, 우리가 주류다, 정통이다 이렇게 말하죠. 이들이 수니파가 됩니다. 따라서 수니와 시아는 교리 논쟁에 따라 나뉜 종파라기보다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정파에 가깝습니다. 지금은 종교적으로도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현재는 종파라 해도 무난하지만, 배경은 정파였습니다.

...미국식 민주주의는 51%가 49%를 무시해도 크게 문제되지 않잖아요. 사담 후세인의 수니파를 완전히 박살 내 제로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60%가 100을 다 차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가 오늘날 IS로 나타난 겁니다. 쫓겨났던 사담 후세인의 군경 세력들이 모두 IS에 붙었습니다. 나머지 시아파 이라크는 기존 군경 하나 없이 모두 새롭게 모았기 때문에 민병대 수준입니다. 여전히 오합지졸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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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학교 2 선지자 무함마드 이야기




ㅁ몇가지 질문들

이슬람이 원래는 안 그랬는데 서구가 호전적인 모습으로 왜곡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한 것 같습니다. 실제로 폐쇄적이고 호전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슬람이 원래 그런 종교가 아니라고 강변해도 설득력이 약합니다. 그보다는 원래 포용과 융합의 종교이던 이슬람이 왜 폐쇄적이고 호전적으로 바뀌었고, 그 내용은 무엇이고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그렇게 됐을까를 설명하는 것이 좀 더 합리적이라고 하겠습니다.

ㅁ탈라스 전투와 중국 문명과의 만남

중국의 종이가 보편화되고 여기에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접목시켜서 성경을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자 신앙혁명이 일어나잖아요. 이를 기반으로 종교개혁이 일어납니다. 신앙, 종교, 독점적 종교 권력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거대한 혁명이 결국 유럽 사회를 뒤집어엎는 계기가 됩니다. 이게 다 종이가 전해지면서 일어난 일들입니다.

ㅁ동서남북으로 뻗어나간 이슬람 제국

탈라스 전쟁은 두 세력, 이슬람과 당나라가 파미르 고원을 조직적으로, 대규모로 넘는 계기가 됩니다. 고선지 장군이 파미르를 넘어서 지금의 파키스탄의 길기트와 펀자브를 공격하죠. 길기트가 파미르 고원 서쪽에 있습니다. 지금 파키스탄의 북쪽이죠.그래서 고선지를 나폴레옹보다 위대하다고 하잖아요. 나폴레옹이 알프스 산맥 넘었다고 대단하다 그러지만 나폴레옹은 18세기 사람이고 알프스는 3,000m밖에 되지 않습니다. 파미르 고원은 7,000m에다가 그보다 천 년 전에 넘었으니까 누가 더 위대한가요?

ㅁ이슬람의 성공 비결은 조세 혁명

이슬람은 예전에 가렴주구하던 세금 정책을 제대로 뜯어 고치고, 조세 시스템을 법제화 시켜 주고, 훨씬 가벼운 세금을 내게 했습니다. 그 세금을 거둬 일정 부분 중앙 정부에 내고, 나머지를 가질 수 있는 제도를 시행한 거죠.

ㅁ화합과 평등을 내세운 내치 시스템

어떤 부족이 우월하고 다른 부족이 열등하다? 못 받아들입니다. 다 자기가 최고입니다. 이런 성향들을 잘 이해해서 처음부터 성직자 제도를 따로 두지 않았습니다. 성직자도 일종의 카스트잖아요. 교회에서 보면 얼마나 철저합니까? 교황과 대주교와 주교와 신부, 수녀, 평신도로 이어지는 수직적인 구조가 있잖아요. 그런데 이슬람은 성직자 제도를 없애 버렸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ㅁ이슬람의 소수민족 포용 정책

