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학교 5 찬란한 이슬람 문명



인류학에 ‘박해를 당할수록 정체성은 강해진다’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다문화 정책에서 소수민족이나 이주민을 차별하면 점점 그들의 정체성이 돌덩이처럼 굳어집니다. 반대로 열어 주면 흐물흐물해져서 주류 사회에 스며들어 녹아 버립니다. 만고불변의 법칙입니다. 

- 이슬람이 이룩한 문명


문제는 메카라는 곳 자체가 원래부터 콘텐츠가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슬람 문화는 기본적으로 텅 비어 있는 용광로 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문화적인 하부 구조를 빠른 시간 안에 만들려면 정복 전쟁을 하면서 정복한 지역의 문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태생적인 과제였습니다. 여기서 포용과 융합의 정신이 나옵니다. 이게 이슬람 문화의 특징입니다.


역설적이게도 문화는 잡탕일수록 우수합니다. 단일 문화는 오래 못 갑니다. 고이고 썩어서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페르시아에서는 주로 제국 운영을 위한 행정 체계와 제도를 도입했고요, 유럽 쪽에서는 지중해의 광범위한 철학과 사상이 유입됩니다. 이것이 이슬람의 두 버팀목입니다.

- 페르시아와 비잔틴을 단번에 포용한 이슬람


그리스 로마의 지중해 문화에, 메소포타미아에서 축적된 오리엔트 문화, 인도의 대수학과 수학적 지식에, 중국의 제지술과 비단 직조술, 화약과 나침반 그리고 형이상학적 지식까지를 직접 접촉해서 받아들이잖아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인류 문명 5천 년 역사에 이런 때가 없었습니다.

이 같은 배경을 바탕으로 10~13세기에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인류 최초의 르네상스가 일어납니다. 그때까지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인류 최고 수준의 르네상스였습니다. 유럽보다 정확하게 500년 전에 일어났습니다. 


서구에서는 잊혔던 그리스 학자들의 업적이 왜 이슬람에서 받아들여지고 녹아들었을까요? 당시 서구는 적어도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을 신의 오묘한 섭리에 도전하는 오만불손하고 위험한 요소로 봤습니다.

- 이슬람 문명의 지식 엔진 바이툴 히크마와 이슬람 르네상스


이미 천년 동안 축적된 문화적 자양분과 지식의 하부 구조가 이슬람 사회에 존재해 왔고, 그것이 톨레도라는 매개를 거쳐 유럽에 유입된 겁니다. 그래서 톨레도가 인류 지성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여러분 스페인에 가시면 톨레도에 일부러라도 가 보십시오. 마드리드에서 서남쪽으로 약 한 시간 거리밖에 안 됩니다.


티무르에서 일어난 르네상스가 원나라와 명나라를 거쳐 조선에 닿아 세종의 르네상스로 이어집니다.

- 바그다드발 르네상스가 유럽에 전파된 경로


어떤 정치 체제는 왕조(Dynasty)고, 어떤 정치 체제는 왕국(Kingdom)이고, 또 어떤 정치 체제는 제국(Empire)이라고 구분하는지 아시나요? 정복한 민족 수, 지배하고 있는 영토의 크기를 보고 분류하는 경우도 있지만, 더 정확하게는 문명을 받아들이는 크기에 따라 이 세 가지를 분류합니다.

- 왕조, 왕국, 제국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시 오리엔트 남쪽에 있는 철학의 도시 밀레투스로 유학을 갑니다. 축적된 오리엔트 철학을 배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오리엔트 철학을 바탕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아테네에 돌아가 독자적인 철학을 세웁니다.

- 아랍에서 꽃핀 학문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리스 문화는 다분히 사변적입니다. 과학도 그랬습니다. 이론에 치우친 그리스 과학에 비해 이슬람 과학은 훨씬 실용적이었습니다. 끊임없는 실험과 관찰을 통해 정교하게 다듬어 갔습니다.


페르시아와 그리스 로마, 인도, 중국 이야기가 다 들어와 있습니다. 조금 전에 배웠던 문화의 방정식이 그대로 문학적 용광로에 적용된 것이 《아라비안나이트》입니다. 이야기의 중심 배경은 바그다드입니다만, 이야기 소스는 그리스 페르시아 중국 인도에서 가져온 거죠. 감정 이입 기법과 형식적인 면에서는 그리스 고전문학의 전형을 받아들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복합 문학 장르입니다.

- 받아들이되 자기 것으로 만들다


아랍은 본래 밤 문화입니다. 하루의 시작이 일몰이고 하루의 끝이 일출입니다. 우리와는 우주관이 다릅니다. 낮에 태양은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뜨겁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낮에는 조용히 쉬면서 낮잠을 잡니다. 낮잠 자는 문화가 뭐죠? 시에스타(siesta)입니다. 이슬람이 스페인을 800년간, 남프랑스와 이탈리아 남부를 200년간 지배하는 동안 당시 우월한 문화였던 낮잠 문화를 유럽권이 받아들인 겁니다.


...문제는 영국이었습니다.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먼저 커피를 마신 나라이지만, 지금 영국은 커피보다는 차 문화가 발달해 있습니다. 물론 1662년 찰스 2세에게 시집 온 포르투갈의 캐서린 공주가 귀한 차를 가져오면서 궁정에서 차 문화가 발달한 탓도 있지만, 식민지 성격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영국이 식민 지배한 나라가 인도, 스리랑카, 말레이시아입니다. 비가 많은 지역이고 생태조건도 안 맞아서 아무리 해도 커피 플랜테이션이 잘 안 됩니다. 결국 실패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중국의 녹차를 가져다가 인도남부와 스리랑카에서 차 플랜테이션을 했습니다.

  그런데 커피에 중독된 사람들 입장에서는 중국식 녹차가 심심할 수밖에 없겠죠? 약간의 카페인이 있지만 전혀 취향에 안 맞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개발한 방법이 차를 진하게 우려내서 카페인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쓰니까 거기에 설탕과 우유를 많이 넣어서 밀크티를 만들어 먹게 된 거죠. 커피 플랜테이션에 실패한 처절한 슬픔을 밀크티로 달랬다고나 할까요.

