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the inimitable Studs Terkel describes working, "It's about a search, too, for daily meaning as well as daily bread, for recognition as well as cash."


훌륭한 작가 스터즈 터켈이 말했듯이, 우리가 일을 한다는 건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자 하루하루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며, 돈 벌려고 하는 것이자 인정받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원본 출처 : http://dayjobmag.com/about


재인용 : 

"자신의 직업을 만족해하는 다양한 보통 사람들을 인터뷰한 잡지."

https://twitter.com/ear_closely/status/490348952059772929

Posted by Daesung Jung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서비스

- 사람은 자기만의 생활 리듬과 공간을 유지하려 하는데, 서비스업 노동자는 그 리듬과 공간을 침해받는다. 서비스업은 추종에 굶주린 '고객님'들에게 안식처로서 값싼 위안을 주는 것 같다. 소비자로서 일시적인 권위를 확보하면 소비하는 동안 독자적인 리듬과 공간을 유지할 수 있으니.

- 서비스업 종사자는 약간 얕보이는 제복을 입는 게 좋은 거 같다. 하지만 안내원으로서는 조금 위압감을 주는 게 메시지의 효과적 전달을 돕는 거 같다. 안내원은 약간의 긴장을 유발해야 신뢰감을 주는 듯. 서비스업이더라도 기싸움은 필요하다!

- 서비스업 노동자는 상대방을 규정하려는 마음과 이해하려는 마음, 양가의 것을 동시에 지녀야 하는 것 같다. 고객의 성향을 판단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을 유지하려는 신실한 자세에서 좋은 서비스가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2>
추종에 굶주린 이들에게는 '넌 괜찮아'류의 위안이 유효할 것이다.
이에 비해, 추종에 목매도록 만드는 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 그리고 다른 세계를 꿈꿔 보자는 제안과 비교하면 무엇이 그 사람을 더 힘이 나게 할까?


3>
인간적인 시선이라는 건,
자신의 아이나 연인에게 품는 마음이 배타적이지 않고 모든 이에게 향하는 것
(내 곁을 쌩쌩 달리는 차들을 보며 든 생각)


4>
반복은 사람을 멍하게 만들고, 이것은 노동자와 경영자 모두가 극복해야 할 과제


5>
구조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버거울 만큼 무척 큰 건물 안에서는 길을 곧잘 헤매게 된다.
주차장이든 사무실이든 간에 쉽게 찾을 수가 없는 것. 하지만 명쾌한 표지판이 설치된다다면 안내원과의 짧은 대화마저 꺼리게 되고, 주차장 만차 표시가 자동화된다면 주차유도원은 배를 곯지요, 아니 밥그릇을 뺏긴다.

  → 절약(효율성 극대화)은 결국 누군가의 일자리를 없애는 것 아닐까? 
      → 착한 소비는 가능할까?
  → 직관 이상의 것은 인간에게 유익한가?
  → 편리할수록 삶과 괴리되는 것 아닐까

/ 어쨌든 주차한 곳을 잘 기억하도록 돕는 디자인은 중요하다.


6>

어떤 일을 하든 먹고 살만 해야 하고 그러려면 월급도 올라야 겠지만, 평균적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추구를 모두가 반성해야 한다. (반성합니다)


7>

공장이나 지하철 등의 교대 근무 공간에서 화장실에 가는 것은 좀처럼 어려운 일이다.
쌀 권리가 곧 살 권리 아닌가!


8>
CCTV가 보지 못한 건 진실이 아니다. 감시사회... 권력만이 진실을 소유한다.
(운전 미숙으로 접촉 사고 내놓고는 주차유도원이 수신호 잘못했다며 변상 요구하던 새끼를 보고 든 생각)


9>
최저임금을 '인간적'인 수준으로 올리지 않는다면 팁 주는 문화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하지만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다) 어쨌든 최저임금은 지금보다 많아야 한다.