라마단 아시죠? 무슬림들이 한 달 동안 단식하는 기간입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갈라타 타워의 유대인들도 다 같이 단식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왜 유대인이 라마단을 하냐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내 질문이 이상하다고 반응했습니다. 그 사람들 말이 “내 고객의 99%가 무슬림들인데, 내 고객이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고, 가진 자나 갖지 못한 자가 고통을 공유하기 위해서 저렇게 절절하게 단식하고 있는데 내가 종교와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 기간 동안에 배불리 먹고 내 고객을 대한다는 것은 장사의 기본 원칙에도 안 맞다.”라는 겁니다. 장사하는 사람이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거였습니다. 그 고객들 때문에 자기가 먹고 살고 존재 가치가 있는데 고객의 고통과 정신에 동참하고 존중하는 것이 장사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덕목이라고 말합니다. 왜 단식 하냐고 물어보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는 겁니다.

ㅁ무함마드의 등장

무함마드가 가진 여러 가지 덕목 중에 아랍 사회에서 가장 칭송 받았던 것이 바로 ‘분쟁 조정자’ 역할이었습니다. 철저한 균형 감각과 객관성을 가지고 정말 예리하고 정확하게 분쟁을 해결했습니다.메디나의 두 부족이 싸우다가 도저히 안 되니까 메카에서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는 무함마드를 초청합니다. 우리끼리 해결이 안 되니 분쟁을 조정해 달라고 부탁하는 거지요. 이런 조건들이 맞아 떨어져서 메카에서 메디나로 옮기게 됩니다.

ㅁ무함마드의 부인들

고별 순례를 마치고 몸이 급속하게 쇠잔해집니다. 그러나 무함마드는 연명을 위한 치료와 투약을 거부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슬람교도들은 산소 호흡기 안 꼽습니다. 예언자의 전통을 따르는 거죠. 죽음이란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인데,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굳이 구차하게 살겠다고 하는 것은 예언자가 따랐던 방식이 아니라는 겁니다. 요즘에 우리 논의하고 좀 닮아 있죠?

...무함마드를 신격화하려는 움직임이 여기서 꺾입니다. 아주 평범한 인간으로 나서 평범한 인간으로 죽고 죽어서 흙이 되어 사라진다고 합니다. 이것이 이슬람 성공의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평범의 리더십입니다.아무런 기적도 행하지 않았고, 출생의 신비도 없었고, 살아가면서 기적 같은 초월적인 역할도 하지 못했고, 죽을 때도 보통사람처럼 절절이 앓다가 죽었고, 가난한 채로 재산을 비웠고 죽고 나서도 보통 사람처럼 흙으로 썩어 없어졌습니다. 재림하지도 않고, 앞으로 나타나지도 않고 그냥 사라져 버립니다. 그 덕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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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학교 1 이슬람의 탄생

http://ridibooks.com/v2/Detail?id=1959000010




이슬람의 등장


이슬람 제국은 인두세 납부 조건으로 기존 종교와 전통은 보호해 줬습니다. 예측 가능한 삶을 경험하게 해 줬습니다. 300년 만에 찾아온 의식주 공급 시스템이 확립됐습니다. 처음으로 토지공개념 제도를 도입합니다. 25%의 토지세를 내는 조건으로 어떤 땅이든지 마음 놓고 경작할 수 있도록 하고,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사유재산을 인정해 줍니다. 유럽은 중세까지도 농노, 노예 제도가 있었잖아요. 이미 이 시대에 사유재산을 인정해 줬다는 것은 표준적 삶 자체가 변화된 것입니다.



IS가 쉽게 궤멸되지 않는 이유


요즘 비대칭 전쟁의 특징이 한 사람의 테러분자를 사살하기 위해 공격하면 평균 여덟 명에서 아홉 명의 아무 상관없는 민간인이 동시에 죽는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IS가 궤멸됐다 하더라도 그보다 10배가 넘는 또 다른 분노 집단이 생깁니다. 그러니까 미국의 전략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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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


잘못은 인정하는 것은 패배가 아니다


나는 옳다, 즉 상대는 틀렸다. 그렇게 생각한 시점에서 논쟁의 초점은 ‘주장의 타당성’에서 ‘인간관계의 문제’로 옮겨가네. 즉 ‘나는 옳다’는 확신이 ‘이 사람은 틀렸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는 ‘그러니까 나는 이겨야 한다’며 승패를 다투게 된다네. 이것은 완벽한 권력투쟁일세.



