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용기


잘못은 인정하는 것은 패배가 아니다


나는 옳다, 즉 상대는 틀렸다. 그렇게 생각한 시점에서 논쟁의 초점은 ‘주장의 타당성’에서 ‘인간관계의 문제’로 옮겨가네. 즉 ‘나는 옳다’는 확신이 ‘이 사람은 틀렸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는 ‘그러니까 나는 이겨야 한다’며 승패를 다투게 된다네. 이것은 완벽한 권력투쟁일세.



‘소유의 심리학’에서 ‘사용의 심리학’으로


철학자   한 가지 덧붙이자면, 아들러 심리학은 ‘소유의 심리학’이 아니라 ‘사용의 심리학’일세.

청 년   요컨대 ‘무엇이 주어지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하는 것이로군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으라  


고르디우스의 매듭 : 프리지아에 내란이 끊이지 않았을 때 이륜마차를 몰고 오는 사람이 나라를 구하고 왕이 되리란 신탁이 있었다고 한다. 그 사람이 바로 고르디우스였는데, 당시에는 이륜마차가 흔하지 않았다. 신탁에 의해 왕이 된 고르디우스는 마차를 신전에 바치고 아무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복잡하고 단단하게 묶어놓았다. 이를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이라고 하며, ‘복잡하고 풀기 어려운문제’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아들러 심리학에는 상식에 대한 안티테제(Antithese)2라는 측면이 있네. 원인론과 트라우마를 부정하고 목적론을 추구하는 것, 인간의 고민은 전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는 것, 인정받기를 바라지 않는 것, 나아가 과제의 분리까지 모조리 상식에 대한 안티테제일세.

2) 반정립(反定立). 헤겔은 변증법을 통해 인식이나 사물은 ‘정(定)-반(反)-합(合)’이라는 3단계를 걸쳐 전개된다고 했다. 이 중 ‘반(反)’에 해당하는 것으로 최초의 단계(定)를 부정하는 둘째 단계를 뜻한다. 처음의 주장인 정립에 대립하며, 그 최초의 명제를 부정해 새로운 주장이 세워진다.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


타인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인간에게 극히 자연스러운 욕망이며 충동일세. 근대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칸트는 그러한 욕망을 가리켜 ‘경향성(傾向性)’3이라고 했지. 

3) 습관적인 감성적 욕망을 이르는 말이다. 이성적인 사고법칙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감정의 법칙에 따라 저절로 기울어지는 마음의 성향을 뜻한다. 


진정한 자유란 굴러 내려가는 자신을 아래에서 밀어 올려주는 태도가 아닐까?


행복해지려면 ‘미움받을 용기’도 있어야 하네.



나는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여기에 있어도 좋다’는 소속감을 갖기를 원해. 하지만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소속감이 가만히 있어도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공헌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네.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려면


어떻게 해야 인간은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아들러의 견해는 다음과 같지. “인간은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낄 때에만 용기를 얻는다.”


철학자   인간은 ‘나는 공동체에 유익한 존재다’라고 느끼면 자신의 가치를 실감한다네. 이것이 아들러 심리학의 대답이지.

청 년   나는 공동체에 유익한 존재다?

철학자   공동체, 즉 남에게 영향을 미침으로써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것. 타인으로부터 ‘좋다’는 평가를 받을 필요 없이 자신의 주관에 따라 ‘나는 다른 사람에게 공헌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 그러면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실감하게 된다네. 지금까지 논의했던 ‘공동체 감각’이나 ‘용기 부여’에 관한 말도 전부 이와 연결되네.



자기긍정이 아닌 자기수용을 하라


청 년   커트 보네거트(Kurt Vonnegut)라는 작가가 이와 비슷한 말을 인용했더라고요. “신이여, 바라옵건대 제게 바꾸지 못하는 일을 받아들이는 차분함과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꾸는 용기와 그 차이를 늘 구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라고요. 『제5도살장(Slaughterhouse-five)』이라는 소설이었어요.

철학자   그래, 자네도 알고 있군. 기독교계에서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던 ‘니버의 기도’2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지.

2) 신학자인 라인홀드 니버(Karl Paul Reinhold Niebuhr)가 쓴 기도문으로, 평온을 비는 기도(Serenity Prayer)라고도 한다.


일이 전부라는 인생의 거짓말


나를 ‘행위의 차원’에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존재의 차원’에서 받아들일 것인가. 이는 ‘행복해질 용기’와 관련된 문제일세.



인간은 지금, 이 순간부터 행복해질 수 있다


철학자   자네의 공헌이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사람은 자네가 아니라네. 그건 타인의 과제이지 자네가 개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진짜로 공헌을 했는지 아닌지는 원칙적으로 알 수도 없고. 즉 타인에게 공헌할 때 우리는, 설사 아무도 그것을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주관적인 감각, 곧 ‘공헌감’을 가지면 그걸로 족한 걸세.

청 년   잠깐만요! 그렇다면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행복이란…….