  예멘의 모카 아라비카 원두를 가져다가 각 나라에 이식을 했는데, 그게 원래 맛이 날까요? 배추도 한 2년 심으면 맛이 바뀝니다. 제가 유학할 때 이스탄불에 한국 교민이 안 계셔서 종묘상에서 배추 씨앗을 사서 보내 달라고 집에다 부탁한 적이 있었습니다. 첫해, 두 번째 해는 그걸로 잘 먹었습니다. 그런데 3년째가 되니까 키가 엄청나게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속도 단단해져서 도저히 씹을 수가 없습니다. 3년쯤 되니까 현지 토양과 환경에 맞게 종이 바뀌는 거죠. 커피도 마찬가지였겠죠? 끊임없이 품종 개량을 해도 원래 아라비카 원두 맛이 안 나니까 로스팅 기술 쪽으로 방향을 선회합니다. 이름도 우아하게 붙이잖아요. 화이트 킬리만자로, 다크 나이트, 메디터레이니안 블루, 사프란볼루 튀르크 카웨등등.

- 이슬람과 커피 문화


이런 지적 바탕 위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라고 하는 탁월한 신학자가 등장합니다. 그는 스승인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나 아베로스의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을 완전히 섭렵했습니다. 이때 쌓은 지식으로 기독교의 우월성을 증명하고 이슬람의 모순과 열등성을 강조하는 데 자기 인생을 바쳤던 사람입니다. 이후 유럽 신학은 토마스 아퀴나스를 태두로 해서 형성되었고, 이때부터 이슬람에 대해 가장 적대적인 관점이 유럽 신학의 정통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천명한 가장 대표적인 명제가 ‘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이었죠? 아퀴나스는 이슬람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본래 아는 사람이 하면 더 무섭잖아요. 당시 최고의 이슬람 전문가였습니다. 그는 이슬람의 네 가지 해악을 주창했습니다. 첫째는 진리를 왜곡했고, 둘째는 폭력과 전쟁의 종교이며, 셋째는 무분별한 성적 접촉을 허용했고, 넷째는 무함마드는 거짓 예언자라는 것입니다.

  지금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이슬람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과 정확하게 일치하지요? 지성사를 공부하다 보니까 토마스 아퀴나스에서 딱 걸리더라고요. 이슬람에 대한 그의 견해는 이후 유럽 지성 사회에 그대로 전달되어서 서구 사회가 이슬람을 오해하고 적대감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모든 신학은 선악 구도입니다. 내 쪽으로 들어와서 녹든지 아니면 사라져야 한다는 게 신학의 기본적인 입장입니다. 물론 해방 신학이나 다종교 신학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서는 소수잖아요. 하물며 중세 시대에는 어떻겠습니까? 천 년간 이슬람에게 눌려 왔다는 인식이 깔려 있을 때 새로운 신학으로 자신감을 얻고 자기 신앙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방법의 하나로 이슬람의 모순을 끄집어낸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시대적 상황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일종의 선명성 경쟁이 필요했던 때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는 기독교가 약자였습니다. 약자는 상대방에게 관용을 베풀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 이슬람이 포용과 융합과 똘레랑스를 실천할 수 있었을까요? 힘의 우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약자가 강자를 어떻게 포용할 수 있겠습니까? 프랑스가 한때 똘레랑스로 소수 민족을 품었습니다만, 그들의 숫자가 10%를 넘어서니 가장 먼저 똘레랑스의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무색하게 토마스 아퀴나스 이후 이슬람에 또 한 번 철퇴를 가한 사람이 바로 단테입니다. 단테의 ‘신곡’을 보시면 <천국>과 <지옥> 편에서 무함마드와 무슬림을 악마의 레벨로 다룹니다. 유럽에서 ‘신곡’을 읽지 않고 교양인이라 할 수 있나요? 교양 필수 중에 필수잖아요. 여기서 이슬람에 대한 인식의 철퇴를 가합니다. 그 이후에는 헤겔이 또 이슬람에 철퇴를 가합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오는 겁니다.

- 유럽의 이슬람 연구










Posted by Daes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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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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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통제력을 발휘하기 위한 에너지가 고갈되어 자기통제력을 잘 바루히할 수 없는 상태를 ‘자아 고갈’ 상태라고 한다…

방전된 정신력에 필요한 이 연료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많은 연구 끝에 이 에너지원이 포도당과 관련이 있음이 밝혀졌다. 연구에 의하면, 자기통제력을 발휘하고 난 후 설탕물을 마신 사람들은 자기통제력이 회복되는 모습을 보였으나 인공감미료로 단맛만 낸 물을 마신 사람들은 회복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다. 자기통제력을 발휘하고 난 후의 혈당 수치가 이후의 자기통제력과 관련성을 보이기도 했다.

-26쪽 “설탕이 의지력을 돕는다”


에너지 소모가 많은 상태에서는 관용을 잘 발휘하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자기통제력이 필요한 과제를 하는 등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자신의 입장(예컨대 정치적 입장)과 다른 의견을 듣는 것을 더 꺼려하는 현상이 관찰된 바 있다. 에너지가 소모된 상태에서는 내 의견과 다른 의견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믿을 수 없다”고 응답하는 경향을 보인다. 역시 비슷하게 성별, 인종 특정 지역 출신에 따른 고정관념을 벗어나는 데에도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와 관련된 오류가 바로 ‘확증편향’이다. 우리는 어떤 말이 정말 옳기 때문에 지지하기도 하지만, 지지하기로 한 입장과 맘에 드는 결론을 먼저 정한 다음 거기에 맞는 증거들을 수집하기도 한다.

-42쪽 “생각을 조절하기”


감정을 억제한 참가자가 재해석을 한 참가자에 비해 대화를 하는 내내 혈압이 더 높았다. 감정을 억제한 사람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사실은 별로 새로울 게 없으나 좀 더 흥미로운 부분은 대화 ‘상대방’의 스트레스 수준이었다.