‘소유의 심리학’에서 ‘사용의 심리학’으로


철학자   한 가지 덧붙이자면, 아들러 심리학은 ‘소유의 심리학’이 아니라 ‘사용의 심리학’일세.

청 년   요컨대 ‘무엇이 주어지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하는 것이로군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으라  


고르디우스의 매듭 : 프리지아에 내란이 끊이지 않았을 때 이륜마차를 몰고 오는 사람이 나라를 구하고 왕이 되리란 신탁이 있었다고 한다. 그 사람이 바로 고르디우스였는데, 당시에는 이륜마차가 흔하지 않았다. 신탁에 의해 왕이 된 고르디우스는 마차를 신전에 바치고 아무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복잡하고 단단하게 묶어놓았다. 이를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이라고 하며, ‘복잡하고 풀기 어려운문제’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아들러 심리학에는 상식에 대한 안티테제(Antithese)2라는 측면이 있네. 원인론과 트라우마를 부정하고 목적론을 추구하는 것, 인간의 고민은 전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는 것, 인정받기를 바라지 않는 것, 나아가 과제의 분리까지 모조리 상식에 대한 안티테제일세.

2) 반정립(反定立). 헤겔은 변증법을 통해 인식이나 사물은 ‘정(定)-반(反)-합(合)’이라는 3단계를 걸쳐 전개된다고 했다. 이 중 ‘반(反)’에 해당하는 것으로 최초의 단계(定)를 부정하는 둘째 단계를 뜻한다. 처음의 주장인 정립에 대립하며, 그 최초의 명제를 부정해 새로운 주장이 세워진다.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


타인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인간에게 극히 자연스러운 욕망이며 충동일세. 근대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칸트는 그러한 욕망을 가리켜 ‘경향성(傾向性)’3이라고 했지. 

3) 습관적인 감성적 욕망을 이르는 말이다. 이성적인 사고법칙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감정의 법칙에 따라 저절로 기울어지는 마음의 성향을 뜻한다. 


진정한 자유란 굴러 내려가는 자신을 아래에서 밀어 올려주는 태도가 아닐까?


행복해지려면 ‘미움받을 용기’도 있어야 하네.



나는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여기에 있어도 좋다’는 소속감을 갖기를 원해. 하지만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소속감이 가만히 있어도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공헌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네.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려면


어떻게 해야 인간은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아들러의 견해는 다음과 같지. “인간은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낄 때에만 용기를 얻는다.”


철학자   인간은 ‘나는 공동체에 유익한 존재다’라고 느끼면 자신의 가치를 실감한다네. 이것이 아들러 심리학의 대답이지.

청 년   나는 공동체에 유익한 존재다?

철학자   공동체, 즉 남에게 영향을 미침으로써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것. 타인으로부터 ‘좋다’는 평가를 받을 필요 없이 자신의 주관에 따라 ‘나는 다른 사람에게 공헌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 그러면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실감하게 된다네. 지금까지 논의했던 ‘공동체 감각’이나 ‘용기 부여’에 관한 말도 전부 이와 연결되네.



자기긍정이 아닌 자기수용을 하라


청 년   커트 보네거트(Kurt Vonnegut)라는 작가가 이와 비슷한 말을 인용했더라고요. “신이여, 바라옵건대 제게 바꾸지 못하는 일을 받아들이는 차분함과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꾸는 용기와 그 차이를 늘 구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라고요. 『제5도살장(Slaughterhouse-five)』이라는 소설이었어요.

철학자   그래, 자네도 알고 있군. 기독교계에서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던 ‘니버의 기도’2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지.

2) 신학자인 라인홀드 니버(Karl Paul Reinhold Niebuhr)가 쓴 기도문으로, 평온을 비는 기도(Serenity Prayer)라고도 한다.