▶ 기타 등등

- 차 대면 안되는 곳에 주차하는 걸 봐줬더니 오만원으로 보이는 황금색 무언가를 꺼내던 아저씨.
"
이거, 홍삼인데 차요. 이따 드세요" (팁 주는 줄 알았어)

- 쓰레기차 아저씨는 하루종일 주차장 이곳저곳을 오간다. 시지프스 같았다.

-  운전 습관 잘못 잡힌 놈들이 정말 많구나
동네 골목에서도 교차로에선 깜빡이 켜는 게 안전할 텐데 / 앞에 보고 운전해라 / 급발진 하지마라, 엑셀 콱콱 밟지 마라 / 교차로에선 제발 좀 속도 줄여라, 조마조마하다

- 똑같은 표현을 서로 다르게 알아듣는 사람들, 어떻게 말해야 모두에게 의미가 통할까 하는 잠깐의 고민

Posted by Daesung Jung

댓글을 달아 주세요


4천원인생열심히일해도가난한우리시대의노동일기
카테고리 경제/경영 > 각국경제
지은이 안수찬 (한겨레출판사, 2010년)
상세보기



  두달 남짓의 주차장 알바가 끝났다. 시속 60키로로 스쳐지나는 차들. 공간도 넓은데 내 곁을 바짝 붙어서 지나는 사람들. 멍하니 있다 보면 깜짝깜짝 놀란다. 나는 마네킹이다. 길을 알려주는 내 말에 답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답할 필요가 없지.
  사람은 도구가 아닌 목적이어야 한다는 말은 초라한 선언이다. 사람은 도구니까 다들 하는 말이다, 어차피. 사실 나는 스스로 쓸모 있을 때 자존감이 채워졌다. 내 뜻대로 차들이 움직여줘 원활하게 소통될 때, 안내해준 곳으로 고객님이 걸어갈 때 뿌듯하더라. 내 말은 무시하고 제 갈길 가는 게 보통이니까. 나는 정말 마네킹이었다.
  쉬는 시간은 2시반 전에는 두시간 근무에 한시간씩, 그 뒤로는 80분 근무에 40분씩이다. 휴게실이 꽤 멀리 있으니 오가는 10분을 제하면 휴식도 그리 충분치 않다. 휴게실 가는 와중에 길 묻는 고객님을 만나는 게 참 싫더라. 밥 먹고 나서 햇볕 쬐려고 쉬는 시간 쪼개서 건물 밖에 나가 있는데, 보라색 촌스런 유니폼 보고는 개나소나 길을 묻는다. 짜증나서는 잘 몰라요, 일부러 더 퉁명스럽게 답했다. 빌어먹을 쉬는 시간, 정말 빌어먹는 시간이다. 시간을 빌려 쓴다.
  '4천원 인생'을 휴게실에서 내놓고 읽기 부끄러웠다.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 일기' 두달 넘게 일하고 모은 돈은 남은 3월의 생활비 뿐이다. 뭐, 물론 빚을 청산하는 데 꽤 많이 썼다. 그래도 모든 관절이 쑤시고 마음이 황량해진 대가 치고는 참 적다. 그래, 열심히 일해도 가난하다. 여행가고 싶은데, 주변에서도 여행 한번 다녀오라는데 엄두가 안난다. 어디로, 도대체 어디로 가란 말이냐.
  우연히 남의 월급 명세서를 본 적이 있다. 총급여 170만 원, 적당하던데? 하지만 몇 년 근무한 사람의 월급이라고 들었다. 대부분 120만원 쯤을 받는단다. 다음주에 언제 쉴지 알 수 없는 근무 배정, 게다가 며칠씩은 밤 11시나 되어야 끝나는 야간근무. 하지만 나는 일하는 요일과 시간이 고정적이었다. 대신에 일당 5만원밖에 안받고, “절대 4대보험은 안빠집니다.” 이른바 ‘단기근무자'의 빛과 그늘. 
  그러고 보니, 나는 말 그대로 불안정노동자였다. 나 이외의 월급쟁이들, ‘장기근무자'가 늘어나면 단기근무자, 즉 일용직은 일을 그만둬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미리 말씀드리는 겁니다.” 다행히도 나는 내 뜻대로 일을 그만뒀다. 
  마음 속에서도 그 일은 단기였다. 오래 할 일은 못됐다. 관절이 쑤신 것도 그렇지만, 자잘한 스트레스가 사람을 좀스럽게 만들었다. 그래도 웃으려 애썼다. 하지만 마네킹이 웃을 수 있나, 굳은 표정 뿐이지.
  왜 사는가 하는 질문에 나는 답을 이미 찾아 놓았다. 나아질 거란 희망이 있으니까, 근데 나아지겠나. 언젠가는 임금이 제 날짜에 꼬박꼬박 나오고 4대보험도 적용되고, 구질구질한 유니폼 입은 애들 비웃으며 지나가는 소비자가 될 수 있겠지. 
  주차장 알바가 끝나고 옷을 갈아입고 퇴근하려는 애매한 타이밍에 똥이 마리던 날, 휴게실 앞 한적한 화장실로 갈까, 아니면 붐비는 ㅇㅇㅇ몰 화장실로 갈까 갈등했다. ㅇㅇㅇ몰을 택했다. 지하 2층의 주차장에서 한 층만 올라가면 소비의 공간이다. 소비자이고 싶었다. 소비자의 똥.
  소비당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벗어나고픈 게 모든 이의 소망이겠지. 공간에서 벗어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니 시간만 보낼 뿐이다. 그러므로 공간을 바꾸는 게 변화의 시작이다. 공간을 바꿔 시간의 질을 높이는 게 참된 일이다. 눈앞의 시간을 소모하고자 애쓰는 비루한 마음을 위로하는 방법은 다 함께 바꾸는 것이다. 인생을 소비하는 빌어먹을 라이프스타일의 잔물결, 그 한가닥씩 꼬집어 비틀어보자. 
  나아지리란 희망이 현재에 대한 절망에서 새어나오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빛나는 희망이었음 싶다. 즐겁게 살고 싶다. 나, 사람답게 살고 싶다. 
 