그래프에서 확인할 수 있듯 대화 도중 감정을 억제한 경우 당사자뿐 아니라 그 사람의  ‘파트너’ 또한 혈압이 상당히 올라가는 현상이 확인되었다… 대화 도중 한 사람만 감정을 억제해도 같이 있는 사람까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감정을 일으킨 경험에 대해 “이 일은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라며 재해석을 해본 참가자들(감정을 억제하지는 않았지만 적응적인 방법으로 조절한 사람들)의 경우 본인과 상대방 모두 마음의 평화를 비교적 잘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리하면, 감정조절이 필요할 때에는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적절히 표현하며 마음 속으로 재평가해보는 것이, 나와 상대방의 행복, 관계의 질에 도움이 될 것이다.

-47쪽 “감정을 다스리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학생들은 특히 스트레스가 맣은 시험기간에 자기통제력이 요구되는 다양한 일들에 실패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을 확인했다. 학생들은 평소보다 시험기간에 감정조절에 실패하고(갑자기 막 화를 낸다든가), 정크 푸드를 많이 먹고, 약속을 잘 안 지키며 과소비하는 경향을 보였다. 즉 신경 쓸 일과 스트레스가 많을 때 우리는 감정이나 생활 패턴을 잘 조절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조절을 안 하고 싶어서라기보다 스트레스 때문에 중요한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어 수행이 떨어졌다는 것이 포인트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재미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서 기분전환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긍정적 정서는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많은 연구들이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재미있는 영상을 봄으로써 긍정적 정서를 느끼게 되면 부정적 정서가 줄어들고 스트레스 또한 줄어든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긍정적 정서는 스트레스를 줄여줄 뿐 아니라 자아고갈 상태에서 우리를 회복시켜주는 등 떨어진 수행을 다시 회복시키는 효과도 있다. 따라서 학자들은 긍정적 정서가 마치 마법의 지우개처럼 스트레스나 에너지 고갈을 ‘취소’ 또는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고도 이야기한다.

-56쪽 “스트레스 줄이기 연습”


자기통제는 불필요한 욕망을 꺾는 것, 즉 유혹에서 벗어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이 단계는 자기통제 과정을 통틀어 갖아 큰 난관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히면 유혹을 이기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쓸데업시는 유혹을 원천봉쇄하는 방법은 없을까? 그 방법으로 연구자들은 ‘ㅇㅇ하면 반드시 ㅇㅇ한다’는 식의 ‘무조건적 명령문 만들기 (if-then plan)’를 추천한다. 예컨대 ‘운동을 열심히 한다’같은 추상적인 목표 대신, ‘아침에 눈을 뜨면 팔굽혀펴기를 10번 한다’,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있다면 반드시 계단을 택한다’, ‘수학문제를 하나 틑릴 때마다 무조건 앞구르기 10회를 한다’와 같은 구체적인 조건과 행동을 만들어두라는 것이다…

연구에 의하면 if-then 전략을 쓰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적은 에너지를 들여서 자기통제를 하고 그 결과 자아고갈 현상도 덜 겪는다. 비교적 ‘지속 가능한’ 자기통제를 하게 되는 것이다.

-74~75쪽 “무조건적 명령문 만들기”


현실을 직시하기 전 순진무구한 우리들은 세상을 장밋빛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은 내가 하는 일들이 처참하게 망하기보다는 어떻게든 잘 풀리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과거는 실패로 가득했을지 몰라도 미래에는 성공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막연한 긍정적인 예측은 사실 자신의 ‘바람’에 기초한 환상에 가깝다. 따라서 현실을 직시할수록 막연한 긍정적 사고는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일례로 우울증 환자들이 일반인들에 비해 현실을 더 정확하게 예측하는 등 현실 직시는 우울증과 관련을 보이는데, 이를 ‘우울증적 현실주의(depressive realism)’라고 한다.

-114~115쪽 “현실 직시를 돕는 부정적 사고”


일반적으로 긍정적인 편인 사람들은 응원을 받았을 때 더 좋은 성과를 보였다. 하지만 비관적인 사람들은 응원을 받으면 오히려 성과가 떨어졌다. 이들에게는 응원을 받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이외에도 많은 연구들이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사람들은 긍정적으로 생각할 때보다 “망하면 어쩌지”라며 걱정할 때 더 성과가 좋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연구자들은 긍정적인 사람들이 희망을 행동의 양분으로 삼는 반면, 비관적인 사람들은 자신들의 높은 불안을 행동의 양분으로 삼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긍정적인 사람들은 희망을 가짐으로써 의욕을 얻고 실패에 대한 불안이 줄어들어 성과가 올라가지만, 비관적인 사람들에게 이런 과정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118~119쪽 “비관주의자도 적응적일 수 있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맹목적인 축적(mindless accumulation)’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분명히 인식한 채 노력을 기울인다면 목표 달성 시점에 노력을 멈춰야 한다. 원하는 바를 다 얻고 난 후에는 굳이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노력을 하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그 노력을 하는지 잘 모르거나 인식하지 못한다. 따라서 어느 시점까지 애써야 하는지도 잘 모른다. 결국 더 이상 노력을 쏟을 수 없을 때까지, 몸이 지치고 쓰러질 때까지 노력하게 된다.

노력을 멈추는 기준이 목표 달성이 아니라 신체적/정신적 피로가 된다는 것이다. 목적이 이끄는 삶이 아니라 피로가 이끄는 삶이 된다고나 할까? 안타깝게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

-126~127쪽 “무조건적인 노력에 대한 경고”


미주리대학의 심리학자 로라 킹과 동료들은 사람들이 어떨 때 가장 삶이 의미있다고 느끼는지를 조사했다. 여러 연구를 통해 일상 생활 속에서 다양한 활동들과 삶의 의미감 사이의 관계를 조사한 결과,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의미감을 느끼는 겨이우는 고생 끝에 무엇을 성취했을 때보다 행복할 때였다. 객관적 성취보다도 행복감 같은 정서가 사람들이 느끼는 삶의 의미감을 더 잘 설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무엇보다 행복할 때 자신의 삶이 의미있다고 느끼며, 고생 끝에 대단한 것을 성취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즐거움과 보람, 기쁨 같은 낙이 없다면 그 일을 통해 충만함을 느끼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를 학자들은 긍정적 정서의 기능에서 찾는다. 학자들은 기분이 좋고 평온하다는 것은 다 잘되고 있다는 신호라고 이야기한다. 반면 뭔가 불안하다거나 짜증이 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신호라고 본다.

