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24일 작성


자기 아들에게 전혀 예방 접종을 하지 않은 지인이 있다. 언제고 한번 쯤은 면역에 대한 충고를 늘어놓고 싶었지만 손윗 사람이라 차마 그러질 못했다. 그러다 불현듯 생각이 떠올라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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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의 예를 들어 보자. 로또에 당첨된 사람보다 꽝이 훨씬 더 많다. 매주 토요일 밤 우리는 현자 타임(멍해지는 순간)을 가진다. 이때의 합리적인 태도로 보자면 당첨과 꽝은 동등하지 않다. 꽝 될 확률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자 타임 이전으로 돌아가 보자. 어쩌면 내가 당첨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확률이 반반인양 홀린다. SBS 로또 방송을 기점으로 현자 타임, 즉 합리적 태도에 이르듯 동급으로 보이던 두 가지 - 당첨과 꽝 놀음도 정신 차리고 보면 돈 낭비로 여겨지게 마련이다.

현대 의학과 그에 대한 불신은 동일 선상에 놓일 수 있는 건가? 예방 주사 안 맞고 멀쩡하게 잘 사는 사람 수두룩하다는 게 예방 접종 반대주의자들의 논리다. 하지만 예방 주사 맞고 잘 사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현대의학이 이룩한 예방 접종이라는 토대를 믿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예방 접종으로 병 안 걸릴 확률이 더 크다는 걸 믿는 사람이라면 아이에게 주사를 맞힐 것이다. 

나의 또 다른 지인은 암 시한부 선고를 받은 뒤 절치부심하고 사상의학에 매달려 몇년 째 잘 살고 있다. 기적이고 축복이다. 하지만 의사가 말하는 생존율을 우리는 부정할 수 있나? 로또 맞은 사람 한 명 있다고 해서, 수백만 분의 일이 아닌 수백만의 확률로 우리가 꽝 맞고 좌절할 거란 사실을 부정할 수 있겠나. 

대부분 죽어버릴만큼 여러 장기로 전이된 암을 앓던 형은 살아날 수도 있었고 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생존율이라는 확률은 변함 없이 존재한다. 로또, 그거 언젠가는 당첨될 수도 있고 꽝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첨율은 변하지 않고 존재한다. 토요일 밤의 좌절처럼 말이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우리 형이 있다고 해서 현대의학이 말하는 생존율을 부정할 수 없듯이, 별다른 질병 걸리지 않고 잘 사는 아이가 있다고 해서 예방 주사의 효능을 부정할 수는 없다.

게다가 예방 접종은 사회적 합의의 성격도 지닌다. 예방 접종을 안 맞은 아이가 어느날 불현듯 재수없게 홍역에 걸려 응급실에 간다 치자. 거기에 머물던 면역력 약한 사람들은 홍역 전염에 노출되는 위험에 처하고 만다. 예방 접종을 통해 사회는 질병을 억제한다. 하지만 예방 접종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반대주의자들에 의해 무너지면 질병은 전염되고 널리 퍼져서 겉잡을 수 없게 된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기도 하다.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679185.html) 존재를 부정할 수 없는 확률, 특히 전염병을 막기 위한 예방 주사의 확률에 있어서 부정하는 것은 사회적 민폐의 문제가 된다.

내가 선하게 보고 좋게 보는 그것들이 사회적으로 나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에 따라 어떤 행위의 선악이 판가름난다. 내가 내 아이 예방접종 안시킨다고 해서 그게 무슨 사회적 악까지 꺼낼 얘기냐 싶겠다. 개인적 선이 꼭 사회적 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우리 아이 예방접종 안 맞고 건강하게 잘 크는 건 개인적으로 선한 일이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것이 미래다. 알 수 있는 것은 확률이다. 나라면 확률을 택하겠다. 예방 접종 맞고 또한 건강하게 잘 크는 확률을 택하겠다.

물론 언제나 알 수 없을 것이다. 예방 접종이 건강을 낳을지 환자를 낳을지. 알 수 없는 것이 주는 불안감 앞에서 확률만이 유일한 종교로 남는다. 이제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다. 선택은 지인, 당신의 몫이다. 무엇을 택할 건가? 확률은 확고한 토대 위에 있다. 알 수 없는 미래가 주는 불안감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지는 당신의 몫이다. 하지만 그걸 받아주는 것은 사회, 곁에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Posted by Daes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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