일이 전부라는 인생의 거짓말


나를 ‘행위의 차원’에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존재의 차원’에서 받아들일 것인가. 이는 ‘행복해질 용기’와 관련된 문제일세.



인간은 지금, 이 순간부터 행복해질 수 있다


철학자   자네의 공헌이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사람은 자네가 아니라네. 그건 타인의 과제이지 자네가 개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진짜로 공헌을 했는지 아닌지는 원칙적으로 알 수도 없고. 즉 타인에게 공헌할 때 우리는, 설사 아무도 그것을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주관적인 감각, 곧 ‘공헌감’을 가지면 그걸로 족한 걸세.

청 년   잠깐만요! 그렇다면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행복이란…….

철학자   이미 자네도 눈치 채지 않았나? 바로 “행복이란 공헌감이다.” 이게 행복의 정의라네.



‘특별한 존재’가 되고픈 사람 앞에 놓인 두 갈래 길


‘복수’와 ‘안이한 우월성 추구’는 쉽게 연결된다네. 상대를 난처하게 하면서 동시에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은 심리 상태니까.



평범해질 용기


철학자   자기수용은 그를 위한 중요한 첫걸음일세. 만약 자네가 ‘평범해질 용기’를 낼 수 있다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질 거야.청 년   그, 그렇지만…….

철학자   평범함을 거부하는 것은, 아마도 자네가 ‘평범해지는 것’을 ‘무능해지는 것’과 같다고 착각해서겠지. 평범한 것은 무능한 것이 아니라네. 일부러 자신의 우월성을 과시할 필요가 없는 것뿐이야.



무의미한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라


철학자   인생의 의미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어떤 사람이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아들러는 “일반적으로 인생의 의미란 없다”라고 답했네.

청 년   인생의 의미란 없다고요?

철학자   예를 들어 전화(戰禍, 전쟁으로 입은 재앙과 피해)나 천재지변처럼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연속해서 일어나네. 전와(戰渦, 전쟁으로 야기된 혼란)에 휘말려서 목숨을 잃은 아이들을 앞에 두고 ‘인생의 의미’ 같은 걸 말할 수 있을까? 그런 뜻에서 인생에 일반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네. 하지만 그와 같은 부조리한8 비극을 앞에 두고서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은, 이미 일어난 비극을 긍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지. 어떤 상황이든 우리는 무엇인가 행동을 취해야 하네. 칸트가 말한 경향성을 직시해야만 해. 

8) 철학적인 의미에서 ‘부조리’란 인생에서 그 의의를 발견할 가망이 없음을 뜻한다. 


청 년   그렇죠!

철학자   그런 뜻에서, 가령 엄청난 천재지변을 당했을 때 원인론에 입각해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라고 과거를 돌아보며 따져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나? 우리는 곤경에 처했을 때야말로 앞을 보며 “이제부터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하네.


“인생의 의미는 내가 나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라는 아들러의 말은 결국 이런 뜻이지. 인생에 있어 의미 같은 건 없다, 하지만 내가 그 인생에 의미를 줄 수 있다, 내 인생에 의미를 줄 수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밖에 없다.


철학자   그래, 믿게나. 나는 오랜 세월 아들러의 사상과 함께 지내오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네.

청 년   뭔데요?

철학자   한 사람의 힘은 크다. 아니, ‘내 힘은 헤아릴 수 없이 크다’라는 점일세.

청 년   무슨 뜻이죠?

철학자   ‘내’가 바뀌면 ‘세계’가 바뀐다. 세계란 다른 누군가가 바꿔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의 힘으로만 바뀔 수 있다는 뜻이지. 아들러 심리학을 배우고 나면 내 눈에 보이는 세계는 이제 과거의 세계가 아니라네.