-160쪽 “자아실현은 고통 끝에 오는 것일까?”


사람들의 자존감이 높아지거나 낮아지는 데에는 몯느 일이 동일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따라서 스스로의 자존감이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자존감이 걸려 있는 영역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존감이 수반되는 영역이 어디인가에 따라 어느 부분에서 좌절을 느끼고 어느 부분에서 희열을 느끼는지가 달라지고, 삶의 크고 작은 목표들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이 자신의 자존감을 거는 분야는 외모, 사람들의 인정, 경쟁에서 이기는 것, 학문적 능력, 가족의 사랑과 지지, 도덕성, 신의 사랑 등 크게 일곱 가지라고 한다.

-180쪽 “내 자존감이 걸려있는 영역은?”


실제로 여니구에 의하면 자존감이 높든 낮든 실제 능력이나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에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다만 “다른 사람들도 내가 잘한다고 생각해줄까?”의 문제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자존감이 건강한 사람들은 “나도 내가 괜찮다는 걸 알고 다른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생각한다”고 믿는 반면, 자존감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은 “나도 내가 장점이 있다는 건 알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아”라고 믿는 것이다. 실제로 엄친아 수준으로 많은 것을 성취한 사람들도 자신이 성취한 것을 주변 사람들이 별로 인정해 줄 것같지 않다고 생각할 경우 자존감이 상당히 낮은 편이라는 연구가 있다.

이렇게 자존감이 건강하지 않은(지나치게 낮거나 불안정한) 사람들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사람들이 자신을 받아들여줄 거라는 확신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특히 관계에서 불안을 많이 느낀다.

-198쪽 "소속감이 자존감을 돕는다"


이렇게 사랑과 인정을 부여해주는 가족, 친구, 연인 등의 안정적인 관계는 자존감의 매우 중요한 요소다. 만약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에서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좀처럼 만족할 수 없고 자존감이 불안한 편이라면 나에게 부족한 것은 다름아닌 좋은 관계가 아닐지 생각해보자.

-200쪽 "건강한 자존감을 위한 운동법"


가난한 개인들이 부유한 개인들에 비해 행복도가 낮은 건 맞지만 일단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개인 간 행복도에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대니얼 카너먼과 동료들이 2010년 미국에서 4만 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조사 결과, 연소득 4~5만 달러를 기점으로 돈이 실제로 느끼는 '행복감(정서)'에 미치는 영향은 서서히 줄다가 7만 달러 즈음에서 멈추는 현상이 나타났다.

...긍정적 정서의 경우 소득 최하위 그룹과 최상위 그룹에서 행복감을 자주 느낀다고 한 사람들이 각각 약 70퍼센트, 90퍼센트로 생각보다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정적 정서를 별로 느끼지 않는다는 케이스도 각각 55퍼센트, 80퍼센트, 행복에 대한 인지적 평가도 20점 만점에 각각 5점, 7.5점으로 소득 최하위층과 최상위층의 행복도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크지는 않았다.

-226~227쪽 "그래도 돈은 중요하다"


대니얼 길버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어서 여유를 즐기고 편하게 살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뭔가에 빠져 있을 때 행복하다. 친구와 수다를 떨어간, 뭔가를 만들거나, 성관계를 할 때가 대표적이다." 즉 우리의 삶은 큰 성취 후 더 이상 할 게 없을 때보다 뭔가에 빠져있을 때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결국 성취의결과가 어떠한가, 어떤 타이틀을 다느냐는 것보다 매 순간을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사는가, 즉 '어떻게 사느냐'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241쪽 "어떻게 살면 좋을까?"


그 결과 재미있게도 여가 시간을 갖거나 별일 없이 시간을 써버린 사람들, 무얼 하든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쓴 사람들보다 남을 위해 시간을 쓴 사람들이 가장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넉넉하다고 지각하며 마음의 여유를 갖는 모습을 보였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시달리고 있는 만성적인 '시간 기근(time famine)'에 대한 한 해법은 남을 위해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로 연구자들은 타인을 위해 시간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바라볼 때 더 "내 시간이 여유로운가 보다"라고 느기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연구에 의하면, 돈의 경우도 자신보다 타인을 위해 쓸 때 스스로가 더 '풍족하다는 느낌'을 받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시간도 누군가에게 나눠줄 때 자신의 시간이 더 풍족하고 여유로운 것첯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흔히들 시간에 쫓길수록 특히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쓰는 시간을 줄이려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럴수록 다른 사람에게 시간을 내주는 것이 마음의 여유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 보자."

- 263쪽 "마음의 여유를 가져라"


집단주의 문화의 장점 중 하나는 개인의 리스크가 분산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연구들에 의하면, 개인주의 문화보다 집단주의 문화에서 더 의무적으로 가족이나 친구에게 사업자금을 빌려준다거나, 빚을 대신 갚아주는 일들이 흔하게 일어난다고 한다. 개인이 (특히 금전적으로)실퍃나 경우 그 책임을 개인이 고스란히 다 떠안기보다 책임이 특히 가족구성원들 같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분산되는 경향이 비교적 크게 나타난다. 또한 개인들의 행동을 집단과 사회 전체에 유익한 방향으로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나라 경제발전 같은 사회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는 집단주의 문화가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개인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면에서 '행복'은 집단주의 문화보다 개인주의 문화가 훨씬 이득인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

- 274쪽 "한국이 불행한 이유"



Posted by Daes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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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학교 4 여성과 이슬람 문화




ㅁ 아랍과 이슬람은 다르다

그런데 교역을 통한 것이든 약탈과 전쟁에 의한 것이든 이 두 가지 생존방법 모두 철저하게 남성의 몫이었습니다. 문화인류학에서 보면 여권이 우세하거나 모계중심 사회는 대부분 농경정주사회였습니다. 남자의 노동력이 없이 여성의 노동력만으로도 살 수 있어야 여권신장이 가능한 거죠.