철학자   이미 자네도 눈치 채지 않았나? 바로 “행복이란 공헌감이다.” 이게 행복의 정의라네.



‘특별한 존재’가 되고픈 사람 앞에 놓인 두 갈래 길


‘복수’와 ‘안이한 우월성 추구’는 쉽게 연결된다네. 상대를 난처하게 하면서 동시에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은 심리 상태니까.



평범해질 용기


철학자   자기수용은 그를 위한 중요한 첫걸음일세. 만약 자네가 ‘평범해질 용기’를 낼 수 있다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질 거야.청 년   그, 그렇지만…….

철학자   평범함을 거부하는 것은, 아마도 자네가 ‘평범해지는 것’을 ‘무능해지는 것’과 같다고 착각해서겠지. 평범한 것은 무능한 것이 아니라네. 일부러 자신의 우월성을 과시할 필요가 없는 것뿐이야.



무의미한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라


철학자   인생의 의미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어떤 사람이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아들러는 “일반적으로 인생의 의미란 없다”라고 답했네.

청 년   인생의 의미란 없다고요?

철학자   예를 들어 전화(戰禍, 전쟁으로 입은 재앙과 피해)나 천재지변처럼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연속해서 일어나네. 전와(戰渦, 전쟁으로 야기된 혼란)에 휘말려서 목숨을 잃은 아이들을 앞에 두고 ‘인생의 의미’ 같은 걸 말할 수 있을까? 그런 뜻에서 인생에 일반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네. 하지만 그와 같은 부조리한8 비극을 앞에 두고서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은, 이미 일어난 비극을 긍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지. 어떤 상황이든 우리는 무엇인가 행동을 취해야 하네. 칸트가 말한 경향성을 직시해야만 해. 

8) 철학적인 의미에서 ‘부조리’란 인생에서 그 의의를 발견할 가망이 없음을 뜻한다. 


청 년   그렇죠!

철학자   그런 뜻에서, 가령 엄청난 천재지변을 당했을 때 원인론에 입각해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라고 과거를 돌아보며 따져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나? 우리는 곤경에 처했을 때야말로 앞을 보며 “이제부터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하네.


“인생의 의미는 내가 나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라는 아들러의 말은 결국 이런 뜻이지. 인생에 있어 의미 같은 건 없다, 하지만 내가 그 인생에 의미를 줄 수 있다, 내 인생에 의미를 줄 수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밖에 없다.


철학자   그래, 믿게나. 나는 오랜 세월 아들러의 사상과 함께 지내오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네.

청 년   뭔데요?

철학자   한 사람의 힘은 크다. 아니, ‘내 힘은 헤아릴 수 없이 크다’라는 점일세.

청 년   무슨 뜻이죠?

철학자   ‘내’가 바뀌면 ‘세계’가 바뀐다. 세계란 다른 누군가가 바꿔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의 힘으로만 바뀔 수 있다는 뜻이지. 아들러 심리학을 배우고 나면 내 눈에 보이는 세계는 이제 과거의 세계가 아니라네.



책을 마치고 - 고가 후미타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으로 대표되는 그리스철학을 깔고 설명하는 기시미 선생의 아들러 심리학은, 아들러를 임상심리학의 범주로 묶을 수 없는 사상가이자 철학자였음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은 사회적 맥락 속에서만 개인이 된다”와 같은 말은 마치 헤겔(Friedrich Hegel)의 철학 같았고, 객관적 사실보다 주관적 해석을 중시하는 점은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세계관과 닮았고, 그 외에 후설(Edmund Husserl)과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현상학과 통하는 사상도 담고 있습니다. 더불어 그런 철학적 통찰을 기반으로 하여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이다”, “인간은 지금 이 순간부터 변할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다”, “문제는 능력이 아니라 용기다”라고 갈파하는 아들러 심리학은 그야말로 고민 많은 ‘청년’이었던 제 세계관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단순하면서도 보편적인 아들러의 사상은 자칫 ‘당연한 것’을 주장하고,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이상론을 제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철학의 본래 의미는 ‘지(知)’가 아니라 ‘지를 사랑하는 것’에 있고, 모르는 것을 알려고 하는 것과 지에 이르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결국 지에 도달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문제되지 않습니다.


아들러의 이론 중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있다면, 그건 그의 이론이 상식에 대한 안티테제의 집대성이기 때문입니다. 그걸 이해하려면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설명은 쉽지만 한겨울에 여름의 무더위를 상상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럴 때, 인간관계의 문제를 푸는 열쇠를 받았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Posted by Daes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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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아하자 2016.01.15 22:3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음... 저는 미움받을 용기 읽고 그리 좋은 인상을 받지는 않았어요... 제 상황이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한 것과는 거리가 좀 있었거든요. 오히려 진짜 도전했고 경제적인 자립이 이루어지지 못할 정도로 실패해서 전보다 훨씬 못한 삶을 사는 상황인데... 이 책에서도 자립을 중요시하는 걸 보면 저의 생각이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