 

책읽기 모임 후 생각 정리>>


1>

관택이 형은 부활의 김태원이 무릎팍도사에 나와서 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뭔가를 간직한 것 같은 사람이 멋진 사람이라는 얘기. (검색 결과, 비밀을 많이 간직하란 얘기였나 보다.) 예술가는 그 비밀을 간직한 멋진 사람 아닐까. 예술가는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우울한 사람이다. 그 우울감은 감상자가 느끼는 생동감의 뿌리다. 사회적으로는 '엄마'다.


2>

하일 군의 말을 듣고 정리한 것. 

 

- 소비자의 흐릿한 자기인식에 대비되는 생산자의 명징한 자기 인식

소비 행위는 그 사람의 계급을 감출 수 있지만 생산은 계급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물건을 살 때가 아니라 일을 할 때,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분명히 깨닫는다.


- 대학은 효과를 상실한 계급 상승 도구, 구직난에 허덕이는 대졸자는 힘없는 무기를 든 사람.

자신의 무기가 별 효력이 없음을 깨닫지 못하고 노력이 부족했다고 인식한다. 88만원 세대는 그렇게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환원해서 자기 탓만 한다.


3> 

준상의 글 중에서 인상깊은 부분.


삶에서 감정적인 일렁임이 사라졌다. 매사에 드는 의무감을 제외하고는 어떤 의미를 찾기가 힘들고 상상력, 창의력도 의욕도 바닥난 상태다. 그러다 보니 한 발 앞을 보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만 급습해오니 허둥지둥 할 뿐 이뤄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공정한 사회는 무엇인가? 노력한 만큼 잘 살고 계층이동이 유연하고 정당하게 돈을 버는 사회를 말하는 것인가... 공정한 사회의 조건은 정말로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가 가능한 사회여야 되지 않을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떠날 수 있는 사람만 떠나는 (것이 지금의) 사회다.