...인원만 남겨 놓고 나머지는 없애면 없앨수록 공동체의 생존이 유리해진다고 판단한 겁니다. 그래서 여아살해(femicide)라는 나쁜 풍습이 생겼습니다. 특히 쌍둥이를 낳으면 반드시 하나는 죽입니다.


...승리한 부족은 새로운 오아시스의 주인이 돼서 들어옵니다. 이때 승리한 부족은 패배한 부족의 아녀자들을 절대적으로 보호해줄 도덕적 책무가 있습니다. 이게 사막의 불문율입니다. 노예로 만들지 않고 정식 사회 구성원이 됩니다. 어차피 인구가 없기 때문에 다 거둬서 자식처럼 키워야 합니다. 남자가 없으면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일부다처는 공동체를 유지하는 유일한 결혼방식이었습니다. 왜냐면 노예로 부려서는 안 되니까 그렇습니다.


...일부다처의 원칙은 이렇습니다. 능력이 있으면 있을수록 많은 가족을 보살펴야 합니다. 이게 아랍사회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입니다. 물론 좋게 말했을 때입니다. 악용되는 사례도 있습니다. 구약성경에도 보면 다윗이나 솔로몬 모두 처와 첩 수백명을 거느렸습니다. 재산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지도자이기 때문에 더 많이 베풀어야 하는 겁니다.


ㅁ일부 다처와 여성 할례


한 남자가 여러 명의 아내를 두면 먹고사는 것 못지않게 생식 본능도 중요하겠죠? 한 남자가 수십 명을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떡하나요? 사회 윤리와 도덕을 지키기 위해 그것을 억제하려는 사회적 기제가 작동합니다. 그게 여성 할례(FGM, Female Genital Mutilation)로 나타납니다. 남성 할례는 여러 여자를 거느릴 때 성적인 기능을 높이고 위생 면에서도 도움이 됩니다. 여성은 음핵을 제거함으로써 성감을 누그러뜨리는 효과를 노립니다. 이렇게 일부다처와 여성 할례는 같이 갑니다.

그런데 여성 할례는 꾸란과 하디스 그 어디를 뒤져 봐도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꾸란과 하디스를 신봉하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여성 할례를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아랍 국가에서는 할례가 없습니다.

여성 할례는 아프리카에서 번성합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원래 다처주의였습니다. 이슬람을 받아들이기 전부터 다처주의였습니다. 아랍의 다처와 아프리카의 다처는 본질이 다릅니다. 아랍에서는 생태적인 생존을 위해 다처가 만들어졌지만, 아프리카에서는 노동력의 분산을 위해 만들어집니다. 남성은 철저하게 사냥과 전쟁의 기능을 갖고, 여성은 가사와 노동과 농사의 기능으로 정확하게 분화되어 있습니다. 직업의 분화가 절대적입니다.

아프리카 부족들의 성인식을 보면 몸을 최대한 단련시켜서 전사가 되어 전쟁을 수행하고 사냥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남성의 몫입니다. 한번 사냥하고 오면 남성들은 다음 사냥에 나갈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모든 힘든 일을 여성들이 합니다. 밭 갈고 소 키우고 아이들 키우는 게 여성의 몫입니다.

여성의 노동량이 너무 큽니다. 과도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전쟁이 없어졌잖아요. 남자가 전사와 사냥꾼으로서의 역할을 못하면 가사노동이나 농사일을 보충해 줘야 하는데 안 합니다. 수천 년간 내려온 전통이라서 그럽니다. 이런 사회에서 여성의 목표는 부지런히 일해 돈을 모아 남편에게 주고, 그 돈으로 신부를 구해 오게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짝을 정해 주기도 합니다. 어느 마을 누구, 예쁘고 아이도 잘 낳을 아무개를 신부 삼아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 그럼 일이 반으로 줄겠죠? 또 새 부인에게는 일을 더 많이 주겠죠? 두 번째 부인도 가만히 있겠습니까?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으면 세 번째 부인을 데려오게 합니다.

아프리카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하는 일을 ‘영적인 직업’이라고 부르며 절대 침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아프리카의 토착적인 관념이 다처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겁니다. 여성 할례를 철저히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 아내들을 통제하려는 수단입니다.

그런데 아프리카에서 기독교는 실패했는데 이슬람은 왜 최대 종교가 됐을까요? 기독교는 일부일처의 윤리를 철저하게 강조했고, 이슬람은 일부다처를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딱 맞았습니다. 본질적으로 보면 이슬람의 다처와 아프리카의 다처가 다릅니다만, 아프리카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형식이 유사하니까 이슬람을 더 선호했습니다.

율법으로는 다처의 조건이 무척 까다롭습니다. 네 사람까지로 제한되고, 모두를 공평하게 대해야 합니다. 아프리카 무슬림들도 그 형식은 따릅니다. 그런데 수천 년간 이어진 여성 할례는 살아남은 겁니다. 여성 할례는 그래서 이슬람이 아니라 아프리카적인 전통에 따른 겁니다. 이집트, 수단, 나이지리아 등 이슬람화된 아프리카 국가들에 아직 남아 있습니다. 이슬람을 믿으면서 여성 할례를 하니까 이슬람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처럼 잘못 알려진 겁니다. 사우디 같은 GCC 국가들에서는 여성 할례를 하지 않고, 동남아에서는 아예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처 문화가 남성이 자기의 권력과 사회적 지위, 경제적 부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금방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성적으로 학대하고, 강제로 처녀성을 빼앗고, 상품가치가 떨어졌다고 판단되면 자기 아내를 노예시장에 팔아먹는 등 인간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온갖 죄악이 횡행했습니다.