책을 마치고 - 고가 후미타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으로 대표되는 그리스철학을 깔고 설명하는 기시미 선생의 아들러 심리학은, 아들러를 임상심리학의 범주로 묶을 수 없는 사상가이자 철학자였음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은 사회적 맥락 속에서만 개인이 된다”와 같은 말은 마치 헤겔(Friedrich Hegel)의 철학 같았고, 객관적 사실보다 주관적 해석을 중시하는 점은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세계관과 닮았고, 그 외에 후설(Edmund Husserl)과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현상학과 통하는 사상도 담고 있습니다. 더불어 그런 철학적 통찰을 기반으로 하여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이다”, “인간은 지금 이 순간부터 변할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다”, “문제는 능력이 아니라 용기다”라고 갈파하는 아들러 심리학은 그야말로 고민 많은 ‘청년’이었던 제 세계관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단순하면서도 보편적인 아들러의 사상은 자칫 ‘당연한 것’을 주장하고,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이상론을 제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철학의 본래 의미는 ‘지(知)’가 아니라 ‘지를 사랑하는 것’에 있고, 모르는 것을 알려고 하는 것과 지에 이르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결국 지에 도달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문제되지 않습니다.


아들러의 이론 중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있다면, 그건 그의 이론이 상식에 대한 안티테제의 집대성이기 때문입니다. 그걸 이해하려면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설명은 쉽지만 한겨울에 여름의 무더위를 상상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럴 때, 인간관계의 문제를 푸는 열쇠를 받았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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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아하자 2016.01.15 22:3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음... 저는 미움받을 용기 읽고 그리 좋은 인상을 받지는 않았어요... 제 상황이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한 것과는 거리가 좀 있었거든요. 오히려 진짜 도전했고 경제적인 자립이 이루어지지 못할 정도로 실패해서 전보다 훨씬 못한 삶을 사는 상황인데... 이 책에서도 자립을 중요시하는 걸 보면 저의 생각이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알고도 당하는 북한 외교

http://ridibooks.com/v2/Detail?id=1959000077


김정은이 핵무기를 포기하기 어려운 5가지 이유


핵 개발 포기로 북한과 이란이 얻을 수 있는 목표도 완전히 다릅니다. 이란의 최대 관심사는 경제 제재 해제이지만 북한은 김정은 체제 유지가 최대 목표입니다.주요 산유국인 이란은 핵 개발을 강행해 받을 경제적 손해가 막심하지만 북한은 잃을 것이 많지 않습니다.핵무기가 없어도 이란은 국가 존립이 위태롭진 않지만 한국군은 물론 세계 최강인 미군과 직접 대치하고 있는 북한은 핵무기마저 없다면 비교 불가한 군사적 열세에 놓이게 됩니다.


체제 안보가 목표인 북한은 오래 전부터 핵 개발 포기의 전제로 주한 미군 철수와 북미 수교, 한반도 평화 협정 체결, 모든 제재 해제 등을 우선 요구하고 있습니다.여기에 수백 억 달러 수준의 경제적 보상도 바랄 공산이 큽니다. 하지만 미국이 이 요구를 들어줄 것이라고 북한 스스로도 믿지 않고 있습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왜 위력적인가


방송 내용은 2004년 중단하기 전과 별다를 바가 없지만 그 위력은 11년 전에 비해 몇 배나 더 커졌습니다. 청취자인 북한 병사들이 ‘장마당 세대’로 완전히 구성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우리나라 시사 사전에도 올라온 ‘장마당 세대’는 ‘국가 배급망이 붕괴된 이후 태어나 국가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한 세대’입니다. 이 세대의 또 다른 특징은 간부 자녀든, 가난뱅이 자녀든 대북 방송에 솔깃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근래에 북한 사회를 휩쓴 한류의 주 소비자가 바로 간부 자녀들입니다. 한국 제품을 가장 선호하는 부모들 밑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며 한국 말투를 따라 한 세대가 현재 민경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머릿속에 한국은 부유하고 자유로운 곳으로 각인돼 있습니다.반면 1제대 병사들은 부익부빈익빈이 고착화된 사회 구조 속에서 체제에 대한 반감이 가득한 부모 밑에서 성장했고 충성심이 매우 낮습니다. 이들은 어디에 있든 현재 근무 중인 곳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에 귀순한 유일한 북한군 대남 방송 요원 출신인 서른네 살 주승현 박사는 2002년 귀순 전, 서부전선 민경대대 대남제압방송국에서 우리의 상급병사에 해당하는 제압조장을 지냈습니다.