이 사회가 원하는 삶의 틀에 동질화 되려고 노력하고 맞추어 사는 것은 어쩌면 조금 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원하는 삶을 찾아 가는 것은 끊임없이 노력하고 성찰해야 하며 흔들려야 한다. 그 속엔 불편함 보다는 일종의 만족감과 틀에 벗어 났다는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나’라는 외로운 배가 보이지 않는 저 너머의 땅을 향해 돌진하기 보다는 우리라는 한 배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나누는 과정의 끝에 도착할 수 있는 그 땅이 존재 할 것이라 믿는다.


4>

관택이 형의 글 중에서 인상깊은 부분.


역시 머릿수가 중요하다.(서로 끈끈하게 대할 수 있는 공동 운명체 같은 이들이어야 그나마 숫자라도 중요해지지) 섬 같이 따로 떨어져서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그 혹독한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을 견딘다는 것은(262p)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은 한 치 앞의 '미래' 뿐이다. 아무리 달려 나가도 이 한치 앞의 미래는 항상 그 자리에 있으므로 우리 삶의 균형을 잡아주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에겐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시간이 그 날을 버티게 하는 실낱의 희망이며, 쥐꼬리만한 월급봉투는 한 달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오직 소비할 때만이 인간으로 취급받는(123p) 노동자들에게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단 한 순간은 '소비'의 순간 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인간으로서 온당하게 받아주는 사회의 온기를 느끼기 위해, 그 '소비'의 순간을 위해 현실을 통째로 저당 잡히는 것이 오늘의 삶이다.


세상 전체가 미래만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오히려, 비정규직이면서도 하루하루를 근근히 버티는 사람들은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는 말이 오히려 이들에겐 고통이 될 테니까 말이다.

Posted by Daesung Jung

댓글을 달아 주세요

'4천원 인생' - 메모

공부 2012.03.04 17:13 |

4천원인생열심히일해도가난한우리시대의노동일기
카테고리 경제/경영 > 각국경제
지은이 안수찬 (한겨레출판사, 2010년)
상세보기



   # 그림자 인생

그들은 색색깔 유니폼을 입고 있다. 여기에 있으니 금세 알아보라는 표시다. 지나가는 손님 귀에 대고 이리 오시라고 외친다. 그래봐야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마트 노동자는 투명인간이다. 또는 그림자와 같다. 손님들은 무표정하고 매정하게 지나간다. 삶의 피로가 어떤 것인지 모르는 어린아이들만 시선을 허락한다. 그들은 모자 쓰고 앞치마 두른 나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5m 매대 앞을 오가는 진자 운동을 하루 종일 하다가, 나는 문득 사람의 눈길이 그리워졌다.
  - 97쪽

마트에 오는 손님들은 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얼굴을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 그것은 작은 충격이었다... 손님들은 마치 그 자리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나의 존재가 완전히 무시당할 수 있다는 것으을 처음으로 알았다. 마트 노동은 '투명 노동'이었다.
  - 144쪽

침묵의 노동은 일터의 행복,연대감, 일을 통한 사회화를 일거에 잘라낸다. 몇 가지 이유가 보였다. 뜨내기 날품이 많은 탓이다. 처음 온 파견 노동자의 이름을 물어봤댔자, 그가 내일도 올지 알 수 없다. 게다가 가장 값싼 파견 노동자들은 안면을 익혔거나 친해진 동료가 떠나는 걸 두려워한다. 더 좋은 일자리를 모른채 자기만 정체돼 있다는 불안과 열패감이 있다. 실제 신입 파견 노동자가 많은 날은 공장 전체의 활력을 발견하게 된다. '동질감' 덕분이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20대 여성은 며칠 만에 공장을 그만둘 즈음 이런 말을 했다. "왜 여기 사람들은 웃지도 않고, 말도 안 걸어줘요?"
  - 226쪽