...만약 너희가 그들을 공정하게 대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 있거든 오직 한 여자와 결혼하라. - 꾸란 4장 3절


...이슬람의 원칙은 일부일처입니다. 많은 이슬람 율법학자들이 만장일치로 유권해석을 내려놓았습니다. 이슬람의 기본원칙은 일부일처입니다. 그러나 특수한 상황에서 공동체 유지를 위해 네 사람까지 마지노선으로 허용해 놓은 겁니다. 무조건 네 명을 가지라는 뜻은 아니라는 거죠. 


ㅁ아내를 보호하기 위한 결혼 지참금, 마흐르


결혼에서 여자를 보호하는 제도도 만들었습니다. 유목 사회에서 남자 없이는 죽음과 동의어라고 말씀드렸죠. 그런데 남편이 죽어 버리면 큰일 나잖아요. 그래서 결혼할 때 ‘마흐르’라는 결혼지참금을 주게 돼 있습니다. 남편이 처가에다 줍니다. 신부에게 주면 안 됩니다. 반드시 처가에 줘야 합니다.

그 마흐르가 상당히 고가입니다. 우리 사회에 대입하면 억대입니다. 금액의 크기는 신부의 사회적 신분이나 교육, 미모 등에 따라 결정됩니다. 최종 금액은 양가가 합의하게 되어 있습니다. 기본적인 원칙은 비상시에 남편이 없어지더라도 여성 혼자서 최저 생계비를 가지고 노후를 견딜 수 있는 액수 이상이어야 합니다. 옛날 아랍에서는 낙타 열 마리 혹은 스무 마리, 이런 식으로 정했습니다.

지금도 이슬람 국가에서는 마흐르를 지급하지 않으면 결혼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이슬람 율법으로 정했습니다. 법원에 결혼 신고를 할 때 마흐르 액수를 기재하도록 합니다. 그게 있어야 판사가 결혼 증명에 사인을 하고 정식 부부가 됩니다.


ㅁ명예 살인을 하게 만드는 사회적 압박


그런데 우리가 잘 모르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 언론에서는 주로 아버지와 오빠에 의해 명예살인 당하는 딸이 해외 토픽으로 알려지죠. 여자의 처녀성을 잃게 만든 남자는 어떻게 될까요? 그 남자도 반드시 죽입니다. 남자를 죽이는 게 뉴스거리가 안 돼서 잘 다뤄지지 않습니다만, 반드시 죽입니다. 처녀의 집안에서 그 남자를 죽입니다.


...물론 한 세대 정도 지나면 많이 약화되겠죠? 그러나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뿌리깊은 관습들은 어떤 현대적인 법제도로도 쉽게 개선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명예살인도 이슬람과는 전혀 상관 없는 아랍의 부족 문화가 만들어낸 사회적 악순환입니다. 이슬람 율법에는 명예살인이 초창기부터 금지돼 있었습니다.


ㅁ여성의 머리를 가린다는 것


그러나 9·11테러와 이라크 전쟁 이후에 서구에서 공부한 사람일수록 히잡을 다시 쓰는 사람들 숫자가 빠르게 늘었습니다. 무조건 서구를 따라가지 않겠다, 서구와 차별화된 나만의 정체성을 찾겠다는 표현으로 그런 결과가 나타난 겁니다. 전체적으로도 히잡을 쓰는 여성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려스러운 일인지 아닌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그만큼 이슬람 여성들의 민도와 자존심이 커졌다는 것입니다.

70년대와 80년대 기준으로 보면 히잡이 여성을 억압하는 상징적인 기제가 맞습니다. 자기 맘대로 벗지도 못하게 하고, 사회참여도 제한했으니까요. 그러나 21세기 오늘날 시점에서 히잡을 여전히 여성을 억압하는 기제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사우디와 이란에서만 적용될 수 있는 말입니다. 나머지 55개국에 그 주장을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ㅁ이슬람 여성의 미래


물론 종교적 율법을 악용하는 것도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그 사회가 갖고 있는 개방성이나 성숙도, 그리고 문화, 경제, 복지 등의 수준입니다. 그것이 어느 수준에 도달한다면 사회도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항상 강조합니다만,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릇은 어느 문명이나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중에 하나가 이슬람 율법이 그 사회를 통제할 거라는 생각입니다.


ㅁ이슬람 사회의 통과의례


자유연애는 가족과 부족 간 명예살인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굉장히 위험한 행동입니다. 그래서 철저한 중매로 결혼이 이뤄집니다.


...사촌 결혼의 가장 큰 이점은 재산이 분할되지 않는 거겠죠? 거액의 마흐르를 줘도 집안 재산이죠. 재산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는 겁니다. 굉장히 든든한 경제적 사회적 기반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사촌 결혼이 근절되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이 또한 이슬람 전통이라기 보다는, 부족이 전략적으로 선택한 결과라고 봐야겠죠.


ㅁ이슬람 세계의 이혼


네 번째 아내를 얻으려면 첫째, 둘째, 셋째 아내가 동시에 동의해줘야 합니다. 그중에 한 사람이라도 비토하면 그 결혼은 법적으로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부사처는 사실상 굉장히 어렵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탈라크(일방 이혼, 남자가 여자에게 “나는 당신과 살기 싫다”고 통보만 하면 이혼이 성립되는 제도)를 보면 여성에게 반드시 불리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객관적으로 불리합니다만, 여성으로서 그것을 상쇄해나갈 만한 시간과 사회적 전략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막강한 친형제들이 포진하고 있어도 이복동생이 왕이 됩니다. 왕가에서도 적자와 서자 구분이 없는데 일반인들에게는 서열에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ㅁ 이슬람의 장례식


물론 죽은 사람에게서 빚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있을 수 있겠죠? 그러나 죽음으로써 모든 채무 채권관계가 종식됐다고 봅니다. 그 빚이 자녀에게 대물림되지 않게 하는 사회적인 장치가 바로 장례입니다.


ㅁ 이슬람의 여성관


꾸란에서는 남녀의 창조가 평등하다고 말씀드렸죠? 흙으로 아담을 빚어 거기에 영혼을 불어넣어 남자가 되게 했는데 똑같은 방법으로 이브를 빚어서 여자가 탄생됩니다. 창조의 양성평등입니다. 아담이 잠들었을 때 갈비뼈를 빼내서 이브를 만들었다는 성경이야기에 비하면 창조관도 상당히 평등하죠?