그는 북한 병사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방송보단 전광판이 낫다고 했습니다. 전광판은 멀리서도 글씨가 또렷하게 보이기 때문에 머리에 잘 각인된다는 것이죠. 북한 군인들이 근무 중에 전광판을 쳐다봤다고 처벌받는 경우는 없다고 했습니다.


“제가 겪어보니 MDL 남쪽은 지뢰 구역이 따로 고정돼 있어 북한군이 MDL만 넘으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습니다. 반면 북쪽은 70~500미터의 지뢰밭이 펼쳐져 있고, 수천 볼트 고압 철조망 4개에 일반 철책 하나가 더 있습니다. 사람이 접근하기 어렵죠.”그는 북한군 병사들이 MDL 순찰 과정에 남쪽 지역을 자주 침범하는 것도 일부러 도발하려는 목적보다는 북쪽 지뢰밭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독일의 경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2,600여 명의 동독 경비병들이 서독으로 귀순했습니다. 북한 병사도 1,000명은 넘어와야 통일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제가 보기에는 북한 최전방 군인들은 아직 동요가 없습니다. 최근 10년 동안 귀순한 최전방 병사가 6명밖에 되질 않습니다. 참고로 이 중 한국 군인이 먼저 발견한 경우가 없으니 남쪽 경계가 얼마나 허술한지 알 수 있죠. 대북 방송을 재개하면 좀 더 많이는 오겠죠.”귀순 병사 6명은 남쪽에 잘 정착하지 못했습니다. 일반 탈북자보다 정착이 더 힘들었습니다. 1명은 감옥에 가고, 2명은 해외로 다시 갔고, 1명은 죽었습니다.



당하고도 당한 줄 모르는 남북 회담


2004년 참여정부가 체결한 남북 간 ‘전선지역 선전중단과 선전수단 제거 합의’는 제가 봤던 남북 협상 가운데 단연 최악의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은 북한이 회담 탁자에만 앉으면 집요하게 요구했던 사안으로, 전방 수십만 군민의 동요를 막기 위해 북한은 어떤 대가도 치를 수 있었습니다. 이걸 노무현 정부는 겨우 ‘서해 남북 통신망 연결’ 등과 바꾸었는데, 북한 측에선 이런 큰 선물을 정말 공짜로 얻은 게 맞는가 싶어 어리둥절했을 법합니다.반대로 말하면 당시 정부는 정말 요긴한 것을 얻어낼 수 있었던 엄청난 카드를 버린 어리석은 짓을 한 셈입니다. 그때 합의했던 서해 통신망은 얼마 뒤 무용지물이 됐습니다.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당시 “남북 화해를 위해선 비방 방송은 물론 상호 협박도 중단해야 한다. 북한 장사정포가 전진 배치돼 서울을 겨누는데 어떻게 화해를 말하겠냐. 서로 포병을 뒤로 물리자.”고 제안했다면 북한이 선뜻 받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북 협상은 고도의 전문 영역입니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둘째로 치더라도, 카테고리조차 엉성한 2014년 3월의 드레스덴 선언을 보고 저는 이번 정부에 대한 기대도 상당 부분 접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생각은 북한의 목함지뢰 매설로 시작된 일련의 남북 간 긴장 사태 해소를 위한 ‘고위급 접촉’ 과정과 결과를 지켜보며 확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누누이 말하지만 대한민국의 역대 정부들은 대북 확성기 방송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습니다. 훨씬 더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봤는데, 결국 확성기와 이산가족 상봉 하나를 맞바꿨습니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은데 아무것도 얻지를 못했습니다. 반면 북한은 얻고 싶은 것들을 다 얻어 갔습니다.