8월 19일 30대인 듯한 남성은 A타임(오전 8시 30분~10시 30분) 2시간만 일한 뒤 말없이 사라졌다. 전날 공장에 들어왔다. 1번 공정을 맡다 '용역의 무덤' 10번 공정으로 와 그는 허덕댔다. 반장의 지적을 몇 차례 받았다. "왜 이렇게 느려?" "그것도 못해요?"
  2시간 만에 내 옆 사람이 '증발'한 것에 진심으로 뜨악했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닳고 닳은 '날품'처럼 말 한마디 먼저 붙이지 않은 내 자신이 경멸스러웠다. 그는 이틀 동안 철저히 침묵한 채 일하다 공장에서 사라졌다. 떠나니 말을 건다. "그냥 가면 어떡하느냐"는 험담들. '힘들죠?'라고 한마디만 건넸더라도, 하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 240~241쪽

공장 라인 노동의 진정한 악질은 같은 노동자를 증오하게 하는 데 있다. 호흡이 맞지 않는 옆 노동자가 밉다. 내 공간이 좁아지며 불편해진다. 작업을 방해받는다. 나보다 쉬운 공정만 처리하며 같은 시급을 받는 또 다른 노동자들을 인사 한 번 주고받은 기억 없이 미워한다. 시간이 갈수록 더하다.
  - 230쪽

 

   # 빈곤의 굴레, 우리는 하나

불안정 빈곤 노동의 고리는 가족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다... 빈곤을 쳇바퀴 도는 '뫼비우스의 띠'는 영철의 가족에서 그치지 않는다. 오직 한 달 동안 A마트에서 지냈을 뿐인데도 나는 그런 이야기를 끝없이 들었다. 끝없이 여기에 적을 수 있다. 뫼비우스의 띠 위에 서면 오직 한 가지 법칙만 통한다. 미래는 과거에 무력화된다.
  - 122쪽

사람이 사람에게 노동력을 바치는 일은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요. 언제쯤 돼야 이 빈곤 노동이 끝날까요. 절망하긴 쉽습니다. 희망을 가지려면 용기가 필요하죠. 그래도 우리 모두 같이 고민한다면 희망이 절망보다 빠를 겁니다. 
  - 80쪽 (임지선 기자의 편지)

시식맨이 돌아가면 마트 점원들은 험담을 시작한다. 변화 없는 풍경에 둘러싸인 마트 노동자들에게 시식맨은 뉴스다. 연재소설이자 연속극이며 스포츠다. "저 사람, 또 왔어." "손가락으로 집어먹는 거 봤냐?" "매상은 안 오르고 이쑤시개만 동나는구나." 시식맨은 수다한 사연을 지니고 근방에 사는 서민들이다. 제 처지와 별반 다를 게 없는데도, 마트 노동자는 시식맨을 미워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마트 노동자의 편이 됐다. 건너편 매대에서 돼지고기를 굽는데, 시식하려던 아주머니의 옷에 기름이 튀었다. 이곳은 자동차 주유소가 아니다. 튀어봤자 이쑤시개로 찍어낼 만큼의 한 점 기름이었다. 손님은 세탁비를 요구했다. 점원은 자기 돈 1만 원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그의 월급은 120만 원이었다... "기름 안 없어지면 다시 올 거야." 손님은 시식용 돼지고기를 질겅질겅 씹으며 말했다. 나는 '세탁비 아줌마'를 마음 깊이 증오했다. 편을 나누자면, 물건 사는 서민이 아니라 물건 파는 서민의 편에 섰다. 그러나 도대체 이 세상에 좋은 편이 있기는 한가.
  - 93쪽

이주 노동자 이야기를 기사로 써서 악플이 달리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슬픈 사실은, 없는 자들끼리 싸운다는 것이다.
  - 295쪽 (임인택 기자의 말) 