ㅁ이슬람 여성의 일상


대구에 있는 한 섬유업체 사장님이 히잡 쓰고 수영하는 사진을 보고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방수처리한 히잡을 팔 수 있다면 큰돈을 벌 수 있겠다 싶었던 거죠. 지금 아랍의 방수 히잡 시장 점유율 1위가 그 회사입니다. 히잡 쓰고 수영하는 모습을 답답하게 보면 8억 명의 시장이 안 보이지만 고정관념을 깨고 편견 없이 바라보면 새로운 시장이 열리기도 하는 겁니다.


...계약서에 혼인 기간과 그에 대한 보상액을 약속하면 계약혼 관계가 성립됩니다. 그런데 계약기간이 하루여도 가능합니다. 그냥 관계를 가지면 매춘이지만 당국에 신고하고 둘이서 합의하면 하루짜리라도 인정해줍니다. 간통이나 매춘은 걸리면 죽음이니 너무 극단적이잖아요. 이렇게 흘러가면 그 사회가 지속 가능성이 있을까요? 그래서 이런 제도를 통해 우회로를 만들어주는 겁니다.


...정식 결혼에선 반드시 두 명의 증인과 판관이 배석해야 하지만 무트아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여자는 45일간 유예 기간을 가지면서 임신 여부를 확인합니다. 만일 임신이 되지 않았다면 다른 남자와 새롭게 계약을 맺을 수 있습니다.


...이슬람 여성이라면 항상 떠올리는 억압과 폭력, 그리고 전근대성의 이미지는 종교적인 문제보다는 경제수준과 문맹률 같은 교육의 정도, 그리고 여성의 인식 변화와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 더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속도는 더딜지라도 이슬람 사회 역시, 가부장 사회에서 양성평등의 사회로 서서히 바뀌고 있습니다.






Posted by Daes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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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학교 3 이슬람은 무엇을 믿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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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꾸란이 말하는 알라와 예수

이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으면 죽인다는데, 어떻게 살아남았지?” 무려 2000년 동안 살아남았잖아요. 이슬람에서는 자기 신앙을 완벽하게 보호해 줍니다. 법으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자기 신앙을 강제로 다른 사람에게 퍼트리는 행위, 즉 선교 행위는 실정법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ㅁ기독교의 예수와 이슬람의 예수

오늘날 기독교가 존재하는 것은 세 가지 개념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대신 사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를 보내 십자가 처형을 받게 합니다. 대속의 개념입니다.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기독교는 비로소 존재하게 됩니다.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원죄와 대속과 부활이라는 이 세 가지 개념에서 단 하나라도 부정되면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예수님은 신성화되었고, 아버지 하나님과 다르면서도 같은 존재가 됐습니다.

...신성은 인정하지 않고 인성만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그냥 평범한 인간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인성을 받아들이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상의 위치에 놓고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인간 세상에 충실히 전파하고 오류를 범하지 않은 최상의 인격체로 믿습니다. 완벽한 인간으로 받아들이고, 존경하는 것이죠. 이것이 기독교와 이슬람의 근본적인 차이입니다. 그래서 이슬람에서는 예수를 예언자와 선지자로 봅니다.

...유대교에서는 예수를 예언자가 아닌 혹세무민하는 위선자로 봤고, 기독교에서는 신과 동일시하면서 예수 자체가 신앙의 대상이 됩니다. 이슬람에서는 신의 위대한 예언자 중 한 명으로 봤습니다. 따라서 무함마드도 한 줌의 신성도 가지지 않은 최상의 인격체에 불과합니다. 예수와 무함마드의 차이는 시대적인 차이입니다. 무함마드는 예수 이후에 신이 보낸 마지막 예언자라고 말합니다.

...구약의 기본에 신약에서 예수의 인성 부분이 상당히 들어가 있고, 또 610년부터 22년간 무함마드가 직접 계시를 받은 내용이 합쳐진 것이 꾸란이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ㅁ꾸란에 등장한 예수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 처형을 받았다는 것은 모든 책에 나오거든요. 성경 이외에 구전이나 유대 전승에서도 십자가 이야기는 많이 나와요. 역사적으로 십자가 처형이 있었다는 것은 모든 학자들이 인정합니다. 이슬람도 역사적으로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만, 그 십자가에 매달렸던 사람은 예수가 아니라 비슷한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ㅁ이슬람과 기독교의 구원관

성직자 계급이 있고 출석을 매기면 그들에게라도 잘 보이기 위한 활동들이 있을 텐데, 내가 예배 보고 안 보고, 좋은 일 하고 안 하고는 하나님이 다 아시고 최후의 심판에서 판단하신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때문에 여기에서 극도의 자율성이 나옵니다. 성직자도 없고 교황청도 없잖아요. 오로지 신과 자기 둘의 계약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슬람은 철저하게 예방 성격의 종교입니다. 다른 서구 사회에 비해 이슬람 사회에서 범죄가 현저히 낮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ㅁ메카 계시와 메디나 계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신뢰의 크기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무함마드가 큽니다. 그러나 예수에 대해서도 상당히 높은 자리에 두고 있다는 걸 알고 계셔야 합니다. 이 점이 기독교에서 이슬람을 바라보는 관점과 이슬람에서 기독교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핵심 요소입니다.

ㅁ순니와 시아

그때 알리를 추종했던 사람들이 지금의 바그다드로 이주해 갑니다. 이게 시아파가 됩니다. 시아파를 직역하면 ‘떨어져 나간 무리’라는 뜻입니다. 메카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우리는 잔존파다, 우리가 주류다, 정통이다 이렇게 말하죠. 이들이 수니파가 됩니다. 따라서 수니와 시아는 교리 논쟁에 따라 나뉜 종파라기보다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정파에 가깝습니다. 지금은 종교적으로도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현재는 종파라 해도 무난하지만, 배경은 정파였습니다.