결언


북한은 딜레마를 느끼고 있습니다. 북한은 한국과의 경제 협력이 일정 범위 이상으로 확대되면 체제가 무너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기에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 협력에는 소극적일 것입니다. 2013년 상반기의 개성공단 사태가 보여주듯 체제 안보 우려가 생기면 남북 경협도 속도를 조절할 것입니다. 우리는 긴 호흡으로 인내하고 또 인내함으로써 낚시꾼이 물고기를 낚듯 북한이 우리가 던진 미끼를 물게끔 상황을 조성해야 합니다.


북한이 세 차례 핵 실험에 나서고 미사일 발사를 수시로 감행했는데도, 미국과 중국은 물론 한국마저도 평양 정권의 생존에 결정적 타격을 주는 제재는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핵무장을 추구하던 이란에게 그러했듯 미국은 독자적으로 강력한 대북 제재 조치를 취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한다면 북한은 붕괴 위기에 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들이 미국의 제재가 무서워 북한과의 거래를 끊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조처를 고려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서인지, 대북 제재가 전쟁 등 한반도의 불안을 야기할 소지를 우려해서인지, 북한이 계속 말썽거리로 남아 있는 게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서인지는 몰라도 북한이 붕괴할 정도의 제재는 가하지 않고 있습니다.


핵무기를 포함한 북한 문제는 미국과 중국이 타협하지 않는 한 해결되기 어렵습니다. 아직 북한을 전략적 자산으로 보는 중국이 산소 호흡기 노릇을 계속하는 한 북한은 핵무기와 함께 생존을 지속해나갈 것입니다. 북한은 이처럼 자체 생존 동력과 함께 중국의 지원도 있는 터라 당분간 고사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미국 또한 동아시아의 현상 유지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상승 대국’ 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력이 약화하는 ‘기존 대국’ 미국으로서는 ‘고슴도치의 털’과 같은 북핵 문제 해결에 팔을 걷어붙일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미·중 양국이 전략적 이해관계 상충 등으로 북한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지 않으려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스라엘군의 어느 장성은 “외국군이 주둔하는 나라의 국민은 정신이 부패한다.”고 했습니다. 생명과 직결된 안보를 남에게 맡기는 나라는 언젠가 당한다는 것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습니다. 북핵 문제에 가장 ‘목마른’ 나라는 우리입니다.


북한의 권력 집단에게 핵무기는 ‘햇볕’ 혹은 ‘강풍’으로는 벗길 수 없는, 외투가 아닌 심장 그 자체입니다. 핵무기는 심장이기에 햇볕 정책이나 봉쇄 정책, 그 어느 것으로도 쉽게 도려낼 수 없는 것입니다.

Posted by Daes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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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진짜 군사력

http://ridibooks.com/v2/Detail?id=1959000065


<북한의 장사정포>


가장 먼저 드는 의문은 장사정포가 우리 측에 입힐 예상 피해 규모의 편차가 지나치게 크다는 점입니다.이러한 차이는 군 당국이 제시한 자료와 미국 전문가들이 분석한 데이터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북한 무기 체계 개발에 오랜 기간 관여했던 탈북자들의 시각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한마디로 ‘장사정포가 실제로 그만큼 두려운 위협이냐’에 대해 재검토할 필요성이 생겨난 셈이죠.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앞두고 위협 평가 작업을 진행할 때마다 ‘장사정포를 포함한 북측 재래식 위협은 한국군이 주도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미군 측 견해와 ‘그렇지 않다’는 한국 측 견해가 팽팽히 맞서곤 했다는 게 군 정보 당국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설명입니다.


장사정포에 대한 군사적 대비 태세를 완비하는 일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과업입니다.그러나 그로 인해 발생할 문제 역시 명확합니다. 장사정포에 대한 공포가 이렇듯 극단적인 형태로 드리워져 있는 동안,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북한의 군사 전략과 전력 구조에 대한 대응이 더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 군사 위협의 무게 중심은 이미 대량 살상 무기로 옮겨가고 있음에도 한국군은 여전히 장사정포를 비롯한 재래식 위협의 그림자에 얽매여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Posted by Daes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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