   # 서비스-여성 노동자의 애환

돌봄노동과 감정노동은 여성 노동자에게 '당연한 듯' 요구된다. 손님은 음식점에 와서 음식을 구매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식당 아줌마가 돌봐주길 바란다. 자신을 보며 미소짓고 정답게 굴길 원한다. 정당하게 돈을 내고 받는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서비스(service)'의 어원은 '노예'를 의미하는 라틴어 'Servus'다. '돈'을 매개로 '노예'를 부리니 미안함이 덜하다. 식당 아줌마들이 얼굴을 찌푸리거나 큰소리라도 내는 날에는 "이 식당은 서비스가 왜 이 모양이냐"는 불만이 날아든다.
  식당 아줌마들은 손님, 사장, 동료 순으로 '날 힘들게 하는 사람'을 꼽았다. 2006년 한국여성연구소가 서울시내 식당 아줌마 40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다. 손님과의 관계에서 식당 아줌마의 25.7%가 '반말·욕설 등 비인격적인 대우가 힘들다'고 답했다. 홀 근무자의 경우 30.9%다. '불쾌한 성적 농담'은 전체의 14.9%, 홀 근무자의 19.1%가 경험했다. 12.6%가 '술 좀 따라보라'는 말을 들었다. 홀 근무자의 11.7%가 '불쾌한 신체접촉'을 당했다고 고백했다.
  - 65쪽 


   # 이주노동자의 삶

일찌감치 인력 수입국이 된 선진국들은 일정 기간 이상 제 나라에 머문 미신고 외국인들을 사면해 영주권을 주기도 한다. 오스트레일리아는 1973년부터 1980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미신고 외국인들에게 사면을 실시했고, 독일도 5년 이상 체류한 미신고 외국인 가운데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판단되면 한정적 영주권을 줬다. 지금까지 20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인력 수입국 대열에 들어선 한국은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사면을 한 적이 없다. 대신 신고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단속을 나온다. 가차 없다. 모진 나라다.
  더구나 단속 자체가 선택적이라는 점에서는 반인간적인 악취까지 난다. 출입국관리사무소는 미등록 외국인 수가 조금 는다 싶으면 단속을 하고, 많이 줄었다 싶으면 그냥 놔둔다. '수요 관리'를 하는 셈이다. 경찰과 법무부가 마음 먹으면 수색영자오가 긴급보호서를 발급받아 마석가구공단은 물론 안산과 포천의 미등록 외국인 대부분을 잡아가는 일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 공단 사람들이 반발하고 관련 제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 159~160쪽

...비슷한 경력의 한국인은 그들보다 최소한 20만~100만 원 이상 본봉이 많다. 야근수당 단가도 본봉에 비례하므로 총액으로 따지면 차이는 훨씬 벌어진다. 같은 일을 14년째 하고 있는 마리아 누나의 본봉이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신참인 나와 똑같은 130만 원이라는 사실은 이해하기 힘들다. 공장 일을 시작한 지 1년 된 민성이도 본봉이 140만 원이다...
그 차이만큼은 이들이 합법적 비자를 갖고 있지 않는 데 따라 치러야 하는 기회 비용이라고 봐야 할까?
  - 164쪽

유엔의 '이주 노동자 권리 협약'은 모든 이주 노동자에게 가족결합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물론 현실에선 쉽잖다.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온 노동자가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는 합법적인 수단은 없다. 한국 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프랑스 등 거의 모든 선진국, 이른바 인력 수입국들은 이 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오로지 국가와 법만이 노동자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모르거나 눈길을 외면하고 있다.
  - 182쪽

이주 노동 문제는 모든 일터와 맞닿아 있었다. 내 경우에도 식당 취업을 위해 전화를 걸면 제일 먼저 중국 사람이냐고 물어보더라. 이주 노동은 어느 한 곳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이주 노동자와 한국인 노동자를 구분해보기 전에 인간이 이런 식의 노동을 하면서 저임금에 허덕이며 살아도 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 295쪽 (임지선 기자의 말)


 
Posted by Daesung Jung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