...미국식 민주주의는 51%가 49%를 무시해도 크게 문제되지 않잖아요. 사담 후세인의 수니파를 완전히 박살 내 제로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60%가 100을 다 차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가 오늘날 IS로 나타난 겁니다. 쫓겨났던 사담 후세인의 군경 세력들이 모두 IS에 붙었습니다. 나머지 시아파 이라크는 기존 군경 하나 없이 모두 새롭게 모았기 때문에 민병대 수준입니다. 여전히 오합지졸인 겁니다.


Posted by Daes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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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학교 2 선지자 무함마드 이야기




ㅁ몇가지 질문들

이슬람이 원래는 안 그랬는데 서구가 호전적인 모습으로 왜곡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한 것 같습니다. 실제로 폐쇄적이고 호전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슬람이 원래 그런 종교가 아니라고 강변해도 설득력이 약합니다. 그보다는 원래 포용과 융합의 종교이던 이슬람이 왜 폐쇄적이고 호전적으로 바뀌었고, 그 내용은 무엇이고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그렇게 됐을까를 설명하는 것이 좀 더 합리적이라고 하겠습니다.

ㅁ탈라스 전투와 중국 문명과의 만남

중국의 종이가 보편화되고 여기에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접목시켜서 성경을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자 신앙혁명이 일어나잖아요. 이를 기반으로 종교개혁이 일어납니다. 신앙, 종교, 독점적 종교 권력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거대한 혁명이 결국 유럽 사회를 뒤집어엎는 계기가 됩니다. 이게 다 종이가 전해지면서 일어난 일들입니다.

ㅁ동서남북으로 뻗어나간 이슬람 제국

탈라스 전쟁은 두 세력, 이슬람과 당나라가 파미르 고원을 조직적으로, 대규모로 넘는 계기가 됩니다. 고선지 장군이 파미르를 넘어서 지금의 파키스탄의 길기트와 펀자브를 공격하죠. 길기트가 파미르 고원 서쪽에 있습니다. 지금 파키스탄의 북쪽이죠.그래서 고선지를 나폴레옹보다 위대하다고 하잖아요. 나폴레옹이 알프스 산맥 넘었다고 대단하다 그러지만 나폴레옹은 18세기 사람이고 알프스는 3,000m밖에 되지 않습니다. 파미르 고원은 7,000m에다가 그보다 천 년 전에 넘었으니까 누가 더 위대한가요?

ㅁ이슬람의 성공 비결은 조세 혁명

이슬람은 예전에 가렴주구하던 세금 정책을 제대로 뜯어 고치고, 조세 시스템을 법제화 시켜 주고, 훨씬 가벼운 세금을 내게 했습니다. 그 세금을 거둬 일정 부분 중앙 정부에 내고, 나머지를 가질 수 있는 제도를 시행한 거죠.

ㅁ화합과 평등을 내세운 내치 시스템

어떤 부족이 우월하고 다른 부족이 열등하다? 못 받아들입니다. 다 자기가 최고입니다. 이런 성향들을 잘 이해해서 처음부터 성직자 제도를 따로 두지 않았습니다. 성직자도 일종의 카스트잖아요. 교회에서 보면 얼마나 철저합니까? 교황과 대주교와 주교와 신부, 수녀, 평신도로 이어지는 수직적인 구조가 있잖아요. 그런데 이슬람은 성직자 제도를 없애 버렸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ㅁ이슬람의 소수민족 포용 정책

라마단 아시죠? 무슬림들이 한 달 동안 단식하는 기간입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갈라타 타워의 유대인들도 다 같이 단식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왜 유대인이 라마단을 하냐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내 질문이 이상하다고 반응했습니다. 그 사람들 말이 “내 고객의 99%가 무슬림들인데, 내 고객이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고, 가진 자나 갖지 못한 자가 고통을 공유하기 위해서 저렇게 절절하게 단식하고 있는데 내가 종교와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 기간 동안에 배불리 먹고 내 고객을 대한다는 것은 장사의 기본 원칙에도 안 맞다.”라는 겁니다. 장사하는 사람이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거였습니다. 그 고객들 때문에 자기가 먹고 살고 존재 가치가 있는데 고객의 고통과 정신에 동참하고 존중하는 것이 장사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덕목이라고 말합니다. 왜 단식 하냐고 물어보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는 겁니다.

ㅁ무함마드의 등장

무함마드가 가진 여러 가지 덕목 중에 아랍 사회에서 가장 칭송 받았던 것이 바로 ‘분쟁 조정자’ 역할이었습니다. 철저한 균형 감각과 객관성을 가지고 정말 예리하고 정확하게 분쟁을 해결했습니다.메디나의 두 부족이 싸우다가 도저히 안 되니까 메카에서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는 무함마드를 초청합니다. 우리끼리 해결이 안 되니 분쟁을 조정해 달라고 부탁하는 거지요. 이런 조건들이 맞아 떨어져서 메카에서 메디나로 옮기게 됩니다.

ㅁ무함마드의 부인들

고별 순례를 마치고 몸이 급속하게 쇠잔해집니다. 그러나 무함마드는 연명을 위한 치료와 투약을 거부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슬람교도들은 산소 호흡기 안 꼽습니다. 예언자의 전통을 따르는 거죠. 죽음이란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인데,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굳이 구차하게 살겠다고 하는 것은 예언자가 따랐던 방식이 아니라는 겁니다. 요즘에 우리 논의하고 좀 닮아 있죠?

...무함마드를 신격화하려는 움직임이 여기서 꺾입니다. 아주 평범한 인간으로 나서 평범한 인간으로 죽고 죽어서 흙이 되어 사라진다고 합니다. 이것이 이슬람 성공의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평범의 리더십입니다.아무런 기적도 행하지 않았고, 출생의 신비도 없었고, 살아가면서 기적 같은 초월적인 역할도 하지 못했고, 죽을 때도 보통사람처럼 절절이 앓다가 죽었고, 가난한 채로 재산을 비웠고 죽고 나서도 보통 사람처럼 흙으로 썩어 없어졌습니다. 재림하지도 않고, 앞으로 나타나지도 않고 그냥 사라져 버립니다. 그 